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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날 Feb 11. 2022

6살에 갑자기 실어증

발음치료가 6개월 정도만에 종료된 듯하다. 아이의 발음이 많이 교정되었고, 무엇보다 말에 대한 자신감이 생겨났다. 수다쟁이처럼 말도 많아졌다. 정말 잘됐다. 

그런데! 발음치료를 한 참 하던 중에 문제가 생겼다. 아이가 밖에서 말을 전혀 하지 않기 시작했다. 

이런 걸 선택적 함구증이라고 하던데..

우리 꼬부기는 선택적 함구증이라고 병원에서 진단까지 받진 않았지만, 

증상이 딱 그랬다. 바깥에서 타인이 보고 있으면 한마디도 하지 않으려 했다. 

실어증에 걸린 사람처럼. 

그리고 집에서는 평상시처럼 말을 하였다. 

집에서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집에 가는 길에 다른 사람의 시선이 안 느껴지면 그때부터 말을 시작했다. 옛날 유주얼 서스펙트 영화 마지막 장면에 주인공이 절뚝걸이며 걷다가 점차 사람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자 뒤틀린 발이 펴지며 자유롭게 걷기 시작하는데, 

마치 그 장면처럼 말 한마디 못하던 아이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걷다보면 갑자기 말을 술술 하기 시작했다. 


아이가 말을 하지 않게 된 것은 심리적 이유가 컸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아이가 6살에 기관을 옮기면서 받은 심리적 압박 탓이다. 우리 꼬부기는 12월생에다가 느린 아이였기에 한 살을 꿇려서 다니게 했었는데, 그러다 6살이 되면서 이사도 하게 되었고 해서 새로운 어린이집을 찾다가 또래 나이로 가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4세 반 친구들과 헤어지고 6세 반에 들어갔었다. 

4세 반이든 5세, 6세 반이든 대체로 아이들이 배우는 것은 비슷비슷하다. 

유치원이 아니고서야 어린이집에서는 보육을 위주로 하면서 교육적 활동을 하는데, 가정어린이집에서도 비슷한 활동들을 했었기에 큰 틀에서 보면 커리큘럼이 확 달라지거나 하지 않았다. 

그런데, 반 아이들이 달라져 있었다. 


갑자기 껑충 월반을 한 셈이 되었으니 아이 입장에서 어리둥절했을 것이다. 선생님이 아이들을 대하는 것도 달라졌을 테고, 이래저래 스스로 해야 하는 게 많아졌고, 다른 친구들은 척척해내고 있었으니 자신만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압박이 컸을 것으로 짐작된다. 


아이의 함구증에 대해 발음치료와 놀이치료 선생님께 말씀을 드렸더니 그동안 아이를 꿇려서 다니게 한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니다라고 하셨다. 아이에게는 또래 친구들을 통한 새로운 자극이 많이 필요했었는데 그것을 놓쳤다고 아쉬워하셨다. 놀이치료 선생님도 발음치료 선생님도 모두 그렇게 얘기를 하셨다. 

엄마의 지나친 염려증이 아이를 안전하게 보호해 주고 싶어서 그렇게 했는데 도리어 아이의 발달면에서는 장애물이 되었다.   


6세 반으로 가니 또래 아이들의 신체 발달과 발육 수준은 아주 높았다. 우리 아이보다 머리가 하나 더 있는 친구들이 꽤 많았다. 우리 아이는 스무 명 중에서 가장 작다시피 했다. 

남자아이인 것도 있지만, 그래도 제일 작았으니 우리 꼬부기가 느꼈을 위화감은 뭐 말안해도..


한 번은 자려고 누웠는데 계속 눈물을 흘리며 슬픈 표정을 짓는다. 

"꼬부가,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고개를 끄덕이며 눈물을 흘린다)" 

"어린이집에서 무슨 일 있었어?"

"(고개를 끄덕이며).."

