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집사 경인에게 묻다.
사람들은 자신만의 작은 숲을 찾기 원합니다. 잎새 사이 반짝이는 볕이 흔들흔들 내리쬐고 크게 내쉬는 숨에 그간 쌓였던 근심이 잊히는 곳. 온전히 나를 채우는 쉼의 공간입니다.
어떤 이는 화단가에 맺힌 작은 꽃봉오리를 바라보며 일상의 노곤함을 잠시 놓아두고, 또 누군가는 이야기가 켜켜이 쌓인 낱말 사이에서 잠시 쉬어가죠.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했던 현실 속에서 나만의 작은 숲을 발견한 한 사람이 있습니다. 뙤약볕 아래에서도 그저 즐겁기만 하다는 그의 작은 숲은 어떤 모습일까요? 그리고 그의 단단하고 유연한 인생의 뿌리는 얼마나 든든히 그의 일상을 받치고 있을까요.
내 주위, 삶의 근육을 기르는 사람들의 이야기 GREW-UP. 열세 번째 에피소드. 식집사 경인님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안녕하세요. 경인님.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안녕하세요. 매니저님! 요즘 정말 바쁘게 지내고 있어요. 특히나 일적으로 많이 바빠졌고요. 그러면서도 취미인 식물 기르기에 전문성을 키우고 싶은 마음에 바쁜 틈 사이에도 관련 강의를 찾아보거나 책을 읽으면서 지내고 있네요. 그래서 일이 점점 커지고 있고요.(웃음) 네. 그렇게 하루하루 지내고 있어요.
분주하면서도 알찬 하루를 쌓아가고 있으시네요. 사실 저도 식물 기르기를 정말 좋아해요. 지금은 고양이를 기르고 있어서 예전보단 못하지만요. 식물 키우는 과정이 참 즐겁잖아요.
그렇죠. 재밌어요. 저도 사실 식물에 크게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요. 코로나 이후에 집에 있는 시간이 부쩍 많아지면서 식물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이전에도 식물은 잘 몰랐지만 꽃은 좋아했거든요. 가끔씩 꽃을 사서 방에 두기도 했는데 일주일이면 시들어버리니까. '화분 하나 사볼까?'라는 생각이 화분 10개가 되고 20개가 됐네요. 그러다 우연히 중랑구청에서 텃밭 운영한다는 공고를 보고 지원을 했는데, 덜컥 당첨이 돼서 텃밭도 하나 가지고 있고요.
중랑구청에서 텃밭을 분양하는군요.
제가 알기론 구청에서 운영하는 텃밭이 세 개가 있을 거예요. 원래는 두 곳 정도 있었는데, 구민들의 호응이 너무 좋아서 하나를 더 만들었다 하더라고요. 제 텃밭은 저기 용마산공원 옆 돌산체육공원 인근에 있어요. 그곳에서 열심히 고추도 심고 토마토도 심고, 그러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아이들을 돌보고 계시네요. 집에서 화분도 키우시고, 텃밭도 따로 운영하시면서요. 어떤 아이들을 키우시고 계시는지 살짝 알려주실 수 있으실까요.
상추, 치커리, 로메인, 케일 같은 쌈 채소도 기르고 있고요. 도시농부 수업에서 나눔 받은 롱그린고추도 텃밭에 키우고 있어요. 그리고 가지, 방울토마토도 한편에 심었고요. 처음엔 어떻게 심는지도 몰라서 헤매기도 했는데, 요즘엔 관련 정보들을 찾기가 쉬워서 알음알음 배우며 키우다 보니 작물들이 정말 잘 자라더라고요. 그럼 또 쑥쑥 자라는 모습을 보며 큰 기쁨을 얻어요. 사실 실질적인 수혜자는 따로 있어요. 부산에 계신 부모님이세요. 텃밭에 심은 아이들이 혼자 먹기에도 벅찰 정도로 열매를 맺어서 서울에서 키운 풀떼기들을 부산으로 매주 두 박스씩 보내드리고 있어요. 이제 제가 우체국에 들어가면 우체국 아저씨가 상추요? 하시면서 바로 박스를 테이핑 해서 주세요. ㅎㅎ
정말 많이 키우시네요! 저희 집도 올해 방울토마토를 심었는데, 무서울 정도로 쑥쑥 자라더라고요. 옥상에 숲을 이룰 정도로요.
