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쓰기를 통해 얻는 소소한 행복

사장의 책 쓰기

by 최송목

책 쓰기를 통해 작가라는 타이틀을 가지게 된 것 외 부대로 얻은 작은 행복 몇 가지가 있다.


먼저, 타인의 눈으로 나의 생각을 보게 된 점이다.

글쓰기는 자기 이야기를 어느 정도 써야 하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자기 객관화가 가능해진다. 나도 몇 권의 책을 쓰는 과정에서 스스로 바라보기가 어느 정도 체득된 것 같다. 주관적으로 내부에서 외부를 바라보다가 이제는 외부에서 내부의 자기를 타자로서 바라보는 관점의 이동이다.

책 쓰기는 혼자 보는 일기장과는 달리 공개되기 위해 쓰는 글이다. 그냥 본인의 생각 정리에서 한발 더 나아가 내 머릿속을 남들에게 까발리는 것이다. 그것은 나만의 생각을 공개과정을 거쳐 공인된 자아로 나아가는 일종의 훈련과정이기도 하다. 작가의 가슴속 품은 사상을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하는 것이다.


이때 작가는 자신의 글이 타인에게 공개적으로 평가받는 피드백 과정도 가감 없이 지켜볼 수 있다. 공감을 얻는 내용인지, 혼자만의 돈키호테 같은 생각인지가 드러나는 것이다. 물론 꼭 남의 시선을 의식하고 글을 쓴다거나 타인의 좋은 평가를 받는다고 다 좋은 글은 아니다. 하지만 남들과의 생각차이를 이해하고 그들과 얼마나 가까운지 멀리 떨어져 있는지 가늠하는 기회를 얻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다.

드로잉=최송목

두 번째, 자존감 회복에 도움이 되었다.

대개 유명한 작가들의 글 쓴 동기나 환경을 보면 어려운 여건, 곤경에 처했을 때인 경우가 많았다. <군주론>은 마키아벨리가 반란 음모로 투옥되었다가 풀려나 시골 농장에서 집필한 것이고, 한비자는 한나라 왕에게 법과 부국강병의 계책을 여러 차례 건의하였으나 말재주가 없는 데다 말더듬이였던 탓에 등용되지 못했는데, 그런 그의 글과 말을 엮은 책이 <한비자>다. 정약용은 강진 유배생활 중 <목민심서>를 썼고, 정약전은 흑산도에 귀양살이 중 <자산어보>를 썼다.


사람이 어려움에 처하면 가장 먼저 무너지는 것이 자존감이다. "내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나는 이것밖에 되지 않는 걸까? 지나온 과거의 부귀영화 시절이 진짜 내 모습일까? 아니면, 무너진 지금의 모습이 진짜 내 모습일까? " 등 오만가지 상념에 사로잡히게 되고 후회, 비탄, 슬픔, 우울증상을 겪는다.


이때 이런 회한과 염세적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바로 글쓰기다. 일종의 자기 위로이기도 하고 자존감 회복 과정의 치유 수단이기도 하다. 물론 이걸 '치유 수단'으로 미리 생각하고 글을 시작하는 필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렇다는 것이다. 나의 경우도 과거의 실패와 회한의 과정을 글로 옮기면서 그런 치유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앞서 언급한 유명한 저자들도 감정의 진폭은 다르겠지만, 아마 나와 비슷하리라 생각한다.


