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전 콤플렉스

by 책선생

고전은 왜 우리를 주눅 들 게 할까?

이것에 대해 생각해 보기 전에 이 질문을 먼저 해보고 싶다. 고전은 어떤 책들을 말하는 것일까? 고전은 꼭 읽어야 하는 것일까? 고전에 쓰인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면 그건 내가 무식해서일까?


이 질문에 대해 스스로 답해보면 왜 우리가 고전에 주눅이 드는지 어렴풋이 알 수 있을지 모른다. 혹시 여러분이 알고 있는 고전은 두꺼운 하드커버지로 만들어진 오래된 책을 말하며, 그런 것쯤은 읽어야 교양 있는 현대인이란 생각이 든다거나, 그 책들에 쓰인 문장을 분명 읽었음에도 뭔 말인지 모르는 건 내 문해력이 심각하게 부족하기 때문이란 생각이 든다면 확실히 주눅이 들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고전의 사전적 정의는 이러하다. <오랫동안 많은 사람에게 널리 읽히고 모범이 될 만한 문학이나 예술 작품>. 오래된 책, 그러면서 널리 읽히는 책, 그리고 모범이 될 만한 책. 이 3가지 조건을 갖추면 고전이라고 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고전은 오래되고 모범이 될 만한 책인 것은 분명 하나, '널리 읽히는 책'은 아닌 듯하다. 오죽하면 고전을 '모두가 읽고 싶어 하지만 아무도 읽지 않은 책'이라고 풍자적으로 말하겠는가.


어느 출판사에서 정했을지도 모르고, 어느 대학 교수의 자문으로 만들어진 목록일지도 모르겠지만.

우리는 왜 그런 책들을 실제로 읽을 생각이 별로 없으면서도 읽어야만 하는 책으로 생각하고 있을까? 적어도 읽으면 유익한 책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나 역시 정확한 분석은 할 수 없다. 다만 시골 동네를 지키듯, 동네 어귀에 웅장하게 서있는 4-500년 된 수령을 가진 나무들에게서 느껴지는 신성함 같은 것일 거라 짐작할 뿐이다.


내가 주로 책을 고르는 목적은 2가지다. 아이들을 위한 책과 나를 위한 . 아이들을 위한 책은 의미가 있거나 재미가 있는 책을 고르고, 나를 위한 책은 현재 내가 알고 싶은 그 무엇이 담긴 것을 선택한다. 가급적 의무적으로 읽어야 하니까 읽는 책들은 피한다. 관심사가 아니면 고된 노동만 될 뿐 읽고 나서도 휘발된다.


이런 나만의 책을 읽는 원칙에 따라 얼마간의 고전을 읽으면서 어렴풋이 '고전 읽기'에 대한 의미를 알게 되었고, 고전의 정의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만들 수 있었다. 앞서 말했듯이 사전적 정의로 보면 고전은 '오래된, 모범이 되는, 널리 읽히는'의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이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새롭게 정의해 보면 이렇다. 오래되었다는 얼마의 시간을 이야기하는 것인가? 100년? 아니면 그 이상? 아니다. 적어도 부모가 읽던 책을 자식에게 권해 읽으면 된다. 한세대의 기준인 30년을 살아남은 책을 고전이라 할 수 있다. 생각보다 길지 않은 시간에 의아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1년 우리나라에서 출판되는 책만 해도 무려 11400종, 한 달에 약 950종의 책이 세상에 나온다. 하지만 이 중의 대부분의 책은 그런 책이 있었는지 조차 알지 못하고 사라진다. 그러니 한 세대를 거쳐 살아남았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그 책이 가진 가치가 충분하다고 볼 수 있다. 더구나 내가 읽고 자식에게 '너도 읽어봐라'하는 책이라면 더더욱.


다음으로 모범이 되는 것이 고전이라고 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일단 고전도 분야별로 나눌 수 있다. 문학, 역사, 정치, 과학 등 각 분야의 고전이 있다. 뿐만 아니라 문학 중에서도 주류가 아닌 판타지도 <<반지의 제왕>>같은 고전이 있다. 그래서 본받아 배울만한 모범이라는 것을 확장하여 넓게 해석하는 것이 좋겠다.