그러니까요. 제가 지금 키우는 방울토마토 모종을 부산에서 구매했어요. 똑같은 모종을 5개를 사서 2개는 부산 부모님 댁 옥상 화분에 심고, 3개는 제 텃밭에 심었거든요? 그런데 신기하게 같은 모종인데도 화분에 심은 모종이랑은 다르게 텃밭에 심은 토마토는 너무 크게 자라는 거예요. 그 차이를 보면서 아 이래서 식물도, 사람도 더 넓은 세상에 나가야 하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화분에 심은 모종과는 다르게 텃밭에 심은 토마토는 너무 크게 자라는 거예요.
그 차이를 보면서 '이래서 식물도, 사람도 더 넓은 세상에 나가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번 1934청년시대를 통해 <중랑 청년 식집사 : 식집사는 오늘도 풀멍중>을 기획하셨죠. 이 모임을 기획하신 이유가 궁금하더라고요.
저도 이제 식물 분야에 관심을 가진 지 1~2년밖에 되지 않았어요. 그런데 그 시간 동안 식물을 기르면서 일상에 정말 많은 위안을 받았거든요. 요즘 아무래도 코로나 때문에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난 청년들이 많아졌잖아요. 우리 젊은 세대들도 식물 키우기의 재미를 통해 일상에 생기가 돋아나면 좋겠다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가까운 지역에 생활하는 분들과 함께 식물 키우기의 즐거움을 함께하고 싶어 <중랑 청년 식집사>를 기획하게 됐어요.
특이하게도 팀원을 당근 마켓에서 모집하셨죠.
맞아요. 당근 마켓에서 팀원을 모집했어요. 관심이 없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정말 많은 호응이 있어서 놀랬어요.(웃음)
저도 봤어요. 팀원 모집글요. (웃음)
아 정말요? 하하 사실 팀원이 모이지 않으면 친구들이랑 하려고 계획까지 다 세웠어요. 그런데 정말 많은 분들이 하고 싶다는 문의를 주셔 가지고 친구들한테는 '우리는.. 그냥 따로 보자..' 고 연락했었죠.
그럼 <중랑 청년 식집사>는 어디까지 진행되셨나요?
지금 모인 팀원들이 식물에 대한 이해나 숙련도가 서로 달라요. 저처럼 식물을 키워 본 경험을 가진 분도 계시고, 키우다가 실패한 분도 계시죠. 그래도 우리가 식집사잖아요? 식물은 하나 키워봐야 하지 않겠냐 싶어 몬스테라랑 율마를 구매해 같이 분갈이를 했어요. 그리곤 분갈이한 녀석들을 각자 집에 데리고 갔는데요. 몬스테라가 너무 잘 자라서 주체가 안된다는 이야기도 나누고, 새순이 나와 너무 귀엽다는 이야기도 매일 함께 톡 방으로 나누고 있어요.
또 최근에는 작은 유리병 안에 조그마한 식물들을 키우는 테라리움도 최근에 같이 만들었어요. 테라리움에 키우는 아이들이 큰 관리 없이도 잘 자라거든요. 또 같이 식물 관련 책도 하나씩 구매해 비대면으로 독서 나눔도 하고 있어요. 요즘엔 식물원에 가고 싶은데 아무래도 요즘 코로나 확진자 수가 많아지고 있는 추세라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에요.
코로나 상황 때문에 활동하기가 어려우셨을 텐데 부지런히 할 수 있는 것들을 하셨군요.
맞아요. 어떻게 보면 저희가 이 모임을 하기 전에는 서로 알지 못하는 사이였는데, <중랑 청년 식집사>를 통해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동네분들도 만나게 되고, 같은 관심사로 이야기 나눌 수 있어서 정말 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에요.
왜 그런 말도 있잖아요. 식물 좋아하는 사람 중에 나쁜 사람 없다! (웃음)
네 맞아요! (웃음)
<중랑 청년 식집사>는 '식물'이라는 같은 관심사 안에서 모인 동네 커뮤니티 모임으로 보면 될까요.