글쓰기는 자기표현 이전에 일종의 감정 배설행위로도 볼 수 있다. 단순 배설은 스트레스 해소나 불순물 배출에 그치지만, 묵상과 통찰을 통해 용서 같은 감정의 승화 과정을 거침으로써 훌륭한 명품으로 재생산 탄생되는 것이다. 특히 곤궁한 처지에서 집필한 저술들이 후일 명저로 이름을 날리게 되는 것은 이런 승화된 배설의 결과물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 높은 관직이나 영화로운 시절로 다시 돌아가는 것은 마음대로 되지 않겠지만, 글은 자기가 마음대로 시공간의 제약 없이 상상여행이 가능하다. 그런 시간여행의 결과물을 하나의 묶음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스스로에 대한 자긍심과 자존감의 대체 성과물로 높은 만족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정도까지의 고난과 역경의 수준은 아니고 또 의도하지도 않았지만, 나 또한 끓어오르는 분노와 실패에 대한 회한을 긍정적으로 풀어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하나의 글과 책이 완성되었다. 일반적으로 볼 때 편안하고 풍요로운 가운데 나오는 글은 평이하고 대중들에게 별다른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그가 겪은 영화와 고난의 진폭만큼 그 글을 읽는 독자의 감정이나 지적 안테나의 촉을 건드리는 것이다.


세 번째, 책 쓰기를 통해 삶의 정리를 할 수 있었다.

인간은 누구나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복잡한 여정이다. 연륜이 길수록 사건도 많을 테고 사연의 꼬리도 길어질 것이다. 필자 또한 그동안 많은 사건과 복잡함 속에 생각의 잡동사니가 가득하다. 슬픈 사연, 아쉬운 사연, 후회, 기쁨, 낭만적 해프닝, 용서를 빌어야 하는데 그냥 지나친 것, 마음속으로 꽁하고 용서 못한 것, 지금도 생각하면 창피스럽고 부끄러운 사건 등 이런저런 것들이 뒤죽박죽 범벅이 되어 매일을 살아왔고 오늘에 이르렀다.


그런데 최근 글을 쓰다 보니 뭔가 정리가 되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방에 한가득 책들이 널브러져 있다가 수납장 책꽂이에 장르별, 크기별, 색깔별로 차곡차곡 분류되어 정리되어 가는 그런 느낌말이다. 물론 글을 쓴다거나 책을 쓴다고 모든 것이 깔끔하게 정리 정돈되고 완벽하게 청소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4권을 쓰고 여기에 더하여 가끔 한 꼭지씩의 칼럼이나 브런치 글을 쓰다 보니 내가 아는 것, 잘 모르는 것, 배우면 알 것 같은 것, 배워도 도저히 안 되는 것 등을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미처 다 정리는 못다 한 것들은 그 정리하는 방법을 터득했거나 정리의 방향성을 갖게 되었다. 머릿속 창고 정리다.


또 글을 쓴다는 것은 그 내용에 상관없이 내부 속엣것들을 밖으로 방출하는 것이니 비우는 효과가 있다. 전부를 비우지 못하더라도 일부를 정리하고 버리는 과정에서 틈새의 쉼과 여유가 생기는 것이다. 마치 컴퓨터에서 ‘쓰레기통‘비우고 메모리 공간을 확보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네 번째, 좀 더 행복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다

책 쓰기 이전에는 욕망의 굴레에 의해 주체 못 하는 삶을 살아왔다. 책을 쓰면서 차츰 나 자신의 욕망을 관조하게 되었다. 생활은 궁핍해졌지만 마음은 풍요로워졌다. 남들 보기에 부족해 보이지만, 줄이고 덜 쓰고 덜 물질적인 가치를 추구하다 보니 얻은 결과다. 만족스럽지 못하지만 만족하려 애쓴다.


욕망을 스스로 바라볼 수 있다는 깨달음은 나에게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궤적은 성공이나 성취를 통한 물질적 쾌락과 ‘편안함’이 목표였다면, 이제는 정신적인 안정과 ‘평안함’을 추구하는 것이 목표다. 돈으로 행복을 추구하는 삶은 끝이 보이지 않았지만, 마음으로 추구하는 삶은 끝이 보여서 기쁘다.


책 쓰기는 생각의 정화를 통해 자기 가치를 발견해 나가는 소소한 행복 공정이다. 생활 속 구석구석에 보이지 않게 조금씩 묻어있다. 오늘도 나는 그런 걸 찾고 맛을 느끼고 마시며 향을 즐긴다.

그림=최송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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