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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일엔 올레 1코스지!

1코스, 새해 첫날에 걷는 길 (21st)

by 체리뽀 Jan 31. 2025


바다에서 해 뜨는 거 본 적 있어?


나는 남편에게 '그걸 질문이라고 하냐'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대답을 대신했다.


내 고향은 울산이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바다를 보러 갈 수 있는 곳에서 나고 자란 내가, 바다에서 해 뜨는 걸 못 봤을 리 없다. 단지 몇 번이나 봤는지 정확히 기억하지 못할 뿐.


매년 그랬던 건 아니지만 새해 첫날이면 아버지는 자고 있던 가족들을 깨워 동해 바다로 데려가 일출을 보여 주셨다. 그 때 잡았던 아버지의 손은 한겨울 바다 앞에서도 참 따뜻했었다.


2025년 1월 1일 제주에서 처음 일출을 보게 된 아이들 :)


"우리 애들은 바다에서 해 뜨는 거 본 적 없으니까 제주에서 보여 주는 게 어때?"


2025년 1월 1일, 남편의 주도 하에 일출을 보러 가기로 했다. 성산 일출봉이 보이는 광치기 해변이 처음 목적지였으나 사람이 너무 많을 것 같아 한적한 온평 포구 근처에 차를 세웠다.


날씨는 생각보다 춥지 않았다. 하늘에 구름이 낮게 깔려 있어 해가 안 보일까봐 살짝 걱정됐지만, 아무렴 어때! 아이들과 함께 처음 일출을 보게 된 곳이 제주 바다인 것만으로도 좋았다.


아이들은 처음으로 해 뜨는 걸 본다며 한껏 들뜬 모습이었다. 나 역시도 어린 시절에 아버지와 봤던 새해 일출을 이제는 나의 아이들과 보게 되어 감회가 새로웠다.


아직 해 뜨기 전,
차에서 해가 뜰 때까지 기다리는 중
수평선 너머에서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 붉은 해!


"엄마! 아빠! 저기 봐! 해가 나오고 있어!"


"우와 신기하다~ 바다에서 진짜 해가 떠오르네?"


아이들은 바다에서 떠오르는 해를 보며 기쁨의 환호성을 질러댔다.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에서 해를 보고 싶다며 돌을 밟고 나아가는 아이들을 보니 뿌듯하기까지 했다.


제주 바다는 동해 바다와는 또 다른 매력의 일출을 볼 수 있어 좋았다. 새해 첫 아침을 일출 보기로 화려하게 시작한 우리 가족은 올레길 걷기로 남은 하루를 채울 예정이었다.


"새해 첫날에 해 뜨는 것도 잘 봤으니, 1월 1일을 맞아 올레 1코스나 걸으러 가볼까?"


새해 복 많이 받자, 나의 아이들아^^




해돋이를 본 뒤 아침을 먹고 나서 우리가 향한 곳은 시흥리였다. 1월 1일을 맞아 올레길 중에 최초로 열렸다는 1코스를 걷기로 했기 때문이다.


"엄마, 1월 1일이라 올레 1코스 걷는 거지?"


"근데 새해 첫날부터 올레길 걷는 어린이는 우리밖에 없을 거야!"


14년 전에 나홀로 걸었던 첫 올레길도 1코스였다. 지난 봄에 친정 엄마랑도 걸어봤던 곳이라 더 익숙하고 반가운 길이었다.


1코스는 시흥리 정류장에서 시작!
당근밭을 따라 말미오름으로 가는 길




말미오름


1코스는 두산봉이라 불리는 말미오름에 오르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정상까지 경사가 꽤 있고 계단도 많아 한겨울 날씨에도 땀이 절로 나는 구간이었다.


두산봉 또는 말미오름에 오르기 전!
시작부터 쭉쭉 계단을 올라가야 합니다.
열심히 올라가니 뒤로는 눈 덮이 한라산이 보이고,
앞으로는 성산일출봉과 동쪽 바다가 보입니다.
다른 코스에선 볼 수 없었던 큰 간세와 사진도 찍고!
전망대에서 아름다운 동쪽 바다를 눈에 담습니다.


