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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창훈 Jan 26. 2024

장석주의 '사랑에 실패한 이를 위로하는 시'

이 별에서 읽은 위로의 시

사랑에 실패한 이를 위로하는 시

                                                                   -장석주




오늘보다 내일이 나으리라

내일보다 모레가 더 나으리라


오늘 사랑에 실패했다면

내일엔 그 상처가 아물리라

모레가 되면

새로운 사랑이 생기리라


그러므로 죽지 마라

사랑 때문이라면 결코 죽지 마라






우리네 생에

그저 그렇게 스치는 만남 말고

아무 것도 재지 않고 불에 뛰어드는 부나방처럼

겁없이 무턱대고 달려드는 

지독한 사랑의 경험이 

살면서 한 번쯤은 도래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런 지독한 사랑은 아니더라도

누군가를 지순하게 마음에 담고 

누군가의 가슴 속으로 서서히 다가가 들어가고 싶어

오도가도 못하는 골목에서 서성이며

그 사람을 그 사랑을 기다리던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사랑은 늘 사랑이 끝난 후에야 

비로소 그 가치를 드러내는 법.

사랑이 끝난 후에 오는 고통의 경중은 

그 사람을 얼마나 깊이 사랑했느냐에 따라 그 무늬가 달라질 것이다.


사랑은

그 사랑이 이루어졌든 안타깝게 어긋났든

근본적으로 '실패'라는 말을 붙일 수 없는 마음의 영역이라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헤어짐이 주는 아픔은 분명

어떤 형벌의 이름으로 이별한 자의 마음 속 깊이 붉은 낙인을 새기기도 할 터이다.


사랑의 형벌로 가슴 아파하는 이에게

'오늘보다 내일이 나으리라' 라는 말은 그닥 위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내일엔 그 상처가 아물리라' 같은 고전적인 위안은 싸구려 위로처럼 들릴 것이다.

'모레가 되면 새로운 사랑이 생기리라' 라는 말은, 자신의 지나간 사랑을 모독하는 말처럼 들릴 것이다. 


그럼에도 분명

'사랑 때문이라면 결코 죽지 마라'는 말은 

말없는 손으로 가슴 한 켠을 어루만진다.


미치도록 누군가를 아파하고 사랑했다면

그 사랑의 미완성으로 인해

충분히 고통스러운 시간을 오롯이 통과해 내는 것만이

그 사랑을 제대로 애도하고 그 사랑과 온전히 작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에...

그렇게 온전히 이루지 못한 사랑을 애도하고 진정한 '안녕'을 이루기 위해서는

결코 죽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죽지 않고 살아 온전히 이별을 작별로 만들 수 있을 때

그리고 그 작별을 완성해 내었을 때

비로소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새로운 사랑도 뚜벅뚜벅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이 시의 위로는 그런 작별을 위한 

하나의 레퀴엠이자

또 다른 시작의 희망가일 수 있다.



--'사랑 때문이라면 결코 죽지 마라', Pixabay 무료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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