네 맞아요. 지금은 취미 나눔 위주로 모임을 진행하고 있지만, 앞으로 함께 하고 싶은 팀원들이 있다면 도시농업 분야로 전문성을 키울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요즘 도시농업 분야가 떠오르고 있어요. 관심도 뜨겁고요. 구청 텃밭 분양 경쟁률이 10:1일만큼요. 3년째 분양 신청을 했는데도 선정되지 못하셨다는 분도 계시더라고요.
특히 요즘은 <치유농업>이라는 개념도 많이 떠오르고 있어요. 네덜란드에서 처음 만들어진 개념인데 유럽은 이미 활성화가 많이 되어 있죠. 한국은 이제야 작년에 관련 법 제정을 한 상태라 앞으로의 기회가 많을 거예요. 그래서 팀원들이 지금처럼 식물 취미를 가지고 있다가 나중에 관심이 생기면 같이 관련 자격증도 취득하고 창업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치유농업이요. 처음 듣는 개념인데 뭔가 와닿아요. 사실 저도 식물에게 치유받은 경험이 있거든요. 죽은 줄만 알았던 식물을 살려냈을 때 정말 치유받았다는 감정을 선물 받은 적 있어요. (웃음)
그런 경험이 있으셨군요! 정말 공감해요. 식물들이 꽃이나 열매를 맺으면 그렇게 귀엽잖아요. 또 은근히 운동도 되고요. 때맞춰 분갈이도 해줘야 하고, 물도 줘야 하고, 시든 잎도 떼어줘야 하니까요. 그래서 식물을 기르면 한 시도 게으르게 있질 못하는 거 같아요.
그럼, 지금 취미를 하면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음. 저는 특별한 에피소드보다는 제 일상이 많이 변했다는 걸 매일 느껴요. 제가 진짜 잠이 많아요.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는 걸 잘 못하는데, 아침이 되면 지금 기르는 식물들이 또 얼마나 자랐을까. 이게 너무 궁금해서 벌떡 일어나 막 화단가로 보러 가는 거예요. 그러다 문득 예전과 다른 저를 발견하는 거죠. '아 얘네들이 나를 움직이게 하는구나' 하면서요. 그리고 제가 직접 찾아 공부하는 것도 처음이에요. 참 신기하게도 바쁜 와중에 강연도 듣고, 책도 보면서 공부를 하는데 전혀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거죠. 정말 알고 싶어 찾아보는 마음이 크거든요. 또 이렇게 <중랑 청년 식집사> 모임을 기획해서 좋은 분들도 만나게 되고, 덕분에 매니저님과 인터뷰도 나누게 되고요. (웃음)
또 어떨 땐 식물들을 보면서 철학적인 생각도 많이 들어요. 씨앗이 정말 작잖아요. 그런데 그 씨앗들이 자라서 단단한 뿌리를 내리고 울창하게 가지를 뻗는 모습을 보면서 '얘네들은 다 알고 있었을까' 싶은 거죠. 어떻게 보면 우리 모두도 엄청난 잠재력의 씨앗을 품고 태어난 하나하나의 존재인데 그걸 알지 못해 불안하고 걱정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문득 들고요.
아침에 벌떡 일어난다는 말 정말 공감해요. (웃음) 저도 스무 살 즈음 시절에 키웠던 다육이가 오늘은 꽃봉오리를 피웠을까. 매일 아침 게으름도 없이 일어나자마자 베란다로 달려갔거든요. 그러다 만개한 꽃을 마주한 순간이 아직도 기억나요.
맞아요. 맞아요. 아이들이 열매를 맺거나 꽃을 피울 때 짜릿함이 탁하고 터져 나오잖아요. 그 느낌이 어떤 성취이기도 하고, 선물을 받은 느낌이기도 하고요!
네 맞아요 선물! 선물이라는 표현이 딱 맞아요.
제가 성격이 진짜 급해요. 카톡에 숫자가 찍혀있는 걸 보지 못하거든요. 메시지가 오면 바로바로 회신해야 직성이 풀릴 만큼이요. 어느 날은 방울토마토가 주렁주렁 열렸는데 익을 생각을 안 하더라고요. 이만큼이나 컸는데 익지 않을 리가 없었거든요. 뭘 더해줘야 하나 싶은 생각에 검색을 해보니 방울토마토가 익지 않는 가능성이 두 개가 있다는 거예요. 하나는 광량 부족, 그니까 햇빛이 부족하면 토마토가 익지 않는대요. 그런데 텃밭에 심은 토마토가 햇빛이 부족 할리는 없었거든요.