나의 필요 따라 하나씩 읽었던 고전들에게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고, 이런 새로운 정의를 덧붙이고 싶다. 고전은 이 책 이전에는 없었던 생각이나 상상을 담은 책이다. 이런 책들은 이전에는 없었던 이야기들을 하고 있으며, 이 책이 나온 이후에는 수많은 복제품들을 생산하도록 하는 원형의 역할을 한다. 즉, 이야기들의 어머니가 된다.


또한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본질적인 이야기들을 하고 있는 고전을 읽으면 그 책으로 생긴 수십.수백권의 아류작들을 읽으면서 시간을 허비할 필요가 없다. 내가 고전을 아이들과 읽고, 각자 필요에 따라 고전을 읽기를 권하는 이유는 고전 1권의 밀도는 비슷한 주제의 현대의 책 100권을 압축한 것이기때문이다. 어른이라면 모임을 만들어 고전 읽기를 시도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같이 읽으면 지속할 수 있고 더 재밌다.


그리고 '널리 읽히는 책'이 고전이라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읽는다는 것보단, 국경을 넘어선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게 더 좋겠다. 저자가 한국 사람이든, 영국 사람이든, 독일 사람이든 상관없이 좋은 책은 어디든 전해지니까. 그래서 나의 책꽂이에도 시대를 넘어, 국경을 넘어 한국의 작은 소도시를 찾아온 책들이 꽤 여럿 있다. 언젠가 내가 읽어 주길 바라는 듯 자주 눈에 띄는데, 아직은 펼칠 생각이 없는 입장에서 참으로 부담스럽기 짝이 없다.


그렇다면 구체적인 고전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이 책 이전에는 없었던 생각이나 상상을 담은 것으로 세대를 넘어 국경을 넘어 전해지는 책"을 말한다.


2019년에 발행된 이현 작가의 <<푸른 사자 와니니>>라는 책이 있다. 난 이 책을 읽고 처음에 '작가가 필력을 낭비했다'라고 생각했다. 아이들 책 치고 너무 과하게 잘 썼다. 작가가 써 놓은 내용을 아이들이 모두 제대로 읽어 낼 수 있을까? 하고 걱정까지 했더랬다. '아이들 책치고'라는 말은 아이들이 작가가 써 놓은 모든 것들을 잘 읽어냈으면 좋겠는데, 아이들 문해력으론 그럴 것 같지 않아서 안타까워서 하는 소리다.


그리고 그건 괜한 걱정이 아니라 실제로도 그랬다. 아이들은 작가가 써 놓은 내용을 오독하거나 정확히 해석하지 못한 채 읽었다. 아이들은 의미 따위엔 관심이 없다. 원래 그렇다. 그런데도 뭐 어떤가! 아이들은 이 책을 너무너무 좋아한다. 이 책은 의미를 다 알지는 못해도 이야기가 자체가 재밌고 따뜻하고 심지어 아름답다. 얼마나 따뜻하고 아름다운지 웬만한 책에는 감동받지 못하는 오래된 제자 녀석이 이 책이 재밌다고 추천해 준 거니 말 다했다.


"선생님 <<푸른 사자 와니니>>라는 책 아세요?"

"아니?"

"새로 나온 책 같은데, 재밌어요."

"그래? 네가 재밌다니 선생님이 찾아보고 구매할게."


책 보는 안목이 좋은 아이의 말이라 난 의심하지 않고 책을 구매했고, 이후 <<푸른 사자 와니니>> 는 책수업 시간에 꼭 읽는 '필독서'가 되었다. 그리고 이 책이 30년 뒤에는 '고전'의 반열에 오를 거라는 기대를 하면서 꾸준히 이 책을 아이들과 읽는다.


'쓸모없는 아이라며 사자 무리에서 쫓겨났지만 당당히 척박한 땅에서 사자 무리를 이끄는 우두머리가 되는 와니니'. 이 책이 고전이 되어 K-pop, K-drama뿐 아니라 K-book을 전 세계 사람들이 읽는 날이 올 거라는 야망 가득한 기대.


세상에 쓸모없는 존재란 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푸른 사자 와니니>>는 고전이 될 자격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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