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가? 철학인가? 느낌인가?

사장의 책 쓰기

by 최송목

지금까지는 저자의 독특한 자기 이야기(지식, 경험, 감정)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했다. 그다음은 뭐가 중요할까? 작가가 어느 장르 어느 방향으로 글을 쓸 것인가이다. 앞서 언급한 유니크함은 독자들 관점이었지만, 이것은 순전히 작가의 관점이며 글쓰기 효율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예컨대 신발을 선택한다고 가정해 보자. 신발 종류는 다양하다. 정장용의 구두, 케쥬얼 신발, 운동용 운동화가 있다. 운동화를 다시 나누면 테니스화, 골프화, 러닝화, 등산화 등으로 각 분야별로 그에 적절하게 세분화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책 쓰기도 그렇다. 크게는 기술을 쓸 것인가. 느낌을 쓸 것인가. 생각을 쓸 것인가?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즉, 지식 기술의 전문지식인지, 감상을 잔잔하게 서술하는 수필인지, 자기의 생각이나 철학을 논리와 지식으로 설득하는 글인지를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고 그 장르에 속하려 노력해야 한다. 책의 장르 또는 글의 방향 설정을 분명히 하라는 것이다.

그림=최송목

이게 왜 중요하냐고? 그러지 않으면 엄청난 시간과 노력 낭비를 초래할 수 있다. 우리가 쇼핑 갈 때 목적 없이 가면 불필요한 물건을 많이 사게 되는 것과 같은 원리다. 장르를 정하지 않고 쓰고 싶은 대로 쓴다면 당장의 선택과 정리에 대한 고민, 수고는 덜겠지만, 단순 배설로 인한 쓰레기 글의 정리로 향후 시간과 노력의 적잖은 낭비를 초래할 수 있다. 그러므로 자기가 쓰고 있는 글이 느낌인지, 지식인지 생각인지, 어느 쪽인지 미리 방향을 잡고 쓰는 게 좋겠다.


어느 예비 작가 A의 글을 검토할 때 일이다. 책 제목이나 장르는 분명 기술과 논리 쪽인데, 글은 감상적으로 본인의 느낌을 많이 넣는 바람에 전문지식인지 감상문인지 모호해진 글이 되었다. 책 분량은 130쪽으로 충분했지만, 내용을 검토해 본 결과 절반이상을 잘라내고(버린다는 뜻) 다시 채워야 하는 작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그의 글을 내가 과감히 50%(60쪽)를 잘라내라고 권고했을 때 그는 무척 난감해하고 불쾌하게 받아들였다. 그래서 나는 다른 방법으로 그를 달랬다. “그 감성 가득한 원고도 좋은 글이니 따로 빼놓았다가 소설이나 수필 쓸 때 사용하면 요긴할 것이니 잘 골라내시라”라고 희망적인 제안을 한 것이다. 그제야 그는 수긍했고 그만큼 분량(30쪽)을 다시 채워 넣었다. 어쨌거나 오락가락하는 바람에 불필요한 수고를 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작가의 수고로움은 독자의 따가운 시선으로 가름된다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독자들은 냉정하다. 비록 글도 책도 못쓰고 눈쇼핑을 즐기는 그들이지만, 의외로 자기의 시간과 돈을 지불하는데 상당히 이성적이다. 독자는 첫 페이지를 넘겼을 때 독특함이 없거나 주제가 불분명하거나 이해가 되지 않으면, 바로 책장을 덮어버린다. 작가는 이런 독자의 냉혹함을 항상 의식하면서 한 문장 한 문장 글을 써 내려가야 한다. 그리고 솔직하고 분명하게 책의 의도와 방향을 전개해야 한다. 비록 대면은 아니지만, 직대면처럼 지면을 통해 간접적으로 호흡과 온기를 느끼는 촉이 민감한 존재들이 바로 독자다.


그러므로 독자가 내 책을 펼쳤을 때 주관심사, 흥미로운 읽을거리를 반드시 제공해야 한다. 물론 작가 스스로도 공들여 글을 썼겠지만, 독자 또한 귀한 시간과 돈을 들이는 선택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모든 선택이 길어야 5분 내에 대개는 30초 이내 끝난다는 사실도 주목해야 한다. 독자가 책장을 흘깃 넘기다가 바로 제자리에 꽂는 장면을 상상하면서 문장을 써 내려가야 한다. 선택당하는 그 기분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쓰는 것이다. 그게 독자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keyword
이전 14화그런데, 저자는 지금 뭐 하고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