토마토가 왜 익지 않았을까요?
두 번째가 인내심 부족이었어요. 기다림이 필요하대요. 알고 봤더니 익기까지 한 달이나 걸린다고 하더라고요.
한 달이나요?
네, 전 한 3일이면 될 줄 알았거든요.(웃음) 그때 알게 된 거 같아요. 뭐든 재촉하지 말고 기다려 줘야 한다는 걸요. 그리고 한 달 정도 기다려보니 정말 방울토마토가 새빨갛게 익더라고요. 기다리는 건 힘들었지만, 빨갛게 익은 토마토를 보니 인내한 시간만큼의 대가를 얻은 듯한 기분이 들더라고요.
지금의 취미 이전에 따로 즐기던 다른 취미가 있으셨나요?
딱히 없었던 것 같아요. 제가 일 중독이라서 시간 될 때 가끔 여행 가는 거 말고는 취미가 딱히 없었어요. 직접 찾아 공부도 해보고 싶을 만큼 애정이 갔던 취미는 없었던 것 같아요.
식물들이 경인님의 에너지를 채워주고 있나 봐요.
뭔가 케미가 잘 맞나 봐요. (웃음)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는 저만의 쉼터인 것 같아요.
쉼터요.
네 쉼터요. 그리고 가끔은 식물들을 가꾸면서 주변의 자극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몰입할 때도 많아요.
어떤 몰입일까요?
텃밭엔 그늘이 없어요. 여름날에 텃밭을 가꾸는데도 더운 것도 못 느낄 때? (웃음) 요즘 무더위가 장난 아니잖아요. 제가 일을 하다 보니까 잠깐잠깐 짬이 날 때 텃밭에 나가곤 하는데, 항상 그 시간대가 오후 2~3시쯤이거든요.
농부들도 그 시간대엔 피하잖아요. 하루 중 가장 뜨거운 시간이기도 하고요.
가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거든요. 그럼 그 시간대에 텃밭에 가서 물도 주고 식물들이 오늘은 또 이만큼 자랐구나 이곳저곳 살펴보면 정말 더운 줄도 모르고 한참이나 있는 거예요. 그러다 행정안전부에서 보낸 '오늘은 폭염주의보가 있으니 텃밭활동을 자제하세요' 알람 하나에 현실 세계로 돌아오는 거죠. 그제야 주변을 둘러보니까 그 넓은 텃밭에 저만 덩그러니 있는 거예요.(웃음) 이제 가야겠다 정신이 들어 집에 급히 가본 적도 있고요.
식물에 대한 열정이 더위를 이기셨네요. (웃음)
그렇죠. 사람들이 아이를 낳아 육아를 하면 애기 똥 기저귀 보면서도 '아 이쁘다. 귀엽다' 그러잖아요. 이제야 그 느낌이 뭔지 알 거 같아요.
정말 일이 바쁘신 와중에도 원예활동으로 에너지를 많이 얻으시는 것 같아요. 원예활동이라는 게 몸을 많이 써야 하는 일이라 피곤하진 않으세요?
주변에서 많이들 그렇게 말해요. '피곤할 거 같다. 쉬면서 해'라고요. 사실 제가 체력이 좋은 편이 아니에요. 일을 해도 금방 피곤해져서 누워있어야 하는 체력의 소유자거든요. 그런데 원예활동을 하면서부터는 몸을 쓰는데도 오히려 에너지를 충전하는 느낌이에요. 일을 하면서는 머리를 많이 쓰잖아요. 그런데 식물들을 가꾸면서는 몸을 써야 하는 일이 많으니까, 오히려 잡생각이 없어지더라고요. 식물들을 살피는 순간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좋아요. 그래서 텃밭에 다녀온 후에는 오히려 개운한 느낌도 있고요.
토마토를 키우면서 알게 된 거 같아요.
뭐든 재촉하지 말고 기다려 줘야 한다는 걸요.
