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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떡 Jun 24. 2024

시스터 와(Sister Wah, 華姐清湯腩)

현지인도 줄 서서 먹는 소고기 국수


  홍콩에 도착한 첫날, 호텔에 짐을 풀고 나니 저녁 8시가 되었다. 입국 수속하랴, 호텔 체크인하랴 이래저래 바빠 저녁을 먹지 못했기에 호텔 인근에 가볼 만한 식당이 있는지 찾아보기로 했다. 구글 지도를 보니, 걸어서 19분 거리에 후기와 평점이 어마어마한 국숫집이 있었다! 바로 '시스터 와(Sister Wah)'이다.



  아무래도 입국 첫날이라 주변의 풍경도 보며 느릿느릿 가다 보니 국숫집에는 거의 밤 9시쯤 도착했던 것 같다. 평일 밤 9시여서 사람이 별로 없겠다고 생각했는데 웬걸! 가게 안은 손님들로 북적였다. 거의 여의도의 평일 점심시간을 생각나게 할 정도의 혼잡함이었다. 바삐 뛰어다니는 직원들의 모습에 '헐….' 하며 입구에 얼어붙어 있으니, 잠시 땀을 닦던 직원 한 분이 자리에 앉으라고 했다. 빈 테이블이 없는데 어디에 앉으라는 건지 모르겠어서 어리둥절하게 있으니, 직원은 어느 테이블의 빈 좌석을 가리키며 저기에 앉으면 된다고 했다. 아! 맞다! 홍콩은 무조건 합석 문화였지! 지난 홍콩 방문 때의 무한한 합석 경험(내 MBTI는 앞자리가 I이므로 합석 문화가 참 힘들었다.)이 머릿속에 떠올라 슬그머니 미소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밤 9시에도 북적북적한 가게 안


주로 이곳에서 주문과 포장, 계산이 함께 이뤄진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미쉐린 가이드에 선정된 모양이다. 대단한데?


  우리 테이블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식사 중이었다. 기본 고기 국수를 먹는 사람도 있었고, 볶음 요리나 튀김 요리 등 본격적인 요리를 시켜서 먹는 사람도 있었다.(야밤에 괜찮을까?) 아무래도 소고기 국숫집이니 기본 소고기 국수를 먹는 게 좋겠다 싶어 친구는 기본 소고기 국물 국수를, 나는 소고기 비빔국수를 주문했다. 그리고 사이드 메뉴로 닭 날개 튀김도 주문했다.


소고기 국물 국수


소고기 비빔국수


사이드 닭 날개 튀김까지 함께


  소고기 국물 국수는 일반적으로 홍콩에서 많이 먹는 에그 누들(이 가게는 면 종류를 선택할 수 있다. 고민할 것 없이 에그 누들로 결정!)과 고소한 소고기 육수의 조합인데, 국물에서 샬롯(작은 양파. 단맛이 아주 강함.)의 향이 많이 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두툼한 소고기가 참 마음에 들었다. 사실 고명으로 올라간 것이라곤 청경채 아주 조금, 소고기, 쪽파가 전부이지만, 푸짐하게 들어 있는 소고기 덕분에 보기에도, 먹기에도 전혀 허하지 않았다. 오히려 과했다고나 할까. 심심한 간의 맑은 육수라 몇 입 먹다 보면 김치(거의 DNA에 새겨져 있다고 볼 수 있다.)가 생각이 날 수밖에 없는데, 그때는 앞의 향신료 통에 있는 고추기름을 몇 스푼 넣으면 된다. 그래봤자 고추기름이지 싶어 우습게 보고 몇 스푼 크게 넣었더니 꽤나 매콤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소스 조절에 실패했다 하더라도, 한국인 입맛에는 역시 고추기름이 살짝 들어간 국물이 훨씬 맛있게 느껴졌다.


  소고기 비빔국수야말로 이야기할 것이 너무나 많다. 사실 비빔국수라는 것은 한국인의 통념상 일단 빨간색의 비주얼을 자랑해야 하는데, 너무나 말간 비주얼의 국수가 나와 적잖이 당황했다. 어, 이게 맞나 싶었지만 일단 비벼서 입에 넣어 봤는데 웬걸! 짭조름하고도 고소하니 정말 맛있었다. 우리나라의 음식으로 비교하여 설명해 드리고 싶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나라의 음식에는 이것과 비슷한 음식이 없는 듯하다. 요 국수와 팔촌쯤 되는 우리나라의 음식을 굳이 찾아보자면 간장 비빔국수 정도려나. (이것도 아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완전히 다르다.) 고소한 고기 국물을 베이스로 한 맑은 소스를 꼬들꼬들한 에그 누들이 한껏 머금어서 밤에 부담 없이 먹기 정말 좋았다. 너무 탄수화물만 먹나 싶어서 걱정될 쯤에는 두툼한 소고기를 입에 넣으면 되니, 탄단지가 완벽한 음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꼭 먹어볼 테니 진정하라고요? 아이쿠. 제가 너무 흥분했네요. 맛있는 것 앞에만 서면 그만…. 참고로 이 국수 역시 조금 물릴 때에는 앞서 말한 고추기름을 넣어서 비벼 먹으면 된다. 반쯤 먹고 고추기름과 함께 비비니 나의 위장 한 구석에 오도카니 서있던 느끼함도 싹 가시고 좋았다. 참고로 사이드로 주문한 닭 날개 튀김은 생각보다 그리 인상적이진 않았다. 그냥 우리가 흔히 먹는 옛날 통닭의 맛. 고소하니 좋았지만 이미 단백질은 충분하니 굳이 시키지 않아도 될 것 같다.


  홍콩에서의 첫끼를 훌륭하게 마치고는 흡족한 표정으로 밤거리를 돌아다녔다. 현지인들마저 줄 서서 먹는 이유를 알 수 있는 그런 한 끼였다고나 할까. 포장도 가능하니 일정 중에 테이크아웃을 해서라도 꼭 드셔보시길 바란다.


  다음에 재방문은?

  반드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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