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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날 Mar 04. 2023

우리들은 1학년.

드디어 꼬부기가 초등학교 1학년에 들어갔다. 

꼬부기도 긴장했겠지만, 나도 며칠 전부터 긴장하며 지냈다. 

3월 2일 목요일에 개학하고,  금요일까지 다녀오고 주말이 되자, 긴장이 확 풀리며 피로가 밀려온다. 

별로 한일도 없는 듯하지만, 꼬부기를 아침에 데려다주고 일찍 데리러 가야 하니 그것만으로도 큰 일이었다.


코로나로 부모들은 참석하지 못했던 입학식이 올해 다시 부활했다. 

남편과 함께 꽃다발을 들고 갔다. 아이들은 의자에 앉고 부모들은 뒤에 서있어야 했다. 

갑자기 많은 아이들을 보니 나도 긴장되고 어지러웠다. 지난  어린이집 나무반 친구들은 고작 스무 명이었는데..

처음 어린이집에 들어갈 때 스무 명도 많게 느껴져서 둘째는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었다. 6세 반은 스무 명, 5세, 4세 3세에 선생님들까지 하면 100명 남짓한 사람들이 북적북적 모여서 지내다가 지금은 1학년만 180명가량된다.  

전체 학생들을 생각하면 음.. 1000명이 안팎이지 않을까 싶다. 

한 반에 25명씩 8 학급. 

1학년 전체가 강당에 모여 앉아서 교장선생님의 환영사를 듣는데, 

그중에 야무진 여자 아이들은 교장선생님 얘기 중에도 손을 들며 자신도 얘기하게 해달라고 표현했다. 

그런 똑똑한 여학생들 무리에서 우리 둘째 꼬부기는 더 작게 보였다. 그렇게 입학식 행사가 끝나자 선생님은 아이들을 데리고 교실로 가셨다. 선생님을 따라가는 모습을 보니 36년 전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우리 엄마도 내 뒤에서 나를 보고 계셨겠지? 

그때, 나는 맨 앞에 서서 선생님 손을 잡고 교실로 들어갔는데, 그날의 기쁨은 오래오래 기억에 남아 있다. 


이틀간 학교를 다녀온 뒤, 아이는 더 활기차졌다. 학교에 다녀왔다는 것에, 나도 초등학생이 되었다는 것에 큰 자부심과 승리감을 느끼는 듯했다. 


실은 이튿날, 교문 앞에서 헤어지는 인사를 한 뒤에 너무나 걱정되어서 몰래 뒤따라가봤다. 아이는 뒤도 안 보고 씩씩하게 걷다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몰라서인지 뒤를 한번 쳐다봤다. 그렇게 나를 발견해서 내가 좀 도와줬다. 

교실이 어디인지 모르고 있었다. 건물이 여러 개인데, 어디로 들어가야 하는지 모르는 듯했다. 

뒷 건물로 향한 뒤, "잘 가"라고 얘기하고서도 뒤따라 가는데, 2층이 아닌 3층으로 올라가려 했다. 

그래서 또 뒤에서 "2층이야"라고 알려주고 말았다. 

그렇게 교실 앞까지 따라가서 신발장에서 실내화를 갈아 신고 교실로 들어가는 것까지 보고 말았다. 

다행히 나 말고도 여러 명의 엄마들이 복도에 서 있었다. 


어린이집에서 같은 반이었던 친구를 신발장 앞에서 만났다. 그 아인 형이랑 둘이서만 학교에 왔다고 한다. 야무진 녀석이었다. 그러곤 우리 꼬부기를 보더니 꼭 안아주는 게 아닌가!

그 아인 그 순간 나까지 안아준 셈이었고, 내 마음의 긴장과 불안까지 녹여냈다. 

우리 꼬부기도 엄청난 힘이 났을 텐데, 놀래서 표현하지 못했다. 

그 아이에게 엄청난 빚을 진 기분이다. 그 날 만나는 사람들에게 그 장면을 이야기를 했다. 너무나 감동적인 장면이고, 앞으로도 오랫동안 그 장면을 기억하면서 힘을 내게 될 거 같다. 


참, 집에서도 남편에게 친구가 안아줬던 얘길 하자 꼬부기는 신나서 다른 얘기도 해줬다. 어린이집에서 "나도 6반이야"라고 친구에게 말했을 때도 안아줬다고 한다. 다음에 만나게 되면 그 아이가 좋아하는 자일리톨 사탕 한 통을 선물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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