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전장
화나고 못난 거인
(존재하지 않는 슬픔에 관하여...)
"저 너무, 너무 슬퍼요."
"그 슬픔이 어디 있죠?"
"음…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느껴지긴 해요."
"맞아요.
느껴지긴 해도
존재하는 건 아니에요."
"슬픔은
몸을 때리지 않아요.
소리도 없고
형체도 없어요."
"어디에도 없는데
어떤 날은
숨을 막고
손끝을 떨게 해요."
"저도 이제 알 것 같아요.
이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요."
"그런데도
마음 한 구석에서
아직 작게 무너지는 느낌이 들어요.
누구도 떠난 건 아닌데
떠나고 없는 것 같고,
뭔가 잃어버린 것 같아요."
"음... 그럼!
거인을 상상해 보세요.
너무 커서
이 방에 들어올 수도 없는
덩치 큰 거인을요."
"…네.
상상했어요.
근데 그 거인은
너무 못생겼고
무섭게 인상을 쓰고 있어요."
"이제!
그 거인을 꺼내서
제게 주세요."
"네…?!"
"그 못나고, 화난 덩치 큰 거인을
손으로 꺼내
제게 줘 보세요."
"… 못해요."
"왜 못 꺼내죠?"
"없어요.
손으로 잡을 수도 없고
부를 수도 없어요."
"맞아요.
그 거인은
원래 거기 없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