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트럴 파크 바로 앞에 있는 미국 유일 국립 디자인 뮤지엄
뉴욕에는 뮤지엄 마일이 있다. 어퍼이스트에 뮤지엄들이 밀집되어 있는 매년 6월 두 번째 화요일 오후 6-9시에는 뮤지엄 마일 페스티벌이 열리는데 이때는 무료로 미술관을 관람할 수 있다. 이 뮤지엄 마일에는 메트로폴리탄, 구겐하임, 쿠퍼 휴잇 디자인 미술관 등이 있는데 이 중 쿠퍼휴잇은 뮤지엄 마일이 아니라도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매일 저녁 5-6시면 무료 개방을 한다.
처음에 쿠퍼휴잇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가. 누군가 블로그에 여기 정원이 너무 좋았다며 올린 글을 보고 찾아보다 무료 개방도 하길래 시간이 맞으면 가려고 기억해 두었다. 블로그 주인은 모르겠지. 자신이 누군가의 여행에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을. 내가 남긴 건 일별 조회수 밖에 없으니 원.
누군가의 개인적이지만 공유된 일기에 써진 말을 따라 우리도 쿠퍼휴잇 뮤지엄으로 갔다. 막내가 뉴욕 전망대 가보고 싶다고 해서 원월드로 갔다가 근처에서 쉑쉑도 먹고 오는데도 5시까지 시간이 남아서 먼저 구겐하임에 들어갔다. 사과껍질 같은 건축물을 보며 2018년으로 잠깐 돌아갈 뻔했다. 그때는 미국여행 마지막 날 구겐하임으로 갔다. 나선형으로 올라가면서 그림을 보는데 올라가고 있다는 느낌이 안 드는 게 신기했던 기억이 난다. 구겐하임은 그림보다 위에서 로비를 내려다보는 게 더 재밌었다. 나오면서 비가 많이 오길래 구겐하임 우산도 사서 지금까지 잘 쓰고 있다. 그해 가을 네네는 디자인 전공시간에 구겐하임 발표를 해서 교수님의 칭찬을 받았다고. 나에게는 신기한 건축물 튼튼한 우산으로 기억되는 곳이었다.
그때도 사람은 많았겠지만 오늘은 진짜 사람이 많다. 우리는 잠깐 건물을 보다 나와서 한 블록 건너면 바로 있는 쿠퍼휴잇으로 간다.
처음에 구겐하임에서 가까운 쪽 문으로 갔더니 불이 꺼진 정원이 보인다. ‘닫았나?’ 싶을 때 어디서 누가 나오신다. 너무 친절하게 반대쪽으로 가라고 말해주었다. 아직 닫지 않는 시간인 걸 아는데도 닫지 않아 다행이었다. 시간을 체크하고 와도 들어갈 때까지는 안심할 수가 없다.
다시 문을 찾아 간 쿠퍼 휴이츠는 당시 처음으로 마스크를 꼭 써야 하는 곳이었다. 다른 곳은 권고 정도였는데 여기는 마스크를 나눠줬다. 그리고 여기서 일하는 경비원은 꼭 아이돌 경호원 같은 포스가 있다. 다른 데서는 모르면 길도 여쭤보고 그랬는데 왠지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하지만 나올 때 보니 그냥 친절하신 분이었고 내 선입견이었다.- 삼엄해 보이는 1층을 지나 2층으로 올라가려고 했다. 여기는 원래 저택을 사무실로 쓰다가 미술관으로 개조해서 기부했다고 한다. 건물 분위기는 해리포터 보단 귀엽고 웬즈데이 또는 미스 페레그린이 생각나는 곳이다. 해리포터에선 이런 계단이 움직이던데 아쉽게도 계단은 고정되어 있다. 1층은 유물 전시 같았는데 2층에 가니 건물은 그대로인데 현대 디자인 같은 물건들이 많았다. 내가 갔을 때는 1900 Paris World's Fair에 관련된 전시였다. 다이어그램들이 많았고 자기 생각을 써서 붙이는 장소도 있었다.