"엄마, 거기서부터는 발 밑에 잘 보면서 걸어 와!"


앞서 가던 첫째가 나를 돌아보며 큰 소리로 경고해 주었다.


"왜?"


"말똥인지 소똥인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길 위에 똥이 많아!"


"오케이! 말해줘서 고마워 딸냄!"


말미오름은 소를 방목해서 키우는 곳이라 때를 잘못 맞추면 소떼들에게 길이 막힐 수도 있다고 듣긴 했다. 우리가 말미오름에 올랐을 때 소는 없었지만 그 녀석들의 흔적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우도가 보이는 지점, 아이가 길 위의 소똥을 보고 멈춰 있다.
동물 친구들의 흔적(?)을 피해 조심히 걸었던 길
소나 말 출입 제한 시설도 올레의 색이라 반가웠던^^




알오름


말미오름에서 바로 이어지는 또 다른 오름은 '알오름'이었다. 알오름으로 가기 직전, 첫째 아이가 나의 어떤 말 한 마디에 토라져서는 혼자 성큼성큼 먼저 가버렸다.


아직도 그녀가 왜 삐친 건지는 정확히 모른다. 그녀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아마도 이유는 항상 그렇듯, 엄마가 자기보다 동생한테 더 관심을 줬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엄마인 나도 억울하다... 두 아이에게 언제나 똑같은 반응을 줄 수 없는 노릇이건만...)


삐쳐서 1등으로 가고 있는 첫째, 그 뒤를 쫓고 있는 둘째, 그 뒤로 억울한 나...
알오름으로 오르는 가파른 길!
첫째 아이는 서러운 마음에 눈물을 닦고 있는 중...
알오름 정상에 올라 드러누운 아이들...
삐쳐서 사진도 안 찍을 것 같더니, 냉큼 옆으로 오던 첫째(오른쪽)


알오름에서 바라본 풍경도 가히 예술이었다. 14년 전에 이 길을 처음 만나며 올레의 매력에 흠뻑 빠졌던 나를 이해하고도 남을 만큼, 여전히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 때는 혼자서만 감탄하며 보느라 아쉬움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남편과 아이들의 끝없는 탄성을 들으며 함께 걷느라 즐거움이 배가 되는 느낌이었다.


알오름에서 바라본 우도, 그리고 성산일출봉!
지미봉을 바라보며 알오름을 내려 갑니다 :)




소금밭으로 유명했던 종달리 마을


알오름을 다 내려오면 종달리 마을을 만나게 된다. 골목 담벼락마다 예쁜 벽화들이 그려져 있고, 작고 귀여운 가게들이 많아 둘러보는 즐거움이 있다.


벽에 그려진 올레 '간세'가 반가워서 찰칵!
사람이 아름다운 마을 종달리! 여름에는 수국으로도 유명한 곳^^
예전에 소금밭이 있던 마을이기도 하다.


"아... 오늘 해돋이 본다고 너무 일찍 일어났나? 이상하게 좀 힘드네..."


"아빠, 우리 카페에서 좀 쉬다 가면 안 될까?"


종달리 마을을 벗어나기 전,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위해 카페에 들러 조금 쉬기로 했다. 남편이 봐두었다던 카페는 마침 지난 봄에 엄마랑 1코스를 걷다가 들렀던 카페와 같은 곳이었다.


4인석 자리가 없어 아이들과 1:1 데이트를 즐긴 카페 :)


"얘들아, 벌써 여기까지 걸어 온 거야? 이 과자 좀 먹으렴~"


카페를 나와 다시 걷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1코스 시작점에서 우리 가족 사진을 찍어 주시고 함께 출발했던 올레꾼 부부를 만나게 되었다. 아이들에게 간식을 건네시며 말을 걸던 아주머니 :)


"우리는 오늘 처음으로 올레길 걷는 거야! 새해 계획으로 올레길 완주에 도전해 보려고~"


"아, 그러세요? 저희도 올레길 완주할 건데, 오늘 걸으면 21개째 걷는 거예요~"


"어머나, 정말? 올레길 정말 많이 걸었구나! 이제 몇 코스만 더 걸으면 돼?"


