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것 하나 맞지 않는 우리 부부는 속도 역시 다르다.
남편은 빠르게 자기 할 일을 해치우는 편이고
나는 무슨 일이든 시간이 걸리는 타입이다.
그래서 해야할 일에도 좀 느긋한 편이고
그런 나를 보는 남편은 아마 많이 답답했을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남편은 뭔가를 사도 잘못 사는 경우가 많다.
나는 그런 부분들이 또 이해가 되질 않는다.
수전 하나를 교체하려고 해도 다 공용이라 똑같다며 덜컥 사서 갈아 놓았지만
이사간 집에는 맞지 않아서 다시 사야했고
청소기 먼지봉투는 청소기 겉면만 보고 구매하여
다시 모델명에 맞는 걸로 사야했으며
눈대중으로만 보고 샀다가 자리를 잡느라 골치였던 것들도 있었다.
사이즈에 모델명에 색상까지 보며 장바구니에서만 며칠을 지새우는 나와는 정말 딴판이다.
난 꼼꼼하게 확인하지 않는 그 사람이 이상했고
결정장애를 가진 것 마냥 망설이는 나를 남편은 이해하지 못했다.
남편은 뭐든 너무 빠르게 결정하고 실행하니 내 눈에는 대충대충하는 것처럼 보이고
난 뭐든 이것저것 생각을 하고 하다보니 남편 눈에는 말로만 하는 것처럼 보인다.
서로 이해할 수 없지만
서로 크게 문제되지 않으니 그냥 그렇구나 하며 서로 살아왔던 것 같다.
하지만 일을 같이 시작하니 문제가 달라졌다.
남편이 시켜놓은 일에 내가 영 속도가 나질 않으니
그 사람은 답답하지만 말을 못하고 있고
나는 나대로 할 일이 많고 생각보다 진도가 확확 나가지 않으니 나 또한 미칠 노릇이다.
빠른 사람의 속도에 맞추려면 난 잠을 줄여야 했고
설거지를 미뤄야 했고 빨래를 미뤄야 하고 청소를 미뤄야 한다.
하지만 현실에선 오후시간엔 아이들 학원 픽업에
한 달에 두 세번 아이들 병원 왔다갔다 하는 시간에
아침과 저녁 먹을거리에
하루에 두 세번씩 돌아가는 빨래에
저녁이 되면 기력이 딸릴 때가 많다.
그래도 이건 내가 못한 일이니
자기와 밥도 같이 먹어줘야하고 놀아주기도 해야하고 막내도 재워야 한다.
평균 수면시간이 4-5시간 나오는 나에게
그 사람의 빨리 빨리는 늘 벅찰 때가 많다.
그래도 보여지는 걸로만 본다면
빨리 빨리 해치울 수 있는 일들에 내가 뭉그적 거리는 듯 보이기에
내 마음 속에는 죄책감만 커져가고 있다.
다 내 몫인데 내가 잘 해내고 있지 못하구나
오늘도 결국 난 나의 일을 다하지 못했구나
이제 말뿐인 열정은 그만 해야겠구나
그렇게 자꾸 나에 대한 자신감이 없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