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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리원 Jul 22. 2024

01. 공기 위로(慰勞)_비모닝

비(우, 아닐 비, 슬플 비) 모닝

남들보다 이른 아침을 맞이하는 고요한 즐거움은 찰나 같다. 오늘은 그 찰나마저도 나노단위로 더 줄었다. 집 현관을 나서는 순간 만난 물웅덩이와 비바람이 그 복선이다. 그나마 맑은 날은 버스 정류장까지는 괜찮은데……


옷은 이미 젖고, 드라이한 머리는 쓸모없게 되어버렸다. 출근 버스는 아직 타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적어도 참담한 상황은 피하고자 도로옆 물웅덩이는 최대한 피해서 서본다.  

 - 이것도 그리 많이 벗어날 수는 없다. 웅덩이 피하고자 출근길 버스에서 1시간 반을 서서 갈 수는 없지 않나.  (버스 줄이 곧 좌석이다. 벗어나는 순간 입석 전락)


버스 안은 비 냄새, 사람 냄새로 가득하다. 불편한 냄새다. 냄새 자체가 싫다기보다는 그 냄새가 그들의 이야기들 같고 그것들이 달라붙는 것 같아 싫다. 이 시간, 이 순간 행복한 이야기가 붙을 리 만무하니까.


사람들이 가끔 긴 시간 뭐 하며 출퇴근하냐고 물을 때가 있다. 나는 원래 이동수단 안에서 잘 잠들지 못한다.

“그냥 밖을 보고 멍하니 있어요.”


사람들은 장난인 줄 안다. 뭐 사실 그들에게 내 대답이 중요하지는 않다는 것도 안다. 무슨 대답을 했건 정말 궁금해서 물었다기보다는 말과 말 사이를 메울 화두가 필요할 상황이었을 것이다. 특히 대화의 공백을 너무나 견디기 힘들어하는 끼인 세대에게 있어서는 단골 주제이기도 하다.


그렇게 난 멍하니 눈앞에서 지나가는 것들에 대해 아무것도 붙잡지 않고 흘러가게 둔다. 그러고 있으면 나도, 여기 누군가도 아무것도 아닌 상태가 되는 공허한 순간이 온다. 그때가 오히려 멈춤의 순간이 되는 것 같다. 그것을 기다린다.


그런데 오늘은 그것도 힘들다. 내 오감을 자극하는 요소들이 너무 많다. 집중이 안된다. 멍 때리는 것도 집중이 필요한데. 난 지금 너무 산만한 상태다. 팔에 잔털들도 바짝 서있다. 이쯤 되면 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단계에 접어든다.


내 존재의 카테고리가 사람이면서도 그것을 잊은 마냥 내 옆의 사람이 불편하고, 심지어 알 수 없는 적대감까지 든다. 상대방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억울할 테지만 그 역시도 어쩜 나의 오지랖 걱정인 듯하여 금방 쫓아내어버린다.


인내의 시간이 지나고 빽빽한 아침 버스는 드디어 정적을 깨고 문을 연다. 한 시간을 넘게 달려서 내리는 사람이 생긴 첫 정류장이다.  1/3 정도의 사람이 우르르 내리고서야 버스 안은 조금 새로운 공기로 채웠졌다. 그 공기로 내 팔의 잔털은 사뿐히 가라앉았고 옆에 앉은 이의 존재가 그리 성가시지 않게 느껴졌다. 내 속의 간사함에 흠칫 놀라며 창 밖으로 애써 시선을 옮겨본다.


여전히 비는 내리고 내릴 정류장을 지나치지 않으려 빠르게 지나가버리는 건물로 시선을 옮겨본다.


곧 내려야 하는구나!


눈치 작전 2단계.


벨 좀 누가 눌러요.


늘 다니는 출근길.

늘 같은 시간대에 타는 사람들.

나는 안다고. 네가 이제 여기서 내릴걸.

이번에는 네가 좀 누르자!

결국 조바심 많고, 계획형인 J가 벨을 누른다.


또 나다


버스가 정차하고 내리려는 내 앞을 휑하니 앞질러 내리는 그들이 이 순간 너무 얄밉다. 그러다가도 버스에 내려서 질퍽이는 물웅덩이를 딛고 횡단보도 앞에 서면 나의 성숙되지 못한 자아를 비판한다.


‘이게 뭐라고!’


출근하는 아침동안 나에게 말 한번 건 사람도 없는데 도대체 난 몇 명의 사람들과 싸워 온 건지. 이미 지친 나를 발끝부터 훑어 오르고는 주변 상가 유리에 비친 나를 전신 스캔해 본다.


‘오늘도 넌 이미 졌어! 나의 슬픈 아침은 시작되었고 비는 그칠 것 같지 않네’


“비모닝!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닌 나로 변신이 필요한 순간. 오늘도 잘 버텨야 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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