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렇게 몸에
저탄 고지를 해보았다. 에너지로 사용하고 남는 탄수화물은 몸속에서는 포도당으로 바뀌어서, 결국 암세포에게 에너지를 주는 꼴이 된다. 암세포를 굶겨 죽이는 식사법 책들을 보니 암세포를 굶기기 위해서 포도당을 차단해 주는 게 필요하다고 한다. 현미식이로 바꾼 것만으로도 탄수화물 양이 줄어들었지만, 이보다 더 줄여보고 싶었다. 우리가 먹는 채소에도 탄수화물이 들어 있으니 탄수화물 필요량은 채소를 통해서도 채울 수 있다는 정보를 책에서 찾게 되었다. 더 이상 내가 밥(탄수화물)을 끊지 못할 이유가 없었고, 왠지 끊으면 더 좋을 듯한 환상까지 생겼다.
아픈 사람은 뭐든 시키는 대로 하는 것 같다. 산속에 있다는 치료센터든 약 파는 곳이든 어디든 무슨 얘길 하나 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겨났다. 시간이 갈수록 이 암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강한 열망이 생겨나니 더 그랬다. 암과 같이 살 수는 없겠다 싶었다. 암이 줄어들고 있다는 상상을 하고, 말로 선포하기도 했다. 그러면 진짜 그 동안만이라도 긍정적인 에너지로 인해 내 암이 줄어들고 있고, 수술하지 않아도 될 것만 같아졌다. 그러나 그 약발은 얼마 못 가는 게 단점이다. 금방 불길한 생각이 스쳐 지나가고, 안 좋은 정보들이 눈에 들어오게 된다. 그러면 공든 탑 무너지듯 긍정적 생각이 무너져서 내 마음도 불안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그냥 기다리는 것보다 최선을 다 하자는 생각에 식생활 습관 바로잡기 프로젝트에 매달렸던 것 같다.
현미식이를 기본으로 하고 있었는데, 여기에 고기를 좀 더 많이 먹기 시작해보았다. 저탄고지 식단과 카니보어 식단 두 가지를 섞은 듯한 식이법을 했다. 이후에 다시 쓸 테지만, 비건식은 맨 마지막에 했다. 비건식을 하려고 의도한 것은 아닌데, 채식 위주의 식단이 되고, 동물성을 먹지 않게 되다 보니 비건식과 같았다. 비건식을 한 것은 나중에 다시 나누겠다.
다시 저탄고지식 이야기로 돌아와서 저탄고지 식사법이 탄수화물을 적게 먹고 지방 위주의 식사를 하는 것이라면 카니보어 식이는 탄수화물, 채소 없이 동물성 고기와 지방과 내장으로 식사하는 것이다. 나는 이 둘을 짬뽕하였는데, 저탄 고지에서 말하는 지방을 많이 먹으려 하진 않고, 고기에 붙은 지방 정도로만 먹었으나, 고기는 살코기 위주로 먹어서 지방보다 단백질을 더 많이 먹었던 것 같다. 삼겹살을 먹거나, 돼지 뒷다리 살을 오븐에 구워서 먹거나, 삼계탕을 먹거나 등의 방법으로 고기를 주식으로 삼고, 현미밥은 4/1 공기 정도만 먹었다. 나중에는 아예 먹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리고, 채소를 많이 먹으려 노력했다. 채소로만 탄수화물을 섭취하기 위해서.
카니보어파와 비건파는 서로 교집합이 없다. 카니보어파와 저탄고지파는 교집합이 많다. 셋의 교집합은 없지만, 저탄 고지와 비건파도 교집합은 있다. 바로 채소를 먹는다는 것. 재밌게도 그들의 식사법은 다들 다르지만, 그들의 주장과 그들의 경험은 비슷하다. 바로 그렇게 먹기 시작하면서 더 건강해졌다 라는 점이다. 그러나, 이들은 고기의 유해성, 채소의 유해성을 지적하며 '사람은 원래 채식을 하도록 만들어졌다 아니, 처음부터 육식을 하도록 만들어졌다.'라고 각각 주장한다. 각 분야의 책을 읽다 보면 당장 시도하고 싶어 진다. 그런데, 서로의 의견이 상충하기에 둘 중 하나는 아닐 텐데 하는 미심쩍은 부분이 있어서 망설이게 되기도 하다. 둘 다 해본 지금의 나는 어느 파에 속하지 말고, 주어진대로 다 먹자 주의가 되었다. 채소도 필요하고, 동물성 단백질, 고기도 필요하고, 모두 몸에 유익하다. 오히려 크림빵과 가공식품을 멀리하는 게 맞겠다. 이것은 SBS 스페셜에서 육식파 VS 채식파로 실험한 다큐에서도 증명이 되었다.
시작은 저탄고지식이로 하다가 좀 더 나아가 카니 보어 식이로 몇 주 먹어 보았지만, 결국 3~4주 만에 포기했다. 이유는 변비였다.
저탄고지 식사하면서 며칠만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는데 바로 14년된 손의 습진이 사라지는 일이다. 나의 손 습진은 너무도 오래되어서 없으면 어색할 정도인 나의 일부이다. 그런데 그게 갑자기 사라졌다. 스테로이드 연고를 발라도 안 없어지던 습진이다. 10년도 넘게 갖고 있었던 습진. 첫째, 둘째 아이 임신했을 때 오른손 습진 때문에 왼손을 주로 사용한 결과 왼손잡이 아이들이 태어났다. 우리 부부는 모두 오른손잡이임에도. 그 정도로 습진은 나와 항상 함께 해온 고질병이었다.
저탄 고지하면서 손 습진을 위한 어떤 노력도 추가하지 않았었다. 연고를 바른다거나, 새로운 로션을 바른다거나.. 왜 습진이 그 기간 동안 갑자기 사라졌는지 모를 일이다.
저탄고지해보니 카니보어식도 가능하겠다 싶어서 탄수화물은 거의 먹지 않고, 고기양을 더 많이 늘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문제가 생겼다. 바로 화장실 가는 문제였다. 채소량을 늘려보았으나 그래도 매일 가던 화장실을 며칠 째 못 가고 배는 계속 헛 배부른 것처럼 부풀어 오르고 참으로 고통스러웠다.
그래서 강제 종료할 수밖에 없었다. 화장실을 못 가는 것은 또 다른 고통이 시작되는 것이기에. 나는 치질을 앓아봐서 바로 멈췄다. 치질보다 무서운 것도 없으니.
다시 탄수화물도 먹기 시작하고, 고기 섭취도 줄였다. 그러자 며칠 후 습진은 다시 되돌아왔다. 습진은 이전에도 며칠씩 자연적으로 좋아졌다가 악화된 적이 있었지만 저탄 고지 식단을 하면서 무언가가 내 몸속 환경을 좋게 만들어 주었던 요소가 있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다만 고기 양이 더 많아지자 문제가 되었던 거지. 다른 사람들의 사례를 보더라도 저탄고지나 카니보어 식단을 하다 보면 변비의 문제가 생기는데, 이것도 몇 주 더 지나면 안정적으로 변화된다고 한다. 좀 더 기다려보지 못해서 조금은 아쉽다. 카니보어식을 하면 배고프다는 느낌과 생각이 안 생겨서 간식을 안 찾게 된다. 그래서 좀 더 건강해질 수도 있을 듯하다. 그렇게 끝난 몇 주간의 내 몸 보고서! 초음파 검사를 해보아도 갑상샘 암에는 특별한 변화를 보이진 않았고, 내 손 습진에만 변화를 주었다. 갑상샘 암도 암이라고 강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