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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입니다 Jan 17. 2024

겨울 뉴욕_중세 수도원처럼 The Cloisters

갔다 온 사람들은 모두 최고라고 말하는 뉴욕의 중세 수도원 미술관

내가 여행지에서 가고 싶은 곳을 고를 때마다 평소에는 흐리멍덩하게 보이던 내 취향이 보인다. 이번 뉴욕여행 중에 가장 가고 싶었던 곳은 수도원 모습을 한 미술관인 더 클로이스터스였다. 덜 알려진 곳과 누군가의 “여기가 가장 좋았어요.” 후기는 내 마음을 자주 흔든다. 나는 온라인에서 상당한 팔랑귀다.     

뉴욕지하철 전세냈다

그렇지만 여행은 선택과 포기의 게임이라 가고 싶다고 다 가지 못한다. 시간과 비용 그리고 체력으로 여행은 쓰인다. 이날은 원래 나이아가라를 가려고 한 날이었다. 1박 2일로 다녀오려고 했는데 버펄로 폭설로 포기했다. 이럴 때 여행의 재미가 발현되는데 빈 일정에 무엇을 넣을까 빠르고 정확하게 고를수록 쾌감이 높다. 뉴욕은 고맙게도 가고 싶은 곳이 많아 어렵지 않은 선택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크리스마스 연휴에 클로이스터스로 갔다. 여기는 메트로폴리탄의 분원이다. 맨해튼에는 사람이 많았는데 지하철을 타고 위로 올라갈수록 역에도 지하철에도 사람이 별로 없었는데 내릴 때가 되니 우리만 타고 있었다.

하도 사람이 없어서 출구를 나가면서 까지 “맞게 내린 건가?” 의심했다. 나오자마자 맥도날드가 보인다. 일단 들어가서 생각한다. 나는 머핀을 고르고 다들 하나씩 골라서 결제를 하려고 하는데 키오스크에 자꾸 카드 오류가 생겼다. 몇 번 시도하다 안 되는 걸 보고 다들 그냥 미술관 갔다가 먹겠다고 하길래 그냥 나와서 미술관으로 향한다.     

드디어 지하철 출구로 나왔다.
THE MET이 보이자 제대로 내렸다는 안도감이 든다.

화살표를 따라 올라가는데 길이 얼어있어서 속도를 못 내다보니 그리 높지 않은 곳인데도 한참 올라온 것 같다. 숨도 잘 안 쉬어지는 것 같은데 올라가는 길이 꼭 또 다른 세상으로 가는 길 같아서 묘했다. 우리가 올라오는 길에 내려오는 두 사람을 보지 않았다면 이 길이 맞나 또 의심했을 거다. 결국 도착한 수도원. 가까이 올 수록 진짜 다른 시대 같다.     

그런데 이번에는 문이 안 보인다. 차는 주차되어 있는데 어디로 들어가는지를 모르겠네. 주변에 사람도 안 보여서 문으로 보이는 곳을 찾아 돌아다니다 결국 문을 찾아 들어갔다. 표를 사고 들어가는데 안에는 꽤 사람이 있었다. 청소년들도 많이 보였다. 중세그림은 나에게는 와닿지 않았고 사실 보면서 저녁 어디서 먹지? 생각을 했다. 나는 일정이 다음 딱 정해지지 않으면 계속 ‘이제 어디 가지?’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주로 여기랑 여기 중에 어디 갈래?라고 묻고 최종 결정은 일행이 하도록 하는데 이날 되게 괜찮은 밥을 먹고 싶었나 보다. 한국에 와서는 현재에 집중 못하고 다음 일정 생각하는 습관을 조금 고쳤다. 아주 조금.          

창문까지 중세 스타일.

나중에 한국 돌아가는 날 셋이서 미국 여행 리뷰를 했는데 네네에게 여기는 베스트 장소가 되었다. 이 취향의 이유는 잘 모르겠으나 나도 저녁 뭐 먹을지 생각 안 했으면 풍경에 마음을 뺏겨서 가장 좋았다고 할 것 같다. 미술관에 큰 흥미 없다는 막내도 꽤 잘 봤던 곳이다. 중세 사람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그렸을지 보고 싶다면 추천한다. -몸은 아기인데 얼굴은 어른이다...- 건물까지도 그 시대 정취를 가둔 곳이라 현대식 건물에 전시품만 가져다 놓은 곳과 다르긴 다르다.

내가 여기를 가장 오고 싶었던 건 내가 수도원에 딱 맞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도원 로망 간접체험해 보려고 왔다. 외부와 차단된 답답한 생활이 딱 맞는 인 줄 알았는데 막상 가보니 동굴 속에 들어온 것처럼 숨이 답답해서 나는 못 살겠다. 느낌적으로만 나의 운명의 장소라고 생각했는데 웬걸 명백한 착각이었다. 그래도 야외에 정원은 안 답답하고 좋았다. 텃밭도 있다는데 겨울이라 뭐가 뭔지 모르겠다. 따듯할 때 가면 나무도 예쁘겠다.-여긴 가을이 가장 아름답다고 한다.-

여기가 아마 텃밭?

