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별에 온 우리의 삶에 대한 시
-권지숙
골목에서 아이들 옹기종기 땅따먹기하고 있다
배고픈 것도 잊고 해 지는 줄도 모르고
영수야, 부르는 소리에 한 아이 흙 묻은 손 털며 일어난다
애써 따놓은 많은 땅 아쉬워 뒤돌아보며 아이는 돌아가고
남은 아이들 다시 둘러앉아 왁자지껄 논다
땅거미의 푸른 손바닥이 골목을 온통 덮을 즈음 아이들은 하나둘
부르는 소리 따라 돌아가고 남은 아이들은 여전히 머리 맞대고 놀고
부르시면, 어느 날 나도 가야 하리
아쉬워 뒤돌아보리
땅따먹기, 자치기와 구슬치기, 숨바꼭질, 말뚝박기...
골목에서 놀던 추억의 놀이를 이야기하면
아이들은 놀란다.
무슨 구석기 시대의 사람을 쳐다보듯 동그란 눈으로 묻는다.
"도대체 몇 살이세요?"
일단 이 시는
그리 오래지 않은 우리의 과거를, 그 과거의 추억을 잠시 떠올리게 한다.
가난한 골목이 휘인 등뼈처럼 존재했던
이 땅 어딘가의 동네 구석구석에서 뒷동산 여기저기에서
검버섯이 난, 그을린 얼굴과 깡마른 몸으로 도무지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게
어렸던 우리는 놀고 또 놀고 또 놀았다.
그러다 대문을 열고 한 엄마가 "형진아, 밥 먹으러 와라~~" 부르면
그 소리는 골목의 벽들을 타고 울림소리를 만들곤 했다.
그렇게 한 아이가 돌아가면 또 다른 부름, 다시 또 한 엄마의 외침...
그러나 이 시는 그 아련한 향수를 말하는 시는 아니다.
이 시는
이 별에 태어나서 단 한 번 뿐인 길을 가는
우리의 인생에 대한 친근한 은유(메타포)일 것이다.
나고 자라고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나, 너, 우리는 그것이 크든 작든 무언가를 가지려고 아등바등한다.
욕망을 쟁취하려는 갈망은 무언가를 소유하려는 집착을 낳고
무언가를 소유함으로써 우리는 타자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있다는
생의 행복감을 누리기도 한다.
그렇게 '배고픈 것도' 잊고, '해 지는 줄도' 모르고
한 생의 많은 시간들을
자신의 욕망의 땅을 넓히고, 남의 욕망의 땅을 넘보며
서로가 각자의 몫을 채우고 채우며 희열과 기쁨에 젖는다.
그러나 그 짧은 순간도 흘러간 시간을 돌이켜 보면 잠시,
'왁자지껄'한 세상에서 아무리 채우고 또 채워도
결국 어린 시절 어머니가 그렇게 부르셨듯
그가 부르시면 우리는 '애써 따 놓은 땅'이 아무리 아쉬워도 결국
집으로 터벅터벅 돌아가야 한다.
우리 중에 누가 더 먼저 가고 누가 늦을지 모르지만
'부르는 소리' 따라 가야 한다.
이 시를 굳이 종교적인 범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가 꼭 절대자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
그는 이 별에 나고 자라 병들고 죽어가는
우리 인간의 숙명같은 죽음,
바로 운명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죽음의 은유가
'집'이라면 얼마나 따스한가.
그 무섭기만 한 죽음(운명)의 목소리가
집에서 밥을 지어놓고 우리를 애타게 부르시는
엄마의 목소리라면 그 얼마나 안심인가.
해 질 무렵
경건히 울려퍼지는 종소리를 듣는 마음을
이 시는 잔잔히 불러일으킨다.
몇 차례 시를 읽고 평온한 마음으로 눈을 감아 본다.
그가 언제 어느 때든 '나'를 부르시면
나는 어떨 것인가.
그 부르심에
'흙 묻은 손'을 털며 일어서 그 집으로 터덜터덜 돌아가겠지만
분명 살아 온 이 생의 골목들이 '아쉬워' 뒤돌아보며 걸어가지 않을까.
이 시의 잔잔한 감동은 바로
마지막 연에 나오는
그 인간적인 돌아봄에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