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늘도동주쌤 Apr 13. 2023

사제지간의 첫 외출

A 학생 이야기 1

A 학생과의 만남은 평범하지 않았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들어선 교정, 그리고 첫 담임. A는 나의 반이었다. 보통의 학생들과는 다르게 무언가 아우라를 뽐내고 있던 A를 예의주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A가 나에게 찾아왔다. 머리를 자르러 외출해야 한다고. 기숙학교에 지내고 있는 학생들은 학교 규정에 맞게 머리를 자르고 입소했어야 했는데 A는 그 규칙에 맞게 자르지 않았던 것이다. A의 부탁을 듣고는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신입으로 들어온 어리바리한 선생님을 이용해서 외부에서 금지물품들을 이것저것 사 오려는 속셈이 아닐까. 외부에 데리고 나갔다가 괜히 사고가 발생해 큰일 나는 거 아닐까. 혹은 갑자기 도망가서 집에 가버리는 건 아닐까. 교사로서의 꿈을 이제야 이뤘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버리는 건가 하는 생각에 대답이 선뜻 나오지 않았다. 고민하고 있던 나에게 A는 머리를 꼭 자르러 가야 한다고, 그리고 기숙사 선생님에게 허락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이럴 때는 물어보는 게 상책이라고 학교 규정 담당 선생님에게 연락을 드려 물어보았다. 그렇다. 외부에 데리고 나가 미용실에 갔다 오는 것은 담임교사의 역할이었다. 그리하여 교정 밖으로 학생과의 첫 외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약속한 시간에 나타나준 A와 나는 차를 타고 읍내로 나갔다. 면소재지에 위치하고 있는 학교에서 읍내까지는 차로 10분이면 도착했다. 워낙 작은 동네여서 미용실의 개수도 많지 않았다. 차로 이동하며 여기 미용실이 어떨까 제안을 했지만 조수석에 앉아서 미용실을 본 A는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다른 미용실을 찾았다. 혹시나 하는 사건사고의 위협 속에서 나는 긴장감에 사로 잡혀 손바닥에 땀이 나고 있는데 A는 느긋했다. 그리고 본인의 마음에 드는 곳을 발견하고는 미용실로 들어갔다.


미용사 선생님은 A의 요구사항을 듣고 머리를 자르기 시작하면서 나는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머리 자르는 동안에는 어디 도망 안 가겠지. 잠시 동안은 긴장을 풀고 있어도 되겠지 하면서도 탈출할 수 있는 동선이나 금지 물품을 살 수 있는 곳들이 어디인가 머릿속으로 계산해보고 있었다. 출입구는 하나. 화장실은 외부에 없고, 2층이니까 창문으로는 나갈 수 없겠지. 신입 교사의 잘못된 패기였을까.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시나리오를 만들어보고 있었다. 하지만 속이 타들어가는 듯한 나의 걱정이 무색하게도 A는 머리를 단정하게 자르고 미용실을 나섰다.


저녁 시간이 되어 근처 햄버거 가게로 걸어갔다. 나의 불안한 마음을 A가 알았는지 나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어주며 예전에 있었던 학교에서의 일들을 이야기해 주었다.

“작년 중학생 때까지 저희 학년 애들이 사고를 많이 쳤어요. 그리고 중학생 때 저를 만났으면 쌤이 엄청 힘드셨을 거예요. 지금의 저를 만난 게 쌤한테는 행운인 거예요. “

실제로도 학기가 시작되기 전 주변의 많은 선생님들이 걱정 어린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며 이야기해 주었다. 지금 맡은 학년에서 많은 사건이 있었다고. 앞에서는 웃으며 다가오지만 뒤에서 뒤통수치며 칼 꽂는 아이들이 있을 거라고. 진짜 칼을 꽂지는 않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선생님의 믿음을 저버리는 행동을 할 거라는 조언들을 듣고 이 학생들을 만나보니 계속 오해하고 의심할 수밖에. A는 이외에도 본인에게 있었던 일도 알려주며 나의 긴장을 풀어주었다. 지역 가요제에 나가 상도 탄 적이 있고 노래도 잘 부른다고. 교사인 내가 이야기를 주도하며 학생의 긴장을 풀어주어야 마땅한데 오히려 학생이 나를 다독여주다니. 그렇게 사제지간의 첫 데이트를 에스코트해 주던 A와 저녁을 잘 먹고 아무 일 없이 학교로 잘 복귀하였다.


돌아와 생각해 보면서 미션을 잘 수행했다는 안도감과 동시에 겉모습으로만 학생을 판단했구나 하는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내면을 보듬어 주는 참교사가 되어야지 다짐하며 교단에 섰지만 의심과 오해로 내 마음을 가득 채웠다는 생각에 너무나도 부끄러웠다. 이 일을 통해 나의 모습은 한번 더 깨졌다. 그리고 참교사의 길로 한 걸음 더 걸어갈 수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 쌤! 공부는 왜 하는 거예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