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별에서 읽은 아름다움의 시
-로버트 프로스트
여기 이 숲이 누구의 숲인지 알 것 같다.
하지만 그의 집은 마을에 있다.
그는 모르리라 내가 여기 서서
눈 쌓이는 그의 숲을 바라보는 것을.
내 조랑말은 기이하게 여기리라
숲과 얼어붙은 호수 사이
가까이에 농가라곤 없는 곳에서 길을 멈췄으니
그것도 일년 중 가장 어두운 이 저녁에.
말은 마냥 방울을 흔들어댄다.
무엇이 잘못됐는지 묻기라도 하듯
그 밖의 소리는 오직 가볍게 스쳐가는
바람소리, 부드러운 눈송이뿐.
숲은 아름답고, 어둡고, 깊다.
그러나 난 지켜야 할 약속이 있고
잠들기 전에 가야할 길이 멀다.
잠들기 전에 가야할 길이 멀다.
날은 저물고
눈은 내리다 못해 소리없이 퍼붓던
인제의 자작나무숲
사랑도 잃고 사람도 잃고
생의 표지판도 보이지 않던
이십 대 후반의 끝자락
무작정 떠났던 강원도 길
몸 곳곳에 생채기를 낸
하얀 살결의 나무, 나무들이
말없이 눈을 맞고 있었다.
살을 에는 듯한 추위가 옷깃을 여미게 했지만
이상하게도 바람은 부드럽게, 나무와 나무 사이를 오며 갔고
그때마다 눈 송이 송이들은 제 몸을 스치며 웅 웅 소리를 내었다.
아무도 밟지 않은 숲길에 조심조심 발을 내딛다
한참을 멈추어 서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마음 속에서 들리던 속삭임.
'이대로 눈맞고 여기 서 있어도 좋겠다.'
이율과 효율을 중시하는 당위(當爲)의 세계에서
김현 선생의 말을 빌리자면
아름다움은 도무지 써먹을 데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온통
해야 하고, 해야만 하는 일들의 연속인 이 숨가뿐 세계에서
오직 유용한 것들에만 매진한다면 그 삶은 물기없는 사막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미국의 국민시인으로 불리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저 유명한 시에서,
눈 오는 숲에 매료되어 멈춰 선 '나'(시의 화자)는
그 풍경 속에 오롯이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몸과 마음이 분리되지 않은, 온 몸으로 그 풍경의 일부가 되었던 것이다.
물론 평소와 다른 주인(나)의 수상쩍은 행동을
기이하게 여긴 조랑말은 방울을 흔들어 대며
아름다움에 매혹된 그 순간을 깨뜨리고
'나'는 숲을 떠나 다시 가던 길을 가리라 다짐한다.
'잠'이 죽음을 상징한다면, '숲'은 아름다움의 매혹을 의미할 거라 생각한다.
사람은 불현듯 직관적으로 다가온
어떤 놀라운 아름다움에 멈춰 설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에 오롯이 머물거나, 그 아름다움이 영원하기를 바란다면
그건 죽음을 각오한 비장한 용기가 수반되어야 하는, 무섭도록 깊고 두려운 일일 것이다.
아름다움을, 아름다움을 느꼈던 순간을 온전히 가슴에 품고
먼 곳에서 등불을 켜든
저 가난하고 따스한 마을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것은
다시 돌아가 아직 마치지 못한 생의 여러 과업들을 성실히 이루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우리네 인생이며 또한
지극한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