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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말, 하나의 진실

언어의 전장

by 영업의신조이

결핍꽃

(늘 부서졌지만 여전히 여기에 있다)



나는 언제나

거울 앞에 서 있었다


거울은 나를 비추었지만

그 속의 얼굴은 끝내 내가 아니었다


닮으려 다가설수록

그 거리는 더 멀어졌고

투명한 유리 한 장이

나와 나 사이에 놓여 있었다


그 틈은 바람처럼

날마다 두 심장 사이를

스쳐 지나갔다



나는 언어 속에서 다시 태어났다

말을 배우기 전

어머니의 손길과 아버지의 표정 속에서

잊힌 이름들의 그림자를

다시 떠올렸다


내 이름은 내 것이라 불렸으나

그 울림은 언제나 타자의 것이었다


욕망은 늘 눈동자에서 피어났다

내가 원한다고 믿었으나

그것은 그들이 원하는 것이었다


나는 늘 따라가는 나의 발자국을

서글피 내려다보았다

끝내 손끝에 닿지 않는 꽃을 잡으려 애썼고

그 순간들 흩어지는 물결 위에서

나는 잎의 떨림만을 좇았다


그 떨림마저 없었다면

나는 살아갈 수 없었을까?



언어는 나를 구조했고

그 구조는 나를 부서뜨려갔다


고백과 침묵 사이의 틈

의식과 무의식의 균열 속에서

나는 늘 조각난 파편들이었으나

그 흩어진 파편 덕에

오히려 하나로 여기에 서 있다


결핍은 공백이 아니었다

그것은 씨앗처럼

검은흙 속에 숨어 있다가

빛을 향해 자라나는 힘이었고

숨결이 흘러드는 틈이었으며

보이지 않는 심장의 맥박이었다.


오늘도 나는 결핍의 흙 속에서 쉬며 산다

결핍은 나를 무너뜨리는 골짜기가 아니라

나를 일으켜 세우는 뿌리였다


나는 빈자리에서 피어나고

언어의 틈에서 다시

꽃이 된다


그 꽃은 결코 닿을 수 없는

실재를 향해

끝없이 몸을 기울이다

꽃잎은 빛을 향해 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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