"저희는 여섯 코스만 더 걸으면 끝이예요!"


"와~ 너희 정말 대단하다! 올레길 선배님이었네! 완주를 응원해~"


아이들은 뿌듯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하며 계속 걸었다. 아주머니가 건네 주신 버터 와플 과자를 와그작와그작 맛있게 먹으면서^^


아이들에게 간식을 나눠 주시던 올레꾼 아주머니^^
종달리 해안도로를 따라 걷는 바당길이 나왔다.




중간 스탬프 지점, 목화 휴게소


개그우먼 장도연님이 <나혼자 산다>라는 프로그램에서 제주 바다를 바라보며 반건조 오징어를 안주 삼아 캔맥주를 마셨던 가맥집이 바로 '목화 휴게소'이다.


목화 휴게소 바로 옆이 중간 스탬프를 찍는 곳이라 스탬프만 찍고 가려는데, 목화 휴게소에 앉아 바다를 보며 컵라면을 맛있게 드시는 분들이 보였다.


"엄마! 근데... 우리 반 친구 중에 올레길 걸어 봤다는 애가 두 명 있거든? 근데 걔네 둘 다 올레길 걷다가 먹은 컵라면이 그렇게 맛있다고 하는 거야! 나는 올레길 스무 번이나 걸으면서 컵라면 한 번도 안 먹어 봤는데... 그냥 그렇다고..."


둘째의 말을 듣자마자 귀여워서 웃음이 절로 났다. 그동안 올레길을 걷는 데에 체력 소모가 워낙 커서 점심은 무조건 식당에서 잘 먹이고는 했었는데... 아이는 컵라면을 먹은 친구들이 더 부러웠던 거다.


"우리 딸도 올레길 걷다가 먹는 컵라면 맛이 어떤지 한 번 느껴 볼래?"


컵라면을 먹고 싶었던 아이의 마음을 눈치채고 '목화 휴게소'에서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다. 아이들은 스물 한 번째 올레길 만에 처음으로 컵라면 특식(?)을 먹게 되어 설렘 가득한 얼굴이 되었다.


해풍에 잘 말려진 반건조 오징어 맛도 궁금해서 같이 시켰는데, 연탄불에 구워 주신 오징어 맛도 기가 막히고! 뜨끈한 컵라면도 끝내주게 맛있었다!


"엄마... 올레길 걸으면서 먹은 것 중에 오늘 컵라면이 제일 맛있어!"


"친구들이 올레길 걷다가 먹는 컵라면이 제일 맛있다고 한 이유를 이제야 알겠네!"


아이들은 엄지 척을 몇 번이나 보여 주며 컵라면을 남김없이 해치웠다.


목화 휴게소에서 중간 스탬프를 찍고,
목화 휴게소에서 먹은 반건조 오징어와 육개장 사발면^^;
우와! 우리가 먹은 반건조 오징어다~




목화 휴게소에서 점심을 먹고 나서는 왼쪽으로 바다와 우도를 보며 성산 일출봉을 향해 걸었다. 만족스런 컵라면 특식(?)을 먹은 덕분에 아이들도 힘차게 걷는 모습이었다.

 

며칠 전에 다녀온 우도가 계속 보여서 반가웠던^^
바닷바람은 다소 강하게 부는 중!
지미봉이 보이는 바다 구경하다가 바람에 눈도 못 뜨는 중^^;
아주 멀리서만 보이던 성산 일출봉이 크게 보이기 시작^^




언제 봐도 웅장한 성산 일출봉


사실 새해 첫날에는 성산 일출봉에서 일출을 보고 싶었다. 그래서 한달 전쯤 성산 일출봉 새벽 등반 사전 신청에 도전했는데 광속으로 탈락하고야 말았다...ㅠㅠ (선착순 900명에 들지 못함!)


