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또다시 취준생이 되다' 시리즈
그동안 살면서 기회를 쫓아 무수히 많은 목표를 세워왔다. 목표란 원하는 것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자 꿈에 한 발짝 내디딜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준다고 한다. 하지만 목표가 일찍이 정해진다면 선택과 집중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분명 장점일 수 있으나 만에 하나 목표가 바뀌거나 사라지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운동을 시작해서 그만두겠다고 결심하기까지 1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학창 시절의 대부분을 헌납하면서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려왔던 나에게 유연한 대처, 다른 선택지는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동을 그만두어야 하는 수만 가지의 이유 속엔 '뼈아픈 추억'이 있다. 누군가는 '염증(厭症)' 또는 '패배 의식'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여기엔 잦은 부상으로 느끼는 압박감과 자신감 저하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구타로 인한 무력감, 모멸감 등의 부정적 경험이 있다.
훈련의 한 부분인 것처럼 운동장, 체육관, 심지어 시합장 등 습관적으로 이루어져 너무도 익숙했던 구타. 기절을 해도 피똥을 쌓아도 누구에게 말도 못 하고 일상적이었던 구타. 지도자의 감정 상태에 따라 손, 발, 주변의 손에 잡히는 물건을 닥치는 대로 사용하던 무차별적 구타는 몸과 마음에 깊은 상흔을 남겼다. 지금은 지도자로서 스포츠 경기 때마다 가끔 매스컴을 통해 마주하는 선·후배의 모습 속에 자유롭게 탈퇴조차 꿈꿀 수 없었던 고통의 기억은 후유증으로 소환되고 있다.
과거 '나에게 운동은 무엇인가'라는 고민보다 앞으로 '내가 무엇을 하든 운동 생활보다 더 힘든 일은 없다', '난 뭐든 할 수 있다'라는 생각만 하려고 노력했다. 공부라는 현실의 벽에 부딪혀 하찮고 오만한 생각이었다는 것을 차츰 깨닫게 되었지만. 결국, 운동선수 전형으로서 체육대학교 진학 또는 실업팀 입단이 아닌 일반 대학교에 체육교육 전공자로 진학해야겠다는 마음뿐이었다. 그렇게 고3 마지막 시합을 끝낸 후부터 운동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입학시험 준비를 하였다. 남들보다 10여 년 뒤처진 학업을 따라잡기 위해 6개월간 매일 1~2시간의 쪽잠을 자며 공부했다. 분명 남들과 같은 출발선에 서 있는 듯했으나 내게만 보이지 않던 그 무엇, 그것들과 싸우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2009년 로마 세계 수영선수권대회에서 2개의 은메달을 획득한 독일 의대생이었던 헬거뮤(Helger Meeuw)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운동, 학업 그리고 가정의 조화를 유지하는 것 그리고 많은 부담으로 인해 녹초가 되지 않도록 하기는 쉽지 않다. 운동이나 학업에서 기적이란 없다. 훈련하지 않으면 빠르게 수영할 수 없으며, 공부하지 않으면 시험에 붙을 수 없다. 운동에서 배운 효율성이 학업에 도움이 된다."라고 말이다.
희망은 '바라던 것이 가능해지고 최고의 결과가 될 것이라는 감정'이며, 낙관주의는 '사건을 좀 더 유리한 쪽으로 보고 가장 유리한 결과를 고대하는 경향'을 말한다. 그 시절 운동이라는 경쟁에서 자유롭고 싶었고 늦은 학업의 조급함과 성급함을 내려놓고 싶었으며, 결과에 나를 맞추지 않고 좀 더 길게 보고 싶었다. 할 수만 있다면 뒤늦은 희망과 낙관주의가 내 삶에 충만하기를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