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툼한 면발과 혜자로운 고명
구글 지도에 '잉키 누들'을 검색하면 각각 'Tai Kok Tsui'와 'Sai Ying Pun'의 두 지점이 나온다. 찾아보니 체인점은 아닌 것 같고, 단순히 상호명이 같은 별개의 가게인 듯하다. (혹시 아니라면 댓글로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하하하.) 'Tai Kok Tsui' 지점은 늦게까지 영업하여 동네 사람들이 즐겨 찾는 야식의 성지로 유명하고, 'Sai Ying Pun' 지점은 최근 완탕면으로 미쉐린 가이드 맛집에 선정되어 유명하다. 나는 두 지점 중 고민하다 구글 지도의 후기가 압도적으로 많은 'Tai Kok Tsui'의 지점에 방문하였다.
지하철 '몽콕(Mongkok)'역에서 내려 900m. 약 14분 정도 걸으면 혼잡한 공사판 사이의 샛노란 간판을 만날 수 있다. 지나가다가도 여기가 맞나… 싶었지만, 대한민국의 의무 교육과정 속에서 열심히 연마한 한자 실력 덕에 자신 있게 매장 안으로 향할 수 있었다.
분명히 사람들이 줄 서는 식당이라고 들었는데 내가 방문한 날의 점심시간에는 꽤나 한산했다. 현지인 두 팀 정도가 국수를 먹고 있었고, 같이 간 친구와 나는 어리둥절하여 우리가 잘못 들어왔나 싶어 다시 나가서 간판을 확인하기에 이르렀다. 제대로 들어온 것을 확인한 후에는 앉아서 메뉴판을 기다렸으나 우리에게 돌아온 건 “뭐 주문할래?”라는 점원의 물음뿐이었다. 광둥어는 물론 중국어조차도 할 줄 모르는 내가 어버버 하자, 점원은 옅게 미소 짓더니 “스몰, 빅?”이라고 물었다. 아! 여기는 과연 맛집답게 단일 메뉴인가 보다 싶어 일단 스몰을 두 개 주문했다.
외국인을 위해 영어로 적어놓긴 했지만 저게 과연 메뉴인지, 고명인지를 알 수가 없어 파파고에 번역을 맡겨 보았다. 그런데...
번역된 결과물을 보며, AI에 의한 직업 대체의 홍수 속에서 번역가라는 직종은 아직까지 살만하겠다고 생각했다.
‘치즈창자’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여태 의문이 남는다.
이윽고 국수가 등장했다. 후기에서 본 대로 과연 두툼한 면발이 인상적이었다. 거기다 홍콩의 여느 국숫집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갖은 종류의 토핑에 감동했다. 보통은 소고기 하나만 엄청나게 넣어 주거나, 소고기와 도가니에 쪽파 정도의 고명만 넣어 주는데 잉키누들은 두툼한 표고버섯, 묵은지 맛이 나는 정체 모를 장아찌, 돼지고기 튀김, 쪽파 등 다채로운 토핑이 가득했다. 사진을 찍으면서도 군침이 흘렀다. 이제는 마구마구 먹어 줄 시간!
국물부터 한입 떠먹어 보니 깊은 돼지육수의 맛이 났다. 흡사 돼지국밥의 그것과 같은 맛에, 고된 여행길을 채워주는 고향의 강렬한 기운을 받았다. (참고로 나는 부산에서 나고 자랐다.) 두툼한 국수는 별다른 맛이 있었다기보다는, 각종 고명과 매우 잘 어울렸다. 특히 묵은지 맛이 나는 정체불명의 장아찌를 표고버섯에 올려서 면발 하나와 함께 먹으니 간이 딱 맞았다. 다음에 홍콩에 오게 된다면 이 국수는 꼭 한번 더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심심하고 익숙하지만 기억에 남는 조합이었다. 저렴한 가격은 덤이고 말이다.
국수를 먹으며 후기를 찾아보다, 이곳은 닭날개 튀김과 소시지가 유명하다기에 소시지를 시켜보았다. 점원은 소시지를 갖다 주며 우리에게 재팬에서 왔느냐고 물었고, 한국인이라고 이야기하니 하하하 웃으며 “감사합니다.”라고 했다. 또 한 번 한류의 위대함에 감동받으며 머릿속에서는 애국가가 울려 퍼지던 찰나, 점원은 소시지에 고추양념을 얹어 먹으면 된다며 먹는 법까지 상세히 알려주고는 자리를 떴다. 오리지널의 레시피로 먹으니 과연 맛있긴 했다. 다만 나는 소시지, 햄 등 가공육을 좋아하지 않아서, 소스와의 조합은 좋으나 소시지 자체는 언젠가 급식에서 먹었던 맛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가공육 미식가들의 입에는 다르겠거니 생각하며 친구에게 너 다 먹으라고 했다. 그 순간 친구의 올라가는 입꼬리를 본 건 기분 탓이려나 싶지만 남기는 것보다는 훨씬 나으니까요!
나름의 ‘완뚝’을 하고는 기분 좋게 자리를 떴다. 합리적인 가격과 널찍하고 시원한 매장, 오픈키친으로 추구하는 나름의 청결함과 친절한 직원까지 모두 마음에 드는 식당이었다.
다음에 재방문은?
무조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