그 때 '성산 일출봉에서 새해 일출 보기'라는 버킷 리스트를 이루지 못하게 된 속상한 마음을 달래려 성산 일출봉에 올랐었다. 예전과 다르게 길이 잘 정비되어 있어 훨씬 정상에 오르기가 수월했다.


그래도 나는 일출봉 정상에 오르는 것보다는 바다 위의 웅장한 성벽 같은 모습의 일출봉을 아래에서 올려다 보는 걸 더 선호한다.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멋진 자태의 일출봉을 한눈에 담을 수 있기에.


말미오름에서 봤던 큰 간세가 또 있어서 성산 일출봉을 배경으로 한 컷^^
수마포 쪽에서 봐도 멋진 성산 일출봉!
광치기 해변으로 가는 길, 자동 조명을 수동(?)으로 밝히고 있는 아이들
애교 부리며 다가오던 고양이도 구경하고,
아이들은 빠르게 달려 나갑니다.




터진목 4.3 유적지를 지나며


한강 작가님의 노벨 문학상 수상으로 인해 널리 알려지고 있는 제주 4.3 사건! 올레길을 걷다 보면 더 자주 그 역사의 현장을 만나게 된다.


올레 1코스 막바지인 광치기 해변으로 가는 길에도 4.3 사건 당시 성산읍 지역 주민들이 집단 학살 당했던 터가 있다.


성산 일출봉을 배경으로 세워진 큰 반지 모양 위령비에는 돌아가신 분들의 이름이 빼곡히 쓰여 있었는데, 국가의 잔인한 폭력 앞에 스러진 가엾은 목숨들이 안타깝고 가슴 아파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이처럼 아픈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으려면 꾸준히 과거에 관심을 갖고 미래를 위해 행동하는 자세를 지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터진목 4.3 유적지
희생 당한 분들의 이름이 빼곡히 새겨져 있었다.
광치기 해변 올레 표식을 지나,
먼저 도착해서 놀고 있던 아이들 발견!




"어머나 얘들아! 어떻게 이 길을 완주했어? 생각보다 훨씬 다리 아프고 힘들어서 아줌마는 깜짝 놀랐어... 왜 이렇게 가도가도 끝나지가 않는 건지!"


1코스 시작점과 중간 지점에 이어 종점인 광치기 해변에서도 같은 분을 또 만나게 되었다. 오늘 처음 올레길을 걷는다던 그 아주머니께서는 올레길 한 코스 걷기의 엄청난 의미를 실감하신 듯 했다.


"오늘은 다른 코스보다 길이도 짧고 금방 끝나서 걷기 안 힘든 편인데요?"


"다른 코스는 여기보다 훨씬 더 길고 힘든 데도 많아요!"


아이들이 경험담을 말해 드리자 아주머니는 놀라서 까무러치는 표정이 되셨다. 고개를 절레절레 하며 택시를 잡아타고 가시던 아주머니 뒷모습을 보며 아이들끼리 계속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 아주머니 올레길 완주하실 수 있을까? 우리는 이제 6개밖에 안 남았는데..."


"하긴, 우리도 처음 올레길 걸을 때는 너무 힘들어서 절반 밖에 못 걷고 나머지 반은 다음날 걸었잖아!"


"맞네! 우리가 요새 하도 잘 걸어서 잠시 까먹었다~"


"이젠 하루에 20km 걷는 것 정도는 껌이지!"


"근데 솔직히 아주 쉬운 건 아니야... 다리는 엄청 아프니까!"


"그래도 이제 6개만 더 걸으면 올레길 전체 완주할 수 있으니까 좋아!"


이제는 초보 올레꾼에게 경험담을 들려드릴 수 있을 만큼 성장한 아이들! 1코스는 15km밖에 안 걸어서 다리도 거의 안 아프다며 여유있게 미소 짓는 아이들을 보니 정말 기특하고 대견한 마음이었다.


1월 1일을 맞아 도전한 올레길 1코스 완주도 가뿐하게 성공한 딸들아, 새해 복 듬뿍 받으렴!


2025년 1월 1일에 걸은 올레 1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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