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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창훈 Feb 23. 2024

김명수의 '발자국'

이 별에서 읽은 삶의 시

발자국

                           -김명수



바닷가 고요한 백사장 위에


발자국 흔적 하나 남아 있었네


파도가 밀려와 그걸 지우네


발자국 흔적 어디로 갔나?


바다가 아늑히 품어 주었네





저물 무렵의 서해.

한 바닷가 해변에 어린 딸과 함께 했던 시간.


물이 밀려 나간 자리에 자꾸만

딸아이와 나는 선명한 발자국을 모래밭에 새겼다.

그러면 잠시 후 다시 밀려오는 바다의 물결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발자국이 아쉬워

딸아이와 나는 또 또박또박 도장을 찍듯

물기 머금은 모래에 꾸욱~ 새긴다.


애써 새기고 새긴 발자국들, 공들여 쌓은 모래성들이 

지워지고 허물어지는 순간 순간에 

가끔씩 까르르~ 웃기도 했지만 

딸아이와 나는 못내 아쉬워했다.


마치 이 별에 온 존재의 증명처럼 

아이든 어른이든 남자든 여자든 힘있는 사람이든 힘없는 사람이든

우리는 자신의 삶의 현장 어디에서든

한 발 한 발 땀흘려 발자국을 새기고 새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각각의 발자국들은

분명 시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영원할 수는 없다. 

밀려왔다 밀려가는 세파의 파도에 의해

흔적은 희미해지기도 하고 한번에 지워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자신의 생의 길에

우리는 다시 자신이 걷는 해변가에

힘차게 발자국을 새기고 또 새긴다.


사라지는 '발자국 흔적'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을

이 시는 '바다의 아늑한 품'으로 따스하게 안아 버린다.


내가 공들여 새긴 발자국들이

비록 이 땅의 어떤 흔적으로 남아 있지 않은 게 아니라

결국 저 넓고 넓은 바다의 물결에 소금처럼 스며 들어

넉넉하고 깊은 바다의 일부가 되었다고 생각해 보면


아, 마음 상하고 아쉬워 할 마음은 없는 것 아닌가.


다시 저물 무렵의 서해에

딸아이와 함께 간다면


이 시를 조용히 읽어주리라. 



--'발자국은 넉넉하고 깊은 바다의 일부가 되었다', Pixabay 무료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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