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쓸 때마다 우리 집 둘째를 꼬부기라 칭했다.
거북이처럼 발달과 발육이 느려서 그랬었다. 거북이, 꼬부기
꼬부기가 포켓몬에 나오는 캐릭터라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 아들 녀석들은 내가 글을 쓰고 있으면 꼬부기라는 글자를 보고 꼬부기가 누구냐 묻곤 했다. 그리고 포켓몬 이야기를 했었다.
대두증 의심으로 엄마의 아픈 손가락과 같다고 차마 대놓고 말하지 못한다. 꼬부기는 아마 지금은 그런 기억을 모두 잊었을지도 모른다.
초등학교 1학년 1학기를 승리로 마무리했으니까!
1학년 1학기를 지난 꼬부기는 이전의 꼬부기가 아니다. 이제는 꼬부기라는 별명도 안 어울린다 느껴질 때가 많다. 느리다 생각했던 것이지 진짜 느린 건 아니었나 보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1학기 끝나기 전에 작은 발표회가 있었다. 학급마다 진행하는 장기자랑 시간인데, 모든 아이들이 자신이 잘하는 것 한 가지를 정해서 보여줘야 한다. 그 시간에 가장 많이 나오는 것은 피아노 연주와 줄넘기 들이 아니었나 싶다.
꼬부기와 작은 발표회를 앞두고 무엇을 보여줄지 고민에 고민을 했었다.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말자" 말하기도 했다.
"반 전체 모두 했다고 하더라고요" 나중에 반모임에 나갔다가 듣고서 식겁했었다.
다행히 꼬부기도 발표회에 참가했다.
태권도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지만 아직 노란 띠여서 보여줄 게 없고, 미술학원에 다니면서 제법 그림을 잘 그리게 되었지만 그림을 그리는 것을 보여줄 순 없었기에 고민을 했다.
그러다가 정한 것이 바로 마술!
마술 유튜브를 찾아보고, 마술도구를 네이버에서 구매했다. 그리곤 2주 남겨놓고 매일 마술을 연습하라고 했다. 아주 간단한 마술들이었지만, 1학년에게는 힘이 들었던지 잘 안 됐었다.
1주 남겨 놓은 뒤부터는
"공부하지 말고, 마술만 연습해" 라며 특훈을 시켰다.
"새끼손가락으로 이 부분을 가려야 해"
"잘 안돼!!"
정말 잘 안돼서 꼬부기는 짜증이 폭발했었고 포기까지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틀 남기고부터는 조금씩 하기 시작하였고, '그 정도만 해보자, 참가하는데만 의의를 두자'라고 생각했었다.
내가 더 긴장이 되었다. 혹시 아이들이 " 나 이거 알아! 라고 말해도 당황하지 말고 끝까지 하고 와"라고 했다.
아침에 머리에 손을 얹어 기도해 주고, 학교에 간 아이가 생각날 때마다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잘하고 넘어가길....'
그렇게 오후에 만났을 때 슬쩍 물어보았다. "오늘 발표회 어땠어?", "친구들이 어떻게 했냐고 물어봤어"
그 얘기에 '와! 아이들이 이 마술을 몰랐구나! 아니지 엄마들이 이 마술을 검색하진 않았구나!' 성공했다 생각을 했다.
별 일 아니지만, 나에게는 중요한 사안이었으니 기뻐서 호들갑을 떨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후, 반모임 자리가 있어서 참석하였는데 거기에서 다시 기쁜 소식을 들었다. 한 아이는 작은 발표회에서 가장 기억 남는 것은 꼬부기의 마술이었다고 했단다.
그리고 다른 한 아이도 그날 일기에 꼬부기의 마술 내용을 적었다고 했다.
이것은 생각보다 큰 성공이었다. 지금까지 기관에 다니면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얘기이다.
별 것 아니라 치부할 수 있지만 나에겐 그 무엇보다 승리의 싸인이었다.
그렇게 1학기를 끝나고 난 뒤에 꼬부기는 자신이 1학기를 마쳤다는 생각에 뿌듯하고
잘 참고 이겨냈기에 여름 방학을 상으로 받은 것처럼 방학을 즐기고 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아무도 안 만나려하면서..
1학기에 어찌나 열심히 했던지 지금은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은 기분인가 보다. 그래서 마음껏 방학을 즐기게 해 줬다.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고 해줬다.
십의 자리 뺄셈이 안돼서 여전히 울기도 하고, 앞으로 더 어려운 것이 나올 텐데 어떻게 쫓아갈까 걱정이 되긴 하지만, 아직 초등학생들은 시험도 안 보고 성적표도 자세히 안나오기에 지금처럼 이렇게 잘 자라주기만 하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그래도 앞으로는 더 큰 꿈을 갖고 도전도 해보고, 노력도 하면서 승리를 더 경험하고 '별거 아니었네' 하면서 인생을 살아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