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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권조 Feb 08. 2022

오늘의 성취 : 상추 심기

이러다 부농이 되면 어쩌지

10년 전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버스를 기다리면서 무슨 생각이었는지 꽃집에 들어갔다. 정류장 가까이 있던 꽃집에는 다발로 묶일 꽃들 외에도 화분이 놓여 있었다. 거기서 앵두를 한 그루 샀다. 흙에서부터 위로 30센티미터는 되지 않을까 싶은 크기로 기억한다.


그날따라 지갑에 여유가 있었는지 아니면 마음 구석에 여유가 없었던 것인지 나는 화분을 안고 버스에 올랐다. 옥천에서 왔다는 앵두가 꽤나 마음에 들었나 보다.


테라스에 화분을 놓고 1년 정도 키웠다. 마음을 쓰지 못해 시들게 두고, 떠나보내기까지 앵두도 몇 알 맺는 것을 보았다. 그런 후로는 식물을 키우지 않았다. 상심이 컸던 건 아니다. 원체 무얼 키우고 하는 데에 눈을 두지 못하는 탓이다.

의도한 건 아닌데 크기 비교

다이소에서 각각 1,000원에 배양토와 상추 씨앗을 샀다. 그리고 버리지 않고 두었던 일회용 플라스틱 컵을 2개 쓰기로 했다. 아래에 받치는 컵이 물받침을 대신할 수 있겠다.

보너스 성취 : 대장장이 체험

물이 빠질 구멍을 내려고 송곳을 찾았는데, 집에 송곳이 없었다. 차선으로 십자드라이버를 찾았는데 손잡이가 짧아 펜치로 쥐어 달구기로 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대장간 체험을 하고 싶다. 이번에 어설프게나마 흉내를 내보기로.

뚫린 거 아닙니다

끝이 뜨거운 때문인지 플라스틱이 녹으며 늘어나기만 하고 뚫리질 않았다. 그래도 더욱 달궈 집요하게 시도하니 결국 구멍을 냈다.


넉넉하게 구멍을 8개 정도 뚫는다.

커피처럼 사랑받으라는 의미로 커피 컵을 사용

구멍이 지나치게 커서 배수판을 잘라 바닥에 깐다. 오늘 한 일 가운데 가장 보람찼을지도 모르겠다.


여기에 배양토를 슬슬 채우고, 1cm 정도 깊이로 심기 위해 꼬챙이로 슬슬 흙을 파 씨앗을 심는다. 봉투에 담긴 씨앗이 1,000개 정도인데 10개도 심지 못했다. 당황.

오늘의 영단어. 꽃상추는 endive

마지막으로 씨앗 포장지에 있던 이름표를 붙여주면 끝.


과연 이 겨울에도 잘 자랄지 걱정이다. 오늘은 '심기'를 성취로 삼았으니, 언젠가 '심은 상추로 고기 싸 먹기'하는 날도 오길.


매일 창가와 볕을 보며 기대할 바가 하나 더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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