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별에서 읽은 삶과 사랑의 시
-윤제림
강을 건너느라
지하철이 지상으로 올라섰을 때
말없이 앉아 있던 아줌마 하나가
동행의 옆구리를 찌르며 말한다
눈 온다
옆자리 노인은 반쯤 감은 눈으로 앉아 있던 손자를 흔들며
손가락 마디 하나가 없는 손으로
차창 밖을 가리킨다
눈 온다
시무룩한 표정으로 서 있던 젊은 남녀가
얼굴을 마주본다
눈 온다
만화책을 읽고 앉았던 빨간 머리 계집애가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든다
눈 온다
한강에 눈이 내린다
지하철에 눈이 내린다
지하철이 가끔씩 지상으로 올라서주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지하철이 지옥철이 되는 풍경은 너무도 많아 부대끼는 사람들 때문이 아니라
그 많은 사람들이 타인을 서로의 지옥이라 여기며
외롭게 홀로 침묵 속에서 어두워 가는 모습 때문입니다.
하나같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서 있거나, 반쯤 감은 눈을 게슴츠레 떴다 감았다 하며,
표준화된 스마트폰의 네모난 세계에 얼굴을 폭 파묻은 채
덜컹거리며 어딘가로 가는... 그 무표정의 세계.
그럼으로 지하철은 바로 지금 여기,
이 세계의 모습의 은유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누군가와의 따스한 대화가 사라져 버린 단절과 고독의 세상.
그 지하철이 잠시 한강을 건너기 위해 밖으로 나왔을 때
눈이 내리고 있네요.
와~ '눈 온다', '눈 온다'...
여기저기서 나지막히 저마다 내뱉다 순간 번지는 감탄.
한강 위로... 지하철 밖에서... 소리없이 내리는 눈이
꽉 다문 입을 열게 하고, 시무룩하던 남녀의 얼굴을 마주보게 하고,
잠든 자를 깨우게 하며, 핸드폰의 번호를 눌러
누군가에게 이 소식(눈이 온다는 이 놀라운 뉴스)을 전하게 합니다.
무표정의 세계에 미소가 번지는 소통의 기적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 기적의 순간을 시인은 '고마운 일'이라고...
정말 고맙게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기적의 아름다움을 포착해서
이토록 쉬운 언어로 써 준 시인이 너무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