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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 Apr 24. 2024

마음밭에 내리는 비는 단비일까

 저의 마음 밭에는 백 개의 감정 씨앗이 살고 있습니다. 

어떤 날은 초록씨와 블루 씨가 춤을 추고 어떤 날은 분홍씨와 노랑씨가 노래를 부릅니다.

어제부터 검은 씨가 불쑥 고개를 내밀었어요. 검은 씨는 모든 씨앗들의 색을 자신의 색깔로 물들여버릴 수 있는 막강한 힘을 갖고 있어요.

 노랑씨와 빨강씨를 섞으면 주황 씨가 됩니다. 주황 씨와 초록씨를 섞으면 연두 씨가 됩니다. 빨강씨와 파랑씨를 섞으면 보라 씨가 나옵니다. 그러나 검은 씨는 검은 씨는......

그 어떤 색깔의 씨앗들과 섞어도 검은 씨가 나오는걸요. 검은 씨는 우울과 비애의 우두머리 씨앗입니다.




 검은 씨가 오늘은 마음밭을 점령하고 있습니다. 검은 씨는 마음 밭의 씨앗들에게 속삭입니다. 검은 씨는 힘이 막강하기 때문에 조그만 소리로 속삭여도 금세 마음이 검은 바다처럼 슬퍼집니다.

검은 씨는 때로는 부조리한 세상을 조롱하고

때로는 타인을 비난하고 

때로는 자신을 자조하고 

자기 연민과 갈등에 빠지기도 합니다.

검은 씨는 정신적 방황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용감한 화이트 씨가 나섭니다.  "검은 씨야, 검은 씨야! 내 이야기 들어봐"

화이트 씨는 이야기를 이어나갑니다.

"오늘 아침에 말이야,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데 친구인 바람까지 데려왔어. 근데 바람이 내 우산의 날개를 꺾으려 했어,  난 기를 쓰고 바람을 막았지.  한 손으로 우산의 지지대를 잡고 한 손으로 우산의 날개를 부여잡고

그 순간 깃털처럼 가벼운 내 검은 모자가 바람에 날아갔어.  나는 모자를 잡으려고 우산을 놓쳤고 그 틈을 타서 비가 내 옷에 물세례를 주며 공격했어.  나는 쫄딱 젖어 비 맞은 고양이처럼 우스운 꼴이 되었다. ㅜㅜ

야비하지 않아? 어떻게 2:1로 공격할 수 있니? 당연히 이대 일로 싸우는데 바람 승 나 패 ㅜㅜ"


그때 천진한 노랑씨가 끼어들었어요. 

"근데 넌 비 오는 날 햇빛도 없는데 왜 모자를 쓴 거야?"

"아침에 앞머리 드라이를 못해서 모자로 커버하고 예뻐 보이려고 그랬는데 비 맞은 강아지꼴 ㅜ"

"멋 부리다 얼어 죽는다"

"아니야, 비에 얼어 죽진 않아. 감기에 걸릴 뿐  쿨~럭 쿨럭"


검은 씨가 하하하하 웃음을 터뜨리네요. 마음 밭에 내리는 비는 검은 씨를 말끔하게 씻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화이트 씨는 검은 씨의 검은 때를 조금 벗겨 회색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마음 밭에 비가 오네요. 단비가 맞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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