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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 May 09. 2024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

 마음정원의 건너마을에는 비밀의 화원이 있습니다. 이웃나라를 돌아다니며 좋아하는 꽃씨를 얻어오는 왕자와 화원을 가꾸는 정원사가 살고 있었어요. 둘은 소꿉친구입니다.

얼어붙어 오지 않을 것 같았던 봄이 이곳에도 찾아와 꽁꽁 얼어붙은 흙이 부슬부슬 부서지네요. 꽃을 시샘하는 추위가 아직은 매섭습니다.  


 

 첫 번째 꽃이 탄생합니다.

 나르시스가 죽은 뒤 피어났다는 수선화군요. 고결한 노란빛, 우아한 꽃잎들은 차가운 공기에 나풀나풀 흔들리는 나비의 날개보다 고고해서 고개를 숙일지언정 차가운 바람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요즘은 나르시스의 의미가 변질되어 좋지 못한 인간상을 표현할 때 나르시스트라고 합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나르시스라는 미소년은 어느 날 강물에 비친 아름다운 소년의 모습을 봅니다. 그 소년이 자신의 모습인지도 모른 채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점점 몸을 기울이다가 강물에 빠져 죽음을 맞고 그 자리에서 핀 꽃이 수선화입니다. 수선화의 꽃말은 자기 사랑입니다.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건강한 자아를 가진 사람입니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은 사람이 타인에게 사랑을 줄 수 있을까요. 자신을 건강하게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타인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러나 자기 사랑이 지나치면 자아도취로 변질되어 에고이스트가 됩니다. 에고이스트는 지나치게 이기적이고 타인을 수용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나르시스트의 정점을 찍습니다.

살아가는 모든 생물이 그러하듯 우리의 삶과 사랑은 적정한 온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수선화 - 꽃말 (자기 사랑)


  햇살은 찰랑찰랑 은빛가루가 되어 쏟아지고 있습니다.  수선화가 진 자리에 고고한 위세와 여린 기상을 추모하듯 꽃들이 제각각 피어납니다.

 수줍은 작약(피오니)과 튤립이 피었어요. 튤립의 크고 둥근 꽃잎은 무엇을 경계하는 걸까요... 수줍지만 활짝 핀 작약처럼 꽃잎의 날개를 활짝 펴기를 바랍니다.


                              작약(paeony 꽃말: 수줍음)   

사월의 튤립


튤립의 옆자리에는 몽상의 그늘에 젖은듯한 아이리스가 피어납니다. 우수에 젖은듯한 보랏빛, 귀족을 상징한다는 색깔 아이리스의 보랏빛은 과히 몽환적입니다.

아이리스 ( 꽃말: 존경, 신비한 사람, 기별)




 비밀의 화원에 장미의 계절이 왔습니다. 장미는 누가 뭐래도 꽃의 여왕이라는 왕관을 차지하여 오월이면 장미축제가 열립니다. 정원사와 왕자는 아름다운 장미를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습니다. 두 사람은 '장미축제금지화원'이라는 문구를 타이핑하여 강력본드로 화원의 담벼락에 붙였습니다. 장미를 보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은 헛걸음을 하며 되돌아갔습니다.


 어느 날 장미를 가꾸던 정원사는 그의 손가락 끝에 장미의 가시가 닿아 붉은 피가 방울방울 맺혔어요. 정원사는 분개했습니다. 예쁜 꽃잎에 비해 평소에도 거슬리던 보기 흉한 날카로운 가시를 싹둑싹둑 가위로 모두 잘라버렸어요. 가시를 잃은 장미는 점점 야위어갔습니다.

 왕자가 야위어가는 가시를 잃은 장미를 보고 정원사에게 화를 냈습니다. "사랑은 날카로운 가시도 품을 수 있어야 되는 거야" 왕자는 더 이상 장미를 혹독한 야생의 정원에서 기를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예쁜 화병에 옮겨진 장미를 가까이에서 보니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하루하루가 지나자 장미 꽃잎들은 떨어지고 색깔도 퇴색되어 시들고 말았어요.  다음 해, 그다음 해에도 비밀의 화원에 장미는 피지 않았어요.




 첫사랑은 항상 미숙해서 이루어지기 힘듭니다. 첫사랑과 같은 장미를 잃은 정원사와 왕자는 슬퍼서 눈물을 흘렸어요. 그 자리에서 첫사랑과 젊은 날의 추억이라는 꽃말을 가진 라일락이 탄생했습니다. 바람을 두드리며 라일락 꽃향기가 상쾌한 공기를 전해줍니다.

 라일락이 지고 나면 이제 곧 글라디올러스의 계절이 올 것입니다. 글라디올러스는 꽃대에 꽃잎들이 매달리는데 청색을 제외하고 모든 색깔의 꽃을 가지고 있어요. 과거 서양에서는 꽃잎들의 숫자를 보고 연인과의 약속시간을 정하여 밀회를 떠났다고 해요.


 소중한 장미꽃을 간직한 어린 왕자처럼 우리의 삶에 고귀하고 소중함을 선사해 줄 꽃을 찾아 아름다운 봄이 다 가기 전에 여름이 오기 전 나에게로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요...



브런치에 올리는 모든 사진들은 제가 직접 찍은 사진들입니다. 사진에 담긴 꽃들은 실제 아름다움을 담기에는 한계가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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