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에서 제일 형님반이 졸업여행을 간단다.
아침 일찍 커다란 버스를 대절해서 어린이 스무 명과 선생님들이 함께 떠난다.
안성의 어느 곳인가에 가는데, 놀이기구도 탈 수 있고, 말타기 체험도 한단다. 게다가 점심은 돈가스.
첫째도 7살까지 어린이집을 다녔었다. 7살 때도 어린이집에 다니니 언니가 한마디 했었다. 유치원으로 가서 배워야 한다며 학교 병설로라도 옮길 것을 권했었다. 그럴 상황이 안되어서 안 보낸다고 했는데, 언니는 계속 권하였고, 나는 계속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며 거절하다가 결국엔 언니가 단단히 화가 나서 한동안 얼굴도 안 보려 했었다.
쳇..
그리고 우리 꼬부기, 둘째도 어린이집에 계속 다니고 있다. 언니는 꼬부기에게도 유치원 안 가냐고 물었었다. 우리 꼬부기는 느려서 아직 병설 갈 준비 안되었다고 에둘러 말했다.
다행히 이번에는 다툼까지 가지 않았지만, 행여나 또 물고 늘어질까 봐 긴장한다.
첫째도 둘째도 어린이집에서 7세까지 보내면서 아쉬운 점이 있었나? 글쎄, 아직 더 인생을 살아보면 뭔가 차이가 나는 게 있으려나? 유치원을 경험해 보지 않아서 모르는 것일지도.
하지만, 첫째는 학교도 잘 다니고 있고, 학업도 잘 따라가며 즐거운 학교 생활을 하고 있다. 우리 꼬부기도 그러리라 믿고 있다.
첫째도 졸업여행을 다녀왔었는데, 우리 꼬부기도 이제 졸업여행을 간다고 하니 어찌 되었건 시간은 잘 흘러가고 있구나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그때도 추운 겨울 날씨였는데, 오늘은 겨울이라고 부르기엔 이른 11월 초지만, 겨울처럼 매섭게 추웠다. 꼬부기에게 옷을 단단히 입혀서 보냈는데, 오늘 아침부터 안 가겠다고 징징댔다.
선생님이 옷을 가볍게 입고 오라고 했는데, 엄마가 옷을 두껍게 입혔다며 불만이었고.
어린이집 가기 전에 의례처럼 늘 화장실 큰 일을 보기 위해 두 번씩 화장실에 가야 하는데, 어째서인지 오늘은 신호가 오지 않아서였다. 나도 덩달아 불안해서 기도가 절로 나왔다.
이유 하나 더!
오늘은 특별히 평상시 보다 20분 더 일찍 등원하라고 했는데, 우리는 늘 지각생이어서 바삐 나온다고 나왔는데도 시간이 간당간당하고, 결국엔 10분이나 늦어버렸기 때문이다.
안 가겠다는 것을 무조건 가야 한다며 어린이집으로 들어서는데 결국 응가 마렵다는 패를 꺼낸다.
일전에도 이런 일로 어린이집 앞에서 꼬부기가 울고, 작은 소동이 있었던 터라 원장 선생님이 다른 때는 절대 못 들어오게 하는데, 엄마가 들어가서 화장실 도와줘도 된다고 들여보내 주셨다.
어린이집 화장실은
독특하게, 남자화장실 안에 양변기는 없고 소변기만 있어서
큰 일을 봐야 할 때는 여자 화장실로 가야만 한다.
그러니, 꼬부기가 어린이집에서 응가는 절대 누지 않으려 했던 것이다.
게다가 화장실 문이 서부의 술집 문처럼 위쪽과 아래쪽이 뚫려서 보이고 가운데 부분만 가려진다. 문도 잠가지지 않는다. 그런 불안 속에서 응가가 나올 리 만무하다.
같이 좁은 공간에 들어가서 꼬부기는 변기에 앉았고 나는 서서 있는데, 문 위로 솟아 있는 내 얼굴을 보며 지나가는 아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꼬부기 반 여자 아이들이 모여서 모두 내 앞에 서 있더니 나중에는 남자아이들도 모여들었다. "꼬부기 엄마 거기서 뭐해요?" "응, 볼일이 있어서"
"무슨 볼일이에요?" "비밀이야"
계속 비밀이라고 하는데도 아이들은 자꾸 물어온다. 꼬부기는 너무나 긴장한 듯 보이고, 나오지도 않는 응가를 힘을 주며 앉아 있는데, 힘주는 소리도 내지 못하니 제대로 큰 일 보기 힘든 상황이다. 아이들은 왜 그렇게 모여들었던지 화장실 안에 10명 가까이 모여들었다. 간신히 손톱만 한 응가를 보고 나왔다.
나오면서 마주친 선생님이 나를 보자 "꼬부기가 화장실 가고 싶다 했나 보군요?" 하고 단번에 알아맞히신다. "지난번에도 경전철 타러 가는데, 화장실 가고 싶다고 해서 데려갔더니 그때도 안 나오더라고요. 긴장해서 그러는 거 같아요"
"네, 긴장해서 그런 거 같아요" 선생님이 이해해주시니 마음이 놓였다. 그래도 꼬부기가 선생님께 요청했다는 사실에 기특하다 생각하며 오히려 마음이 놓였다.
'엄마가 1학년 때 학교에서 응가해서 친구들이 놀렸었다는 얘길 해서 그런가?' 암튼 내 말이 아이들에게 부정적으로 영향을 주는 건가 보다. 의도는 그게 아니라 화장실이 급하면 가장 중요한 일이니 미루지 말고 수업 중이더라도 다녀오라는 얘길 했던 것인데..
아이들에겐 꽤 충격이 되어서 그런가? 작년에 6세 반 시절 수업시간에 그만 응가가 나와버렸는데, 선생님께 말도 못 하고 어정쩡한 자세로 기어 다니고 있다가 선생님이 발견하셔서 뒤처리 해주셨는데, 그게 많이 부끄러웠던 건지 지금은 잘 기억도 안 날 정도로 당연시되어서 매일 어린이집 등원 전에 큰 일을 두 번 보고 있다. 두 번 보지 않으면 어린이집 들어가기 전에라도 근처에서 볼일을 꼭 보고 간다. 허탕 치더라도 꼭 가려한다.
인생살이 얼마나 고달픈지 모르겠다. 그래도 우리 꼬부기가 응가 처리도 할 수 있고, 응가 마렵다고 말도 하고, 응가하러 달려갈 수 있으니 감사하다. 꼬부기 보다 더 어려운 상황인 아이들을 생각하면 이런 내 처지도 감사하다. "꼬북아, 벌써 졸업여행이라니.. 작년과 비교하면 네가 많이 성장한 게 느껴져. 그리고, 느리더라도 계속 성장해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