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심적으로 힘들 때 남편의 이런저런 모습들에 대해 친정엄마에게 하소연한 적이 있었다.
엄마는 맞장구도 쳐주고 위로도 주었다가도
"사람 다 거기서 거기야. 모든걸 만족하는 사람이 어디있니. ㅇ서방정도면 훌륭한거야.
원래 부부는 한 명이 희생해야 유지될 수 있어."
그 때는 그냥 내가 다 참는다고만 생각했다.
실제 그러기도 한 것 같기도 하고. 참 많은 시간을 인내했다.
사실 난 정말 다른 사람들에 비해 인내는 잘하는 편이다.
좋아하는 운동도 마라톤이고 좋아하는 게임도 오랜 시간 공들여야하는 게임들이었다.
하지만 부부생활을 유지하며 왜 나만 참아야 하는거야 하고 울컥 울컥 올라왔지만
철저하게 논리적인 그 사람 앞에서는 나의 마음 속 이야기는 꺼내기가 어려웠다.
말을 하다보면 늘 논리적으로만 맞춰들어가니 내가 더 할 말이 없었고 대화는 늘 거기서 끝나버렸다.
이제는 그 사람은 그런 성격이구나 하고 모든 것을 포기할 무렵이 되서야
남편은 나에게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고 현재는 그 변화에 발맞춰 가는 중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동안의 배려없는 태도들을 아이들이 보고 배웠을 줄이야!
자동차에서 각자의 가방들과 가족을 위한 장바구니가 있었을 때
중학생 아들이 자기짐만 덩그러니 들고 가버렸나보다.
남편이 집에 들어오는 내내 아들에게 잔소리를 했다.
"너 짐만 그렇게 들고 가버리면 어떻하니. 동생이고 여자인데 너 짐까지 다 들고 오게 해야겠어?!"
"내 짐 내가 다 들었어!"
"안에 하나 더 있었잖아. 그것도 무거운데 동생이 낑낑거리며 들고가는데 그걸 못본 체 그냥 가버리면 어떻하니?"
"있는 줄 몰랐지. 그리고 못봤어."
"못 본 척 한거겠지. 그리고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내 짐을 다 내렸어도,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필요한지 한 번 둘러봐야하는거 아니야? 넌 왜 이렇게 이기적이야."
"..."
할 말은 정 말 ! 많았지만 부자간의 싸움에 끼지 않기로 마음먹고 집에 돌아온 적이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주차를 하는데 차 문을 열기 애매한 곳이라
내가 먼저 짐들을 바리바리 챙겨들고 내렸다.
주차를 마친 그는 늘 그렇듯 핸드폰에 시선을 고정한 채 나를 따라왔고
양 손에 짐을 가득 들고 난 공동현관 비번을 누르고 엘레베이터 층을 누른 후
지긋이 바라보며 말했다.
"회장님 오늘 많이 힘드셨나봐요? 퇴근도 늦으시고?"
"...응??"
"아니, 짐도 내가 양손 가득 다 들고 엘레베이터도 내가 누르고, 난 회장님인 줄 알았지."
"아 미안 미안 내가 배려가 부족했네. 이리줘."
"얼마 전에 아들한테 도움이 필요한 일은 없는지 주변을 둘러보라고 하지 않았어?"
"어어 그랬지."
"그래, 잘하자."
내로남불도 아니고 나는 괜찮고 딸들이 힘들어 하는 건 못보겠다는건가?!
그래도 예전같으면 그냥 속으로 짜증내고 넘어갔을 문제를
이제는 이렇게 표현을 해보기로 했다.
남자의 '성향'상 정말 모르는 부분들이 있다고 하니 알려주고 섭섭해하지 않기로.
부부는 한 명의 '희생'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 희생은 결국 터지게 되어있고, 억울하고, 참을 수 없는 우울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부부는 서로 같든, 다르든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고 알려주며 서로 배려해가는 관계가 아닐까 싶다.
물론 처음부터 배려가 철철 넘치는 사람들이 분명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을 선택한 것도 나이고, 변화를 원하는 그 사람의 마음도 알기에
내 인생이 우울해지지 않게 내가 바뀌어야 함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