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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송목 Dec 01. 2024

두려움은 언제나 나쁜 것인가? 두려움의 양면

생활 손자병법

시졸여영아, 고가여지부심계 (視卒如嬰兒, 故可與之赴深溪)

시졸여애자, 고가여지구사 (視卒如愛子, 故可與之俱死)

병졸을 어린아이를 돌보듯 하면, 깊은 계곡이라도 함께 나아갈 수 있고,  

병졸을 사랑하는 자식처럼 대하면, 함께 죽음을 무릅쓰고 전진할 수 있다.     


 손자병법 지형(地形) 편에 나오는 말이다. 장수가 부하들을 어린아이 돌보듯, 자식처럼 대하듯  노력하는 것처럼, 사장도 이 같은 마음으로 직원을 아끼고 사랑한다면 목표를 이룰 것이다. 또 직원들도 이에 부응하여 편안한 마음으로 열심히 일할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기대이고 이상적인 조직체계일 것이다.   

   

이점에 대해 25년간 '심리적 안정감 (Psychological Safety)'을 연구하여 전 세계 경영학계에서 큰 주목을 받은 사람이 있다. 《두려움 없는 조직》의 저자 에이미 에드먼슨은 하버드 경영대학원 종신교수이자 세계적 경영학 구루다. 그는 구글에서 ‘아리스토텔레스’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무엇이 팀을 더 효율적으로 만드는가?’에 대한 답을 찾는 실험을 했는데, 해답은 바로 이 '심리적 안정감'이었다. 만족스러운 연봉체계, 복지혜택을 통한 안정적인 근무 조건은 채용과 퇴사의 중요한 트리거(Trigger)로 작용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연봉과 복지를 지속적으로 상향조정한다 해서 반드시 직원의 충성도나 효율이 비례함수를 그린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이런 지속적인 '심리적 안정감'은 조직원의 만족과 안정에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한편으로 조직의 권태나 나태로 이어져 매너리즘에 빠질 수도 있고 관성에 젖어 창의적 발전을 저해하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이를 두고 손자병법에서는 “후이불능사, 애이불능령 (厚而不能使, 愛而不能令)” 병사를 후덕하게만 대우하면 일을 시킬 수 없고 사랑하기만 해서는 명령을 내릴 수 없다.’라고 했다. 말 그대로 후덕함의 부작용을 염두에 둔 말이다.     


소득과 행복의 상관관계를 이야기할 때 흔히 인용하는 이론에 이스털린의 역설 (Easterlin's Paradox)이라는 게 있다. 1974년 미국 경제사학자 리처드 이스털린이 주장한 개념으로 ‘소득이 일정 수준을 넘어 기본 욕구가 충족되면 소득이 증가해도 행복은 더 이상 증가하지 않는다’는 이론이다. 마찬가지로 회사 연봉이나 복지도 일정 수준을 넘어 임계점 이상에서는 더 이상 효율을 담보해 주지 않는다. 직원 급여를 늘리고 복지 혜택을 확대하고 직원을 사랑으로 대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말이다.    

 

‘심리적 안정감’의 대척점에는 ‘두려움(fear)’이 있다. 두려움이란 유해한 일이나 고통을 예상하는 것, 일반적으로 경계심·무서움·불안감 등을 특징으로 하는 고통스러운 감정을 가리키는 데 흔히 사용되는 말이다. 이런 두려움을 활용하여 극단적인 리더십을 발휘한 인물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는 이렇게 말했다.

“지도자는 사랑을 받기보다는 두려움을 줘야 한다. 아무도 날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나는 무의미한 존재다. 말썽꾸러기는 정치적으로 없애 버리는 게 우리 일이다. 모두 내 가방 안에 날카로운 손도끼가 있다는 것을 안다. 나와 겨루려 든다면, 난 손도끼를 꺼낼 것이고 우린 막다른 골목에서 만날 것이다.” 물론 극단적인 사고로 지금의 시대정신과는 거리가 멀다.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개인적인 두려움은 ‘잘할 수 있을까’, ‘잘못되지 않을까?’, ‘실수하지 않을까?’, ‘오해받지 않을까’ 등 불안, 걱정을 수반한 두려움일 것이다. 이때 두려움 대부분은 아마도 ‘상실’에 대한 두려움으로 수렴할 것이다. 돈의 상실, 자산의 상실, 지위나 권력의 상실, 존재의 상실, 나아가 생명의 상실인 죽음이 될 것이다. 두려움은 정신의 독이 될 수 있고 이성을 잃어버리게 할 수 있으며 가스라이팅으로 활용되어 최악의 신체적 병보다 더 파괴적이 될 수도 있다.     

'눈치'by 최송목

하지만, 두려움은 언제나 나쁜가? 모든 두려움은 배척해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두려움이 언제나 이성을 잃어버리게 하거나 정신의 독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는 두려움이 유익할 수도 있다. 빙판길에 운전을 조심한다던지, 깊은 바다에서 구명조끼를 입는 것 등 예상되는 상황에서 합리적인 신경과민은 정상적인 반응이다. 우리는 그러한 반응을 통해 방심하지 않고 신중을 기하게 된다. 건전한 두려움은 우리가 성급하게 어떤 일을 하다가 다치는 일이 없도록 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생명을 보호해 주며, 위험하고 무모한 행동을 방지해 준다.     


경영에서는 이 ‘두려움’을 혁신 또는 위기라는 이름으로 바꾸어 활용하고 있다. 매출이 횡보하고 있거나 작은 사고가 있을 때 이를 계기로 긴장을 조성하여 큰 사고를 방지한다거나 새로운 도약의 계기로 삼는 것이다. 과거 삼성 이건희 회장은 1987년 취임한 이래 20여 년 동안 줄곧 직원들에게 긴장과 혁신을 강조했다. 1993년 “신경영”이라는 이름하에 그 유명한 말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라”라며 조직을 벼랑으로 몰아붙였고, 이후 1995년에는 국내최초로 학력, 성별 불문하고 능력위주로 신입사원을 채용하도록 전환함으로써 조직내부의 긴장을 불어넣었다. 그동안 동향, 선배, 학벌을 등에 업고 편안하게 지내오던 임원 간부들을 긴장시키고자 하는 회장의 강력한 메시지였다.      


이와 같이 두려움은 해나 손상을 입힐 만한 것을 이성적으로 인식하거나 다가 올 위기를 고려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인식이 있으면 이지적인 조심성과 선견지명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고 경영자는 이를 노리고 의도적인 긴장을 조성하기도 하는 것이다. 막연하거나 감정적 비합리적인 두려움은 확대 각인되어 평생 트라우마나 노예로 살게 될 수도 있지만, 적당하고 합리적인 긴장과 두려움은 각 개인을 깨어있게 하고 창의적이고 발전적인 조직으로 성장하는데 도움이 되는 하나의 수단이 되는 것이다.

https://www.todaymild.com/news/articleView.html?idxno=7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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