이번에 미국에서 간 중에 가장 학구적인 관람객이 오는 곳이었다. 실제로 디자인 수업도 한다고 하는데 화장실 가려고 지하로 내려가니 강의실이 있었다. 1, 2층은 오래된 저택의 모양이지만 지하는 또 현대식이다. 교실 안은 볼 수 없다고 했지만 복도에 있는 스펀체어는 실컷 즐길 수 있었다.
디자인 미술관은 처음이었는데 미국에서도 국립 디자인 미술관은 여기밖에 없다고 한다. 이번 전시는 사회적인 이야기들이 많이 있었는데 상업적 요소로서의 디자인을 대하는 생각에서 더 넓은 디자인을 생각하게 되었다.
디자인하면 현대적이고 건물도 신축이고 그럴 것 같다는 게 내가 가진 생각이었는데 오히려 역사 있는 건물에서 디자인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니까 내가 디자인을 너무 한정적으로 알았던 것 같다.
네네는 디자인 뮤지엄이라 꼼꼼하게 봤고 막내도 옆에서 영어 읽으면서 잘 보더라. 나는 건물 내부 구경하고 전시만 보는 게 아니라 직접 자신의 생각도 쓸 수 있어서 좋았다.
이 전시를 보니까 내 많은 생각들은 개인적으로 흐른다. 사회적인 시선으로는 이렇게 볼 수 있구나.
우리는 6시 뮤지엄 닫히는 시간에 같이 나와서 예약한 탑오브 더락으로 갔다. 날짜만 예약하고 갔는데 현장에서 몇 시에 들어갈 건지 다시 예약을 해야 됐다. 도착하니 가장 빠른 입장 시간이 앞으로 40분 후였다. 그래서 우리는 위로 올라가 Rough Trade로 갔다. 레코드샵인데 네네가 지나가는 길에 보고 가보자고 했다. 내가 문구점을 좋아하듯이 네네는 레코드샵을 좋아하는 것 같다. 안에는 꽤 사람이 많았는데 잘 모르는 세계라 구경만 했다. 음악 좋아하는 막내도 뭘 열심히 듣더라. 한편에 인생 네 컷 같은 즉석사진 기계가 있어서 찍었는데 미국 네 컷은 어려웠다. 분명 세 명이 찍었는데 두 명만 나오는... 부스가 너무 작았다. 그래서 재도전을 했으나 역시 반토막만 나온 얼굴.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40분이 지나서 다시 지하로 가서 탑오브 더락 줄을 선다.
4년 전에도 마지막 날 여기 와서 홀푸드에서 산 기념품과 우산을 들고 뉴욕을 봤는데. 이제 내일이면 뉴욕은 떠나지만 앞으로 여행이 많이 남아서 그렇게 아쉽지는 않았다. -미래를 알았다면 아쉬워야 했는데...- 낮에 원월드에서 본 것과는 또 다른 뉴욕의 풍경을 30분만에 보고 나왔다.
이번 여행으로 알게 된 건 비 오는 여름이 겨울 추위보다 낫다는 것이다. 겨울은 추워서 사진이고 뭐고 주머니에만 손 넣고 다니는 여행이다.
그래도 여행이라는 게 시간이 지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게 뭐가 될지 모른다는 스릴이 있으니까. 눈으로 찍은 기억들 중에 뭐가 진한 기억으로 남을 수도 있으니까. 지금까지는 쿠퍼휴잇 계단에 있던 빨간 카펫과 다 보고 나와서 버스 기다린 센트럴 파크 앞 정류장이 유력하다.
거의 10시가 다되어가는 시간 우리의 오늘 저녁은 피자다. 늦게 까지 열어주는 피자가게가 있어서 다행이다. 이 시간에도 피자를 사가는 사람이 많았다. 뉴욕에서 가장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던 피자. 우리는 5조각을 사서 숙소로 간다. 점심은 버거 저녁은 피자. 다음날은 베이글을 먹어서 뉴욕 3종 세트 달성 계획이다.
추신
1. 쿠퍼휴잇 디자인 뮤지엄은 매일 오후 5-6시 무료 개관이다. (6시에 문 닫음)
2. 뉴욕에서 오후에 시간이 남는다면, 마침 어퍼이스트사이드에 있다면 가볼만 하다.
3. 디자인에 대해 알아보고 싶다면 추천한다.
4. 쿠퍼 휴잇 정원과 G층에 있는 스펀체어를 꼭 타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