정말 건강한 취미를 가지고 계시네요. 정말 원예활동이 경인님의 일상을 든든히 받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원예활동 말고도 경인님의 일상을 지탱하는 존재들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그래도 제 일상을 가장 많이 지탱하는 건 제 주변 사람들이 아닐까요? 저를 항상 응원해 주고 제 곁에 있어주는 사람들에게서 힘을 많이 받거든요. 멋진 답변을 드렸어야 했는데 (웃음)
아니에요. 본인의 이야기를 솔직하는 것만큼 멋진 답변이 없죠. 이제 두 가지 질문이 남았는데요.
네네
지금의 나에게 건네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쉬엄쉬엄 가자' 요. 살면서 도전을 많이 했어요. 스스로 할 수 있는 한계 이상을 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거든요. 100을 할 수 있다면 120을 해내기 위해 고군분투했죠. 그래서 이제는 80 정도만 하며 살자. 그래도 된다. 그런 말을 저에게 해주고 싶네요.
그렇게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으세요?
시간이 지나면서 어떤 상황이 닥칠 때, 뭐랄까? 한 발자국 뒤에서 보게 되는 거 같아요. 예전엔 제가 하지 않으면 큰일 날 거 같았어요. 그런데 돌이켜보니 그렇게 큰일도 아니더라고요. 그리고 열심히 달렸으니까 이젠 조금 쉬어도 된다는 생각도 들고요.
정말 열심히 달렸기에 스스로에게 건넬 수 있는 말인 거 같아요.
사실 제가 게으른 스타일인데요. 또 하나에 몰입하면 정말 앞만 보고 내달리는 성격이기도 해서요. (웃음) 홍시 이야기 아세요?
먹는 홍시요?
네 먹는 홍시요. 감이 익어가는 과정을 인생에 비유한 이야기예요. 제 일상을 지탱하는 논리이기도 하고요. 감이 익기 전에는 먹을 수 없을 정도로 딱딱하고 떫잖아요. 수 십 번의 서늘한 밤바람을 맞은 후엔 떫은맛은 온데간데없어지고, 말랑하고 달달한 감이 돼요. 그리고 몇 번의 계절을 겪어내면 깊고 진한 풍미를 가득 담은 곶감이 되고요. 사람도 어릴 적엔 고집도 세고 조그마한 자극에도 격하게 반응하잖아요. 세상에 부딪히며 다양한 경험 속에서 종종 좌절과 슬픔도 겪지만, 그 과정들을 피하기보다 몸소 겪어낸 이들에겐 맛있게 익어가는 감처럼 어제보다 더 성숙한 자신을 선물 받는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일상을 지내며 부딪히는 일이 생기거나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아 내가 아직 덜 익었구나, 경험이 부족하구나'하며 상황을 받아들이려고 하거든요.
세상에 부딪히며 다양한 경험 속에서 종종 좌절과 슬픔도 겪지만,
그 과정들을 피하기보다 몸소 겪어낸 이들에겐 맛있게 익어가는 감처럼
어제보다 더 성숙한 자신을 선물 받는다고 생각해요.
이야기를 듣다 보니 경인님이 식물이라면 어떤 모습일까 궁금한데요.
그러게요. 어려운 질문이네요.
저 같은 경우에는 은행나무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이런 생각을 자주 했거든요. 가을날만 되면 세상을 환하게 비추는 은행나무를 참 좋아해서요. 비록 냄새는 좀 날지라도? (웃음)
오. 세상을 되게 아름답게 보시는 분이신 거 같아요. 음.. 저는 글쎄요. 느티나무?
느티나무요.
느티나무는 언제나 쉴 자리를 내어주잖아요. 특별한 일없이 찾아와도 늘 같은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는 느티나무 같은 사람. 그런 존재가 되고 싶어요.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소개 부탁드릴게요.
저는 소개가 제일 어려운 거 같아요.(웃음) 음. 저는 그냥 지나가는 행인 1!
행인 1이요!
네. 중랑구에 살고 식물을 사랑하는 행인 1. 장경인입니다.
느티나무는 언제나 쉴 자리를 내어주잖아요. 특별한 일 없이 찾아와도
늘 같은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는 느티나무 같은 사람. 그런 존재가 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