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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날 Apr 06. 2022

풀 배터리 검사의 반전

  갑자기 하게 된 검사였는데, 일사천리로 잘 끝났다. 결과를 듣기까지 2주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결과 들으러 가는 날 몹시 떨렸었다.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받아들이고 아이를 도와주는 방법을 찾으면 되니까 절망하지 말자. 안 좋은 결과가 나와도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다. 불가능은 없다.' 그런 무한 긍정의 생각으로 무장하고 갔다. 

 최근에 뇌와 관련된 책을 한 보따리 빌려와서 읽는 중이었다. 뇌 사용법. 뇌 기능, 아이큐 올리는 방법 등등 의 책들이었는데, 재미있고 유용했다. 한 저자는 어릴 적 자신은 정신지체 수준의 지능이었으나 지속적인 노력으로 아이큐가 올라가고 박사학위까지 얻어 뇌 연구가이자 상담심리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본인의 사례를 바탕으로 어려움이 있는 아이들을 돕고, 아이큐를 올리는 훈련과 식생활 방법들을 제시하고 실제 변화가 있도록 코칭도 하고 있었다. 

그런 얘기를 들으니 '우리 꼬부기 결과가 어떻든 상관없이 최대한 방법을 찾아서 아이를 도와줘야지', '평생 옆에 끼고 살더라도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 도와줘야지'라는 마음의 준비까지 했다. 

  그래도 한편으로 믿는 구석이 있었던 것은 검사하러 간 날 임상심리사 선생님이 나의 염려와 당부 때문인지 엄마 상담 검사 시간에 "채점을 해봐야 정확하게 나오겠지만, 일단 아이의 인지 부분은 문제없는 것 같으니 큰 걱정은 말라"라고 미리 귀띔을 해주셨다. 

그 얘기에 일단 큰 짐은 내려놓고 있었다. 최악의 시나리오를 다 짜 놓고 미리 대안들을 찾아보고 있었던 터라 약간의 안심이 되었다. 그래도 결과가 나온 게 아니니 1주 뒤에 검사를 들으러 가는 날이 왔을 때 몹시 긴장하고 있었다. 제발, 인지 부분에만 이상이 없게 해 달라는 간절한 기도가 나왔다. 


인지 부족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라고 한다면 앞으로의 아이의 미래에 엄청나 장애물이 놓이게 되는 것이니 너무도 끔찍했다. 사람들에게 이용당하고 어려움을 겪고 있을 모습이 상상되면서 고통스러웠다. 그래서 제발 인지에는 이상이 없기만을 간절히 기도했다. 


  놀랍게도 결과는 내 예상과 전혀 다르게 나왔다. 정확한 검사였을까 라는 약간의 의심이 남긴 한데, 일단 지금의 결과로 현재를 판단하는 지표로 사용하고 훗날 다시 재검사해보려고 한다. 

꼬부기의 인지에는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높게 나왔다. 상위 10~15퍼센트에 해당하는 걸로 나왔다. 다른 능력 부분에서도 특별히 심하게 떨어지거나 낮아서 문제가 될 만한 것은 없었다. 그리고 사회지능에 해당하는 것은 아주 높게 나왔다. 그러나 작업 수행능력 부분에서 낮게 나오고, 그림으로 심리 검사하는 것에서 문제가 있는 것으로 나왔다. 아이의 마음이 불안하고, 자신에 대해 낮은 자존감을 갖고 자신감도 없는 상태로 나왔다. 자신이 없고, 틀리는 것에 대해 두려운 마음이 들기에 알고 있어도 잘 표현하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었던 것 같다.


 아이가 그린 그림을 보여주는데, 집, 나무, 사람(남자, 여자), 가족의 모습 이렇게 네 가지의 그림을 그린 것이었다. 각 그림이 의미하는 바가 달랐다. 

집은 우리 가정을 나타내고, 나무는 아이 자신을 나타내고, 아이가 생각하는 남자와 여자의 모습을 통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볼 수 있고, 가족의 모습을 통해 가족 안에서의 갈등이나 가족 내의 자신의 모습이 어떤지를 볼 수 있게 해준다. 

 아이의 집 그림은 너무 단순하고 창문이나 문도 잘 보이지 않았다. 나무는 아주 작았는데, 곧 쓰러질 거라고 얘기했단다. 남자는 작고 여자는 아주 크게 그렸는데, 아이 마음속에 자신의 능력과 존재가 작게 느껴지고 있는 듯했다. 어린이집에 가면 늘 여자 아이들이 발달과 발육이 빨라서 키도 크고 언어 능력과 만들기, 그림 모두 뛰어나니 그렇게 느낄만하다고 생각됐다. 


