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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창훈 Jan 27. 2024

정끝별의 '밀물'

이 별에서 만난 위안과 사랑의 시

밀물

                           -정끝별




가까스로 저녁에서야


두 척의 배가

미끄러지듯 항구에 닻을 내린다

벗은 두 배가

나란히 누워

서로의 상처에 손을 대며


무사하구나 다행이야

응, 바다가 잠잠해서







1연의 '가까스로'에 잠시 눈이 머문다. 그리고 마음은 순간 울컥한다.

저물 무렵도 한참 지난

늦은 밤의 귀갓길.

비틀거리며 위태롭게 '가까스로' 돌아오는 길.

그 어떤 삶의 하루에도 함부로 가치나 평가를 매길 수는 없는 법.

그 '가까스로' 살아 돌아오는 사람, 사람들.

그 '가까스로' 살아 남은 날, 날들의 일상.


생의 매 마디마디마다 

수없이 만나고 마주치는 위기와 고통의 순간들

그 변곡점을 간신히 넘기며 살아가는 나, 너, 우리들은

상처받은 온 몸으로 저마다의 '항구(집)'에 닻을 내린다.

그리고는 샤워를 하면서 혹은 고단한 밥을 먹으면서

상처가 새겨진, 서로의 몸과 마음에 

말없이 손을 대기도 한다. 말없이 서로의 마음을 끌어 안기도 한다.

그 침묵의 몸짓은 말없이 말한다. '무사하구나 다행이야.'


3연의 '잠잠해서'에 다시 눈이 머문다. 그리고 마음은 또 울컥한다.

지금의 이 '잠잠함'이 

도무지 잠잠할 수 없었던 하루를, 지금까지의 생을 돌이키게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잠잠하지 않을 내일과 미래를 예고하는 듯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벗은 한 배(나)가 또다른 배(너)를 쓰다듬는 이 다독임.

그 사랑과 위안의 언어는 아름답다. 따스하다. 그윽하다. 


생은 그래서 살 만한 것이다.




--'저물 무렵도 한참 지난 늦은 밤의 귀갓길', Pixabay 무료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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