"무슨 일인데 말해봐"

"친구들이랑 선생님이랑 산책을 가버려서 나만 교실에 남았어"

"왜?"

"신발을 늦게 신어서 나만 남았어"

"속상했겠다. 그래서 어떻게 했어"

"원장 선생님이 선생님한테 전화했는데 전화 안 받으셔서 교실에 가서 놀고 있으라고 했어. 교실에서 장난감을 갖고 놀고 있는데 졸렸어. 선생님이 졸리면 자도 된다고 해서 누워있었어. "

"그랬구나."

"아니야, 아니야 내 생각이야. 선생님한테 얘기하지 마." 

그러면서 아이가 눈물을 흘리며 우는데

내 가슴이 찢어지듯 아파왔다. 나도 같이 울었다. '내 아이가 느린 걸로 인해서 이렇게 고통을 당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그날 밤 잠을 못 잤다. 선생님께 어떻게 얘기를 꺼내볼까 하는 생각에 계속해서 머릿속에서 대사를 정리했다. 


다음날, 선생님께 "꼬부기가 어제 혼자 교실에 있어서 속상했었대요"라고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선생님은 깜짝 놀라며 단호하게 말하셨다. 

"그런 일 없습니다"

"네?"

"꼬부기가 이러저러해서 교실에 남아 있었다고 하던데요?"

"그런 일 없습니다. 한 번도 아이들 놓고 나간 적 없습니다"


너무 단호하셔서 당황스러웠다. 

선생님도 당황스러우셨을 테지만, 나는 혼동스러웠다. 

그러면서 조심스레 하시는 말이

"보통 5세 아이들이 지어서 말을 하기 시작하는데 꼬부기도 조금 느려서 지금 온 게 아닌가 싶네요. "하셨다.

나는 얼른 수습하고 어린이집에서 빠져나왔는데, 그 충격이 가시지 않았다. 

우리 아이가 그렇게 자세하게 이야기를 지어냈단 말인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실어증으로 걱정이었는데, 지어낸 내용도 앞 뒤가 다 맞고 빈틈이 없어서 

약간은 기분이 묘했다. 


그런데, 왜 그런 일이..

생각해보니 아이가 산책 갈 때마다 신발을 혼자 신고 벗고 하는 게 힘들어서 걱정을 했었나 보다. 

자기만 뒤쳐져서 무리에서 벗어나게 될까 봐 걱정을 많이 하면서 

상상을 했었나 보다. 그래서 그 날 본인이 이야기 꺼내놓고, '아니야 아니야 내생각이야.'라고 말했구나 싶었다. '선생님한테는 이야기하지 마'라고 단단히 당부했던 이유도 이해가 갔다. 


첫애 때는 이런 일이 없었기에 더 놀랐었다. 

아무튼 그날 이후로 아이의 신발을 혼자서 빨리 신고 벗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계절 바뀔때마다 신고 벗기 쉬운 신발을 준비해두고 혼자서 신발을 잘 신을 수 있도록 연습도 시키고

끝까지 기다려주었다. 

신발신기와 관련해서는 정말 오랫동안 우리 부부를 괴롭혔던 스토리가 하나 더 있다. 그것은 다음 기회에 나누겠다. 


아이가 바깥에서도 말을 조금씩 하기 시작한 것은 6개월정도 지났을 때였다. 자신도 할 수 있는 말을 참고 있으려니 답답했던지 조금씩 의사 표현을 하기 시작했다.

아주 조금씩. 지금은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자유롭게 하지만, 성격탓도 있는 것 같다. 

부끄러워서 항상 사라질 듯 숨고, 억울한 일 당할까봐 엄마 옆에만 딱 붙어 있으면서 또래 친구들이나 형아들 따라 다니지 않았다. 

말할 필요도 없었던 게 아니었을까. 아무튼 날마다 새로운 걱정꺼리를 안겨주는 꼬부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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