가족의 모습에서는 기차놀이를 하는 모습을 그렸는데, 엄마, 아빠, 형은 크게 그리고 함께 모여 있는 반면 자신은 구석에 작게 그려놓았다. 꼬부기가 있는 공간과 세 사람이 있는 공간은 기찻길로 나누어져 있어서 꼬부기만 소외돼 보였다. 나는 아픈 손가락 같은 꼬부기를 늘 마음에 두고 배려해주고 꼬부기 위주로 지낸다고 생각했으나, 우리 꼬부기 마음에는 그게 아니었다. 


생각해보니 형아는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말도 많고, 원하는 것을 얻기까지 요구하는 것도 많아서 결국에는 형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게 되었던 것 같다. 자연스레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형아는 늘 자기의 뜻대로 

되니 계속해서 우리 모두를 이끌고 가며 자신이 보스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이 깨달아졌다. 이것은 금쪽같은 내 새끼를 보면서 깨닫게 되는 부분도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아이의 인지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나, 아이는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으로 자신의 생각을 잘 표현하지 못하고, 틀릴까 하는 두려움에 자신감도 없고 주저하는 것 같다고 했다. 꼬부기의 사회성과 발달이 느린 문제가 심리적 이유였다는 것이다. 가족 내에서도 자신은 소외된 것처럼 느끼고 있었고, 자신의 존재를 곧 쓰러질 것 같다고 말한 것처럼 작고 약한 존재라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나와서 당혹스러웠지만 그러면서도 내심 안심이 되는 구석이 있었다. 아이의 문제가 아니라 외부의 문제라고 한다면 우리 가정과 내가 바뀌면 되겠지 하는 생각을 했다. 의사 선생님의 얘기를 들으면서 2가지가 문제가 되지 않았나 생각이 들었다. 


 첫째는 애기 때부터 대두증 의심 진단을 받고 끊임없이 검사하고 걱정하면서 나의 불안이 아이에게 전달되었고 자신감이 없고 자존감도 낮게 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둘째는 형은 매사에 적극적이고 자신감이 넘치고 말도 많고 표현도 잘하기에 형과 비교하면서 자신이 설자리가 없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예를 들면 외식을 하러 가면 메뉴를 고를 때 늘 형이 고른 메뉴로 먹게 되곤 했다.  우리 부부 모두 아이들이 원하는 것에 맞추고자 했기에 결정권을 아이들에게 줬는데, 큰 아이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자신의 요구가 거절되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설득하거나 떼쓰거나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바꾸려고 노력했다. 반면 우리 꼬부기는 아무 말이 없거나, "몰라"라고 대답하거나 형의 선택을 따라줬다. 


 최근에서야 우리도 우리 가정의 보스가 부모가 아니라 큰 아이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열심히 아이를 훈육하고 있었기에 나에게 부모의 권위가 있다고 생각했었지만, 실제 아이들에게 내 권위는 허수아비처럼 힘이 없었다. 암튼, 이 날 나는 엄청난 자아비판을 하며 반성을 하였고, 우리 가정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보게 되었다. 우리 꼬부기가 피해자가 되었다는 생각에 고통스럽기도 했다. 꼬부기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며 "엄마가 너를 이해해 주지 못하고, 너를 잘못 판단하여서 힘들었지? 미안해. 앞으로는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할게 너도 많이 표현해줘"라고 했다. 

꼬부기는 "알겠어"라고 얘기하더니 달라진 듯한 모습을 보여줬다. 자신이 문제가 없었다는 것을 알아서 일까?, 갑자기 표현도 더 많이 하고, 자신감도 더 생겨난 듯했다. 그날 갑자기 물감놀이를 하고 싶다고 하더니 한참 동안 물감으로 색을 만들었다. 1년 만에 꺼낸 물감이었다. 꼬부기는 언제나 '나는 실험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었다. 실험실에서 연구하는 것은 공부를 잘해야 하는거라고 얘기해줬었고, 못미덥지만, 우리 꼬부기와 잘 어울린다고 얘기해준 적이 있었다. 그날 본인이 똑똑한 걸로 결과가 나왔다고 하니 자신감이 생겨서 물감으로 색을 만드는 실험을 했던 것 같다. 실험실에서 비커와 스포이드로 액체를 가지고 실험하는 것을 어디선가 본 탓이다. 

 

 금쪽같은 내 새끼를 보면 늘 자녀의 문제로 힘들어서 신청한 그 사람이 원인제공자인 경우가 많았다. 카메라를 통해 객관적으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아이의 속마음을 들은 뒤에 대게의 부모들은 회개의 눈물을 흘리는데, 나 역시 그런 기분이었다. 

 우리 꼬부기가 느린 것은 일차적으로 나의 잘못이었다. 아이를 향한 지나친 걱정과 불안으로 없는 문제도 만들어 낸 꼴이 되었으니 앞으로도 내가 엄마 역할을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자책으로 괴로웠다.  내려놓을 수만 있다면 엄마 일을 내려놓고 싶은 마음이었다. 자격미달이라며 나를 해고한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 엄마의 자리는 너무도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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