나가는 길까지 완벽하게 수도원스럽다. 나무문을 열고 나와서 이제 어디를 먹을지 결정할 순간이다. 가장 가고 싶었던 곳에서 나와 눈에 보이는 곳으로 들어가는 시간. 일단 내려가서 생각해 보기로 해도 나는 또 구글지도를 보고 있다. 숙소 근처까지 가기엔 다들 배고프니 여기 밑으로 내려가면 동네에 식당이 2개 있어서 둘 중에 가기로 한다. 내려가자마자 건너편 식당이 불 켜져 있길래 들어가기로 한다. -어차피 두 군데 중에 한 군데 갈 거였으면서 왜 계속 어디 갈지를 생각했을까? 여기가 성에 안 찾나?- 여기저기 크리스마스 장식이 툭툭 붙어있다. 조용하게 시끄러운, 소박하게 화려한 장식이다.

가게 안에는 몇 사람이 있었는데 조용해서 TV 소리가 가장 크다. 자리에 앉자 직원은 별말 없이 메뉴판을 건네고 간다. 각자 버거를 콤보로 시키고 TV에서 나오는 경기를 본다. 저게 미식축구라고 막내가 말해줬다. 우리는 춥고 배고프면 말이 없어진다. 말없이 화면만 본다. 여긴 겨울인데 TV에선 여름이다.

먹을 땐 몰랐는데 여행 끝나고 보니까 여기만한 곳이 없었다.

미식축구 좀 보다 보니까 메뉴가 나왔다. 나는 Sweet Potato & Squash에 Sweet Potato Fries를 시켰다. 네네는 채식메뉴를 싫어하는 것 같았는데 나랑 같은 메뉴로 시키더니 입에 안 맞아서 막내가 자기 버거를 나눠줬다. 막내 메뉴는 Smokey Burger였는데 여기서 먹은 버거가 미국 여행 중에 제일 맛있었다고 했다. 어쩌다 보니 맛집으로 들어왔다. 내가 주문한 고구마 버거의 맛은 색은 호박고구마였으나 물고구마 식감에 안 달다. -미국 고구마는 좀 다른가 하고 구글에 ‘미국고구마’를 검색했더니 미국고구마는 안 달다는 이야기가 많더라.-

다 먹고 나왔는데 지금까지 먹었던 것 중에 가장 저렴한 가격으로 먹었다. 가게 분위기가 관광지 같지도 않고 조용해서 편안하게 나와서 이제 집으로 간다. 여기는 지하철 출구와 입구가 달라서 살짝 헤매다 들어갔다. 지하철에서 내려 버스를 타려고 패트릭 성당에서 내렸다. 뉴욕 크리스마스이브 인파가 대단하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실제로 보니까 더 굉장하다.

록펠러 트리 보러 가는 길에 사람이 제일 많았다.

크리스마스에 사람이 많은 걸 보고 내일은 직접 밥을 해 먹기로 하고 H Mart로 간다. 가격이 살벌했지만 우리들의 성탄절을 위해 비비고 찌개와 떡볶이 밀키트를 샀다. 그리고 햇반 3개. 그동안 하루 한 끼는 컵라면 아니면 전투식량으로 먹었는데 내일은 드디어 해 먹는다. 3.8L Poland Spring을 들고 숙소로 가는 길에 우리는 여행자스러웠다.

여행 전에 어디 갈지 찾아보는 게 여행만큼 즐거운 나에게 이번 미국여행은 한국에서 찾아볼 시간이 별로 없어서 매일 숙소에서 어디 갈지 정하고 나가곤 했다. 여행은 미리 찾아볼 때 가장 신나는데 이 재미를 못 누려서 아쉬웠다. 뉴욕 오고 나니 또 심심하게 걸어 다니는 여행을 내 성격에 언제 또 해볼까 싶으니 할만한 경험이다. 계속 뉴욕에 있을 사람들처럼 조급하지 않게 여행하기. 뮤지컬과 써밋은 미리 예약을 안 해서 못 봐도 우린 또 다 같이 올 거니까.

클로이스터스 초입에 있는 표지판. 진짜로 위로 올라가라는 이야기...
건물이 작품이구나..
강아지? 귀엽다
크리스마스 이브 오후 5시. 조용하다.
국물이 그리운 여행5일차

추신

1. 클로이스터스는 막상 도착하면 감흥이 없을 수 있는데 그럴 때는 오른쪽에 허드슨강을 보시길(이 뷰를 유지하려고 강 건너 뉴저지 땅까지 사서 개발을 막았다고...)

2. 여행 끝난 뒤에 돌아보면 클로이스터스가 제일 좋았네? 하실 수도 있습니다.

3. 겨울 뉴욕 뚜벅이 여행이라면 지하철 티켓을 사신다면 언리미티드로 사시길 바랍니다.(7 days 34달러) 저는 충전권으로 사고 30달러 충전했는데요... 결국 또 충전했습니다... 생각보다 걷기가 힘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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