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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창훈 Feb 03. 2024

로버트 프로스트의 '눈 내리는 저녁 숲가에 서서'

이 별에서 읽은 아름다움의 시

눈 내리는 저녁 숲가에 서서

(Stopping by woods on a snowy evening)

                                                                                 -로버트 프로스트



여기 이 숲이 누구의 숲인지 알 것 같다.

하지만 그의 집은 마을에 있다.

그는 모르리라 내가 여기 서서

눈 쌓이는 그의 숲을 바라보는 것을.


내 조랑말은 기이하게 여기리라

숲과 얼어붙은 호수 사이

가까이에 농가라곤 없는 곳에서 길을 멈췄으니

그것도 일년 중 가장 어두운 이 저녁에.


말은 마냥 방울을 흔들어댄다.

무엇이 잘못됐는지 묻기라도 하듯

그 밖의 소리는 오직 가볍게 스쳐가는 

바람소리, 부드러운 눈송이뿐.


숲은 아름답고, 어둡고, 깊다.

그러나 난 지켜야 할 약속이 있고

잠들기 전에 가야할 길이 멀다.

잠들기 전에 가야할 길이 멀다.






날은 저물고 

눈은 내리다 못해 소리없이 퍼붓던

인제의 자작나무숲


사랑도 잃고 사람도 잃고 

생의 표지판도 보이지 않던

이십 대 후반의 끝자락


무작정 떠났던 강원도 길

몸 곳곳에 생채기를 낸

하얀 살결의 나무, 나무들이  

말없이 눈을 맞고 있었다.

살을 에는 듯한 추위가 옷깃을 여미게 했지만

이상하게도 바람은 부드럽게, 나무와 나무 사이를 오며 갔고

그때마다 눈 송이 송이들은 제 몸을 스치며 웅 웅 소리를 내었다.


아무도 밟지 않은 숲길에 조심조심 발을 내딛다

한참을 멈추어 서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마음 속에서 들리던 속삭임.


'이대로 눈맞고 여기 서 있어도 좋겠다.'


--'눈 오는 숲에 매료되어 그 풍경 속에 오롯이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다', Pixabay 무료이미지--



이율과 효율을 중시하는 당위(當爲)의 세계에서

김현 선생의 말을 빌리자면

아름다움은 도무지 써먹을 데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온통

해야 하고, 해야만 하는 일들의 연속인 이 숨가뿐 세계에서

오직 유용한 것들에만 매진한다면 그 삶은 물기없는 사막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미국의 국민시인으로 불리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저 유명한 시에서,

눈 오는 숲에 매료되어 멈춰 선 '나'(시의 화자)는 

그 풍경 속에 오롯이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몸과 마음이 분리되지 않은, 온 몸으로 그 풍경의 일부가 되었던 것이다.


물론 평소와 다른 주인(나)의 수상쩍은 행동을 

기이하게 여긴 조랑말은 방울을 흔들어 대며

아름다움에 매혹된 그 순간을 깨뜨리고

'나'는 숲을 떠나 다시 가던 길을 가리라 다짐한다.


'잠'이 죽음을 상징한다면, '숲'은 아름다움의 매혹을 의미할 거라 생각한다.

사람은 불현듯 직관적으로 다가온 

어떤 놀라운 아름다움에 멈춰 설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에 오롯이 머물거나, 그 아름다움이 영원하기를 바란다면

그건 죽음을 각오한 비장한 용기가 수반되어야 하는, 무섭도록 깊고 두려운 일일 것이다.


아름다움을, 아름다움을 느꼈던 순간을 온전히 가슴에 품고 

먼 곳에서 등불을 켜든

저 가난하고 따스한 마을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것은 

다시 돌아가 아직 마치지 못한 생의 여러 과업들을 성실히 이루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우리네 인생이며 또한

지극한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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