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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착한마녀 Dec 30. 2021

드로잉-어머님표  청국장

계절마다 떠오르는 음식이 있다.

여름에는 얼음 동동 띄운 새콤달콤한 오이냉채가,

겨울에는 구수한 청국장이 떠오른다.



시어머님께서는 겨울마다 청국장을 손수 만드셨다. 콩을 삶아 짚을 덮고 미지근한 방구석에 일주일 가까이 두고 나면 청국장이 되었다. 그 덕분에 겨울철에는 온 집안에 퀴퀴한 발 냄새가 진동을 했다. 방문을 열고 나오면 진한 냄새가 내 콧구멍으로 확 밀려들어왔다. 숨길 수 없는 나의 찡그린 얼굴! 손이 코에 본능적으로 달라붙는다.  


'이렇게까지 불쾌한 냄새가 진동하는 걸 꼭 집에서 만드셔야만 하나!'


시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시'자가 들어가는 모든 것이 괜히 보기도 싫었던 시절,

나의 불만은 하늘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청국장을 쳐다보기도 싫었다.  

그렇게 미운 정이 잔뜩 들었던 청국장인데. 이제는 겨울이 되어 찬바람이 불 때면 꼭 생각이 난다.



올해 겨울에도 어머님은 집에서 청국장을 만드셨다. 정성이 가득 담긴 어머님표 청국장이 우리 집까지 전해졌다. 양파 송송, 팽이버섯, 잘 익은 김치 한 움큼, 청국장 넉넉히 넣고 뽀얀 두부까지 넣어서 보글보글 끓이면 온 집안에 구수한 냄새가 퍼진다. 아이들은 예전의 나처럼 코를 손으로 쥐며 아우성이다.



나에게도 그 냄새가 사랑스럽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정으로 포용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뜨거운 두부와 함께 청국장을 떠서 밥에 쓱쓱 비벼 한입 가득 넣으면 겨울의 온갖 추위, 쓸쓸한, 건조함, 삭막함...

겨울에 떨치고 싶은 모든 것이 날아가는 듯하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입맛이 왜 변하는지 신기할 때가 있다. 그토록 싫어했던 파, 마늘, 양파가 지금은 달달하게만 느껴진다. 이렇게 입맛이 변해가는 과학적 근거는 잘 모르겠다. 어떠한 화학작용이 일어나는지 모르겠지만 청국장을 사랑하게 된 내 입맛은 왜 변하게 되었는지 알 것 같다.



나이 들면서 조금씩 철이 들어 어머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게 된 것이 아닐까? 추운 겨울철 가족들의 건강을 위해 가족들의 불만도 견뎌내고 만들어낸 청국장!

청국장의 구수한 냄새에 어머님의 사랑과 정성의 진한 냄새가 더해진 것을 깨닫게 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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