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은
아이가 나에게 그런 얘기를 한다.
"엄마는 바보 같지만, 바보는 아니야", 그리고 그 이야기를 계속해서 반복해서 말했다.
느낌 상 누군가 우리 아이에게 그렇게 말했구나 싶었다.
"친구가 그렇게 말했어?"
"아니야, 아니야"
남자애들은 자신의 속마음이나 어린이집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더 속상하다.
첫애가 초등학교 1학년에 들어간 탓에 그리고, 새로 이사 온 곳이니 친구를 만들어줘야 했기에 학교 수업이 끝난 뒤에는 학교 운동장이나 놀이터에서 해가 질 때까지 머물렀었다.
꼬부기도 어린이집에서 4시 즈음 데리고 와서 놀이터에서 6시~7시까지 함께 머물렀었다.
첫애는 친구를 사귀어서 신나게 뛰어다니느라 바빴고, 꼬부기는 내 옆에 착 붙어 있으면서 구경만 했다.
달콤한 간식을 먹으면서 엄마 옆에 앉아 있었는데, 그게 나도 편했고, 동네 엄마들과 사귀느라 꼬부기에게 신경을 쓰지 못했다.
그렇게 몇 개월 동안 놀이터에서 아이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동네 아줌마들이 말을 걸어보아도 전혀 말하지 않았다. 그래서 뭔가 이상한 거 같아서 선생님께 여쭤 보게 된 것이다.
"선생님, 우리 꼬부기가 밖에서는 사람들에게 말을 전혀 하지 않는데, 어린이집에서는 어떤가요??"
"친구들하고 잘 놀고 말도 잘해요"
선생님 말씀에 안도하고 있었지만, 실은 아이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 선생님은 아이들끼리 놀고 있으면 말을 하는지 안 하는지 파악하기 쉽지 않으실텐데 라고 생각했다. 목소리가 크게 들려온다면야 알겠지만.
그렇게 다음날인가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머님이 얘기하신 것 때문에 지켜봤는데, 꼬부기가 말을 안 하고 지내고 있더라고요"
".. 아, 네.."
역시 엄마의 촉이 빠르다.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얼마나 말을 하지 않았던지 또래 친구들이 얘는 말을 못 하는 아이인가?라고 생각했던 게다.
그래도 상대방이 같이 놀자. 이거 할래? 하면 고개를 끄덕이며 의사를 표현했었던지 친구들 옆에 앉아서 조용히 놀았던 게다. 그러니 선생님도 눈치 채지 못했던 것이다.
당시 발음치료 중이었기에 선생님께 고민을 털어놓고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구했다. 선생님은 아이를 믿고 기다려줘야 한다고 했다. 오래 걸리더라도 아이가 스스로 말하고, 자신감을 갖고 다가갈 때까지 기다려줘야 한다고 하셨다.
꼬부기는 어린이집에 늘 안 가고 싶어 했다. 나라도 그랬을 것 같다.
'나도 7살에 유치원으로 기관을 처음 갔었는데, 우리 꼬부기는 더 어린 나이에 사회생활하려고 참 힘들었겠지? 좀 쉬어도 될 거야. 아이 마음이 편해질 때까지 기다려주자.'
그런 마음으로 안 가면 안 가는 대로, 가면 가는 대로 들쑥날쑥 출석을 했다.
언제부턴가는 아이에게 친구가 말을 걸면 말이 아닌 고개를 끄덕이는 표현을 해보자라고 미션을 주었다.
친구가 얘기했을 때 대답하거나, 어린이집에서 아무 말이라도 하고 오면 스티커를 주기로 했다. 스티커는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장난감을 살 수 있는 티켓이 되었다.
그렇게 며칠 지나자
아이는 어린이집에서 말했다고 자랑했다.
"무슨 말했어?"
"땅콩"
"친구가 뭐래"
"땅콩? 그랬어"
"잘했어!~"
갑자기 꺼낸 얘기가 맥락에도 없는 단어였지만, 친구들은 그 단어를 맞받아쳐줬다.
꼬부기도 뭔가 처음 말을 꺼내면서 어색했던지 질문이나 대답이 아니라 그냥 아무 말이나 한 것이다. 긴장감을 풀기 위한 의도도 있고, 재미있게 해 보고자 꺼낸 얘기인 것 같다.
그렇게 하루에 한 번씩 질문하며 확인했다. 아이가 얘기를 잘하며 지내고 있는지 확인은 안 되지만, 이전과 달리 친구가 같이 놀자라고 하면 그래, 또는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반응을 했다.
놀이치료 선생님은 우리 꼬부기가 사회성이 부족하다고 했다.
사회성이라고 하면 사교적이고 친교적인 능력인가 보다 생각해서 나도 남편도 사교적인 성격은 아니어도 살아갈 수 있으니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놀이치료 선생님은 사회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셨다.
또래 친구들과 놀기 위해서도 사회성이 있어야 서로 상호작용을 잘할 수 있다고 한다. 친구의 반응과 질문과 놀이를 이해할 수 있어야 당황하지 않고 적절하게 대응하고 반응하면서 함께 놀 수 있고, 친구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꼬부기는 상대의 의도를 이해하는 것부터가 잘 안되고 있었던게다.
그러고 보니 우리 꼬부기가 이해력이 좀 떨어지는 부분이 있었다. 나도 분명하게 느끼고 있었다.
장난으로 건넨 얘기를 진짜인지 장난인지 구별을 못하거나, 놀이 중에 하는 행동에 엉뚱하게 반응할 때가 있곤 했다. 그게 문제가 될 줄은 몰랐는데.
생각해보니 나도 좀 엉뚱했다. 친구들과 어울려 놀 때 엉뚱한 대답을 하거나 해서 괴짜처럼 보이려 하기도 하고, 진짜 괴짜일 때도 있었다. 그런데, 그것은 평범하게 대답할 수 있음에도 내가 상황을 비틀어서 대화하거나 상징적으로 말하거나 함으로 좀 더 고차원으로 얘기를 바꿀 수도 있는 능력이 있는 것에 비해 우리 꼬부기는
1차적인 대화만을 주로 주고받고, 장난으로 비틀어서 얘기하면 그 의도를 알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이 재밌는 얘기에 모두 웃을 때 혼자만 웃지 않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을 때가 종종 있었다.
지금도 놀이치료를 계속하고 있다. 아이도 이제 7살이 되면서 선택적 함구도 사라지고, 필요한 말을 하곤 한다. 우리 꼬부기도 느리지만 계속 성장하고 있다. 어린 나이에 세상 풍파를 경험하며 인생을 배워가는 중이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