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예비 초등 등록일이어서 아이와 학교에 다녀왔다. 선생님들 세 분이 심사위원처럼 나란히 앉아 계셨고, 꼬부기와 내가 들어가자 인사로 맞아주셨다.
우리 전에도 뒤에도 아무도 없었기에 우리에게 집중해 주셨다.
실내등이 컴컴해서 안경을 꺼내 썼더니 김이 서려서 안보였다. 다시 안경을 벗어서 손에 들고 서류를 꺼냈다.
봉투에 준비해 간 입학신청서를 받으시더니 꼬부기에게 이름을 물어보셨다.
"이름에 뭐예요?"
(큰 목소리로)"000이요"
좀체 듣기 힘든 우렁차고 씩씩한 목소리여서 선생님이 웃으셨다.
나도 마스크 속에서 미소가 번졌다.
원래 목소리도 작고, 음정이 높고, 게다가 떨리는 음정이었는데,
선생님 질문에 잘 답했다. 이게 뭐라고 너무나 뿌듯하고 감동이 되었다.
e알리미에 가입하라는 얘기를 듣고 선생님이 주시는 자료집을 받아 들고 나왔다. 싱겁게 끝났지만, 꼬부기는 가슴이 두근두근했나 보다.
밤에 자려고 책을 읽어 주는데,
"학교 갈 생각 하면 마음이 두근두근해" 그런다.
"처음 가는 곳이라서 당연한 거야. 처음 학교 가는데, 마음이 편안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어"
학교라는 곳이 어떤 곳인가? 기대가 되고, 좋은 만남이 있고, 성장하고, 배움이 있는 곳 아닌가.
그런데, 나는 왜 그렇게 학교가 싫었던 걸까. 초등학교 1학년 똥사건 이후로 학교에서 벙어리가 된 채 지낸 듯했고, 5학년때야 비로소 좋은 선생님을 만나고 내면의 힘이 키워지면서 내 생각을 표현할 수 있었나 보다. 그때부터 단짝 친구가 생겨났었다. 그렇게 중학교도 친구들이랑 놀면서 제법 재미있게 다녔던 듯 하지만, 고등학교 때부터 학교가 다시 싫어졌다.
매일 눈을 뜨면 '더 이상 못 참겠다. 오늘은 꼭 말해야겠다' 다짐을 하곤 했다.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말하겠다며 매일 아침 떠올렸지만,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진 않았다. '학교를 그만둔 뒤에는 뭘 할 건데? '
계획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냥 지금 학교에 다니는 게 안 맞아서 너무나 싫었을 뿐이다. 내가 2학년 때였던가? 남동생이 엄마에게
자퇴하고 싶다고 얘기하는 걸 들었다. '엇, 내가 하려던 말을'
하지만 곧 들려오는 말은 "그래도 학교는 졸업해야 하니 좀만 참아보자"였다.
'그러면 그렇지' 나도 말했더라도 그냥 다시 다녔어야 했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동생도 나처럼 힘들구나 다들 힘든 거야 앞으로 남은 시간도 버텨보자'는 생각으로 다녔다. 그래서 학교 야간 자율학습시간에 공부는 안 하고 책을 읽었다. 공부하지 않고 책을 읽는다고 혼나기도 했지만, 책을 읽으면서 버텼던 것 같다.
나에게 학교에서 즐거웠던 경험이 없기에 꼬부기에게 '학교는 재미있는 곳이야'라는 말이 차마 안 나온다.
그래도 초등학교는 등수도 안 나오고 재미있게 놀면서 다녀도 되니 그나마 괜찮겠지? 앞으로 꼬부기가 해야 할 공부량을 생각하면 숨이 턱 막혀오지만,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마음은 편하다. '그때 가서 고민해야지'. '그때까지 내가 한국에 살지 해외에서 살지 모르는 일이니' 라며 긍정적인 상상으로 고민을 미뤄둔다.
'아니지 오히려 잘 해낼 거야. 나랑 요즘 매일 독서토론도 하고 있잖아?' 요즘 꼬부기와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누고, 주제를 정해 토의도 해본다. 초등 6년 동안 옆에서 함께 교과서 관련 문학과 사회 과학 책을 읽으면서 독서 토론할 생각이다. 꼬부기가 어떻게 변해 갈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