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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앞니맘 Jun 06. 2023

걱정 말아요. 괜찮아질 거예요.

장례식을 치르고 오랜만에 집에 있는 것이 어색했다. 무슨 일부터 어디부터 치워야 하는지 손이 닿지 않았다. 몸도 마음도 갈 곳을 잃고 주방에서 서성이다가 거실에서 청소기를 밀다가  남편옷을 들고 2 층으로 갔다가 분주하기는 한데 목표도 결과도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엄마 좀 앉아서 쉬어."

갈 곳 잃고 헤매는 사람처럼 이리저리 몸만 돌아다니는 나를 보고 아들이 말했다.

"괜찮아. 배 고프지? 밥 해줄게."

냉장고 문을 열고 동생이 챙겨 놓고 간 음식을 꺼내고 밥솥을  보니 밥이 없다.

"어? 밥이 없다. 어제도 햇반 먹었지. 정신이 없네."

"엄마, 그냥 라면 먹을까?"

"15분이면 되니까 기다려봐. 앞으로 라면 먹을 날들이 많을 테니까 아껴두고 오늘은  밥먹자."

먼저 쌀을 씻어 놓고 며칠 묶어서 밥이 잘 떨어지지 않는  밥솥을 닦고 있었다.

"뭐 해?"

친구 선희가 현관문을 열고  집안으로 박스를 들여놓으면서 말했다.

"어서 와. 이게 다 뭐야."

"야. 밥 하지 마.  내가 사 왔어. 당분간 남이 해주는 거 먹고 그냥 쉬어."

신혼집 집들이로 시할머니 생일상을 차릴 때도 전날부 달려와서 음식을 같이 해주고

늦둥이 딸을 낳고 꼼짝 못 할 때는 밑반찬이랑  미역국을 끓여  나르던 친구가 오늘도 무언가를 잔뜩 챙겨 왔다.

"피자랑 치킨은 이따 애들 간식으로 먹고 순댓국은 지금 먹어  이건 너 좋아하는 열무김치야."

"힘들게...  고마워."

"입맛 없어도 꼭 먹고 기운 내라. 나는 바빠서 간다."

제대로 들어오지도 않고 현관에서 음식만 밀어놓고 바쁜 듯 돌아가는 친구의 뒷모습에서 30년을 함께한 친구를 보낸 우리가 아직은 눈을 마주치고 앉아서 음식을 먹으며  담소를 나누기에는 더 긴 시간이 지나야  한다는 것을 친구도 나도 알 수 있었다.


나는 식욕도 고  음식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고 있지만 아무 맛도 느낄 수가 없었다.

"엄마? 순댓국이 맛이 없어?"

"아니 입맛이 없어. 걱정 말고 먹어."

"순댓국은 아빠가 좋아했는데..."

다행히 아이들은 아빠도 소환하면서  잘 먹었다. 코로나에 걸렸다면 이런 맛이었을까? 시간이 지나면 좋아질 줄 알았는데 입맛은 더 없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밥상을  치우고 있는데 거실창 커튼 뒤로 누군가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보였다. 나는 문을 열고 나갔다.

"누구세요?"

"아, 깜짝이야."

아들친구 지원이 엄마가 주 문 앞에 무언가를 놓다가 화들짝 놀랐다

"거기서 뭐해요. 들어와요."

"그냥 반찬만 놓고 가려고 했는데."

밑반찬에 밥까지 모두 꺼내 놓으니 식탁이 가득 채워졌다.

"내가 하는 것보다  맛있을 거 같아서 반찬가게 다 털어 왔어요. 밥은 먹었어요?"

"친구가 순댓국을 사 와서 지금 먹고 치우는 중이었어요."

"당분간은 밥도  하기 싫으면 하지 말고  대충 지내요. 반찬 떨어지면 또 사 올게요."


괜찮냐고  물어주고 괜찮은지 확인하고 괜찮기를 바라면서 차 한잔도 안  마시고 정을 가득 담은 끼니를 와 가족에게 나눠고 떠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내가 괜찮아져야 하는 이유다. 고맙  고 또 고마운 마음을 잊지 않고 살 것이다.


사실은 덕분에 괜찮아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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