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치동 공립초등학교 찐 경험기
어느덧 공립초등학교의 학부모가 된 시간도 1년이 흘렀다. 초등교사로 사회에 나온 것은 이미 한참도 더 된 일이지만, 정말이지 학부모가 되어보고 난 느낌은 '진짜 다르다'는 것이다. 정말 이해할 수 없었던 학생들, 학부모들의 행동이 나의 아이와 내 자신에게서 보일 때면 이상하리만큼 묘한 괴리감을 느꼈다.
다른 곳도 아니고 사교육의 일번지 '대치동 한 복판'에서 공립 초등학교를 보내고 난 경험에 대해 주변 친구들은 종종 질문해온다. 힘들지 않았냐는 걱정과 사실 나의 아이 생활보다는 '다른 아이'들은 도대체 어떤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을 받다보면, 역시 사람은 자신이 가지 않은 길에 대해 많은 궁금증과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일반 유치원 졸업
공립 초등학교 입학
먼저 대치동에는 정말 다양한 케이스의 아이들이 존재한다. 학교에 들어오기 전부터 경험한 폭이 어마어마하게 다르기 때문에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내 아이는 일반 유치원을 졸업했고 공립 초등학교를 입학했다. 그런데 이 동네에서는 '일반 유치원' 졸업자가 굉장히 레어템같은 존재인데, 보통은 영어 유치원 2년차를 마치고 오거나 3년차를 보내고 온 친구들이 많았다.
일단 대치동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다면 굳이 남들에게 너무 과도한 관심을 갖거나, 내 아이의 무엇과 비교하는 성향은 적어야 정신 건강에 좋다. 친구들이 레테가 무지막지하게 어렵다는 7세 고시를 통과해야만 갈 수 있다는 영어 학원이나 벌써 성대 경시를 준비한다는 수학 학원에 다니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그것을 부러워하거나 시샘한 적은 없다. 실제로 다양한 방법으로 아이들을 키우고 있어, 오히려 정말로 다들 알아서 잘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 적이 많았다.
한글책을 잘 읽나요?
나를 당황하게 한 몇 가지 질문 중 하나는, 아이가 한글책을 잘 읽냐는 질문이었다. 이런 질문에는 배경지식과 순발력이 필요한데 당연히 영어 유치원을 졸업했을 거라는 가정하에 하는 질문이기 때문에, 재치와 지혜있는 답변이 필요하다. 일반 유치원을 나왔는데 한글을 못 읽고, 한글책을 안 읽는다는 것은 굉장히 몹시도 의아한 일이겠지만 질문자의 의도를 잘 파악해서 유도리있게 답변해야만 했다.
자기가 읽고 싶은 책은 잘 읽어요
제 아이는 일반 유치원을 나와서 한글을 잘 읽고 책도 잘 본다고 말하면 문맥상 이상한 형태가 될테니 두리뭉실하게 좋아하는 책은 잘 읽는다고만 답하고 다른 화제로 돌린 적이 있다. 영어책을 읽는 것이 더 편한 아이들이라 한글책을 처음에는 잘 안 읽으려 하고, 읽어도 글밥이 적은 책만 대충 보는 장면을 내가 1학년을 가르칠 때도 봐왔기 때문에 그다지 이상하진 않았지만 대답하고 나서는 약간 미묘한 기분이 들긴 했다.
그리고 가끔 일반 유치원에서는 어떤 것을 배우고, 또 어떤 장점이 있었는지 질문하는 친구 엄마들도 있었다. 마치 내가 영어 유치원의 커리큘럼이나 아웃풋을 궁금해하듯 서로 가지 않은 길에 대해서도 한번씩 물어보기도 했다. 그런데 그 질문들은 단순한 궁금증일 뿐 우위를 가리거나, 내 아이가 더 잘 배운 것을 자랑하기 위함은 아니었다. 그래서 새로이 알게 되는 것도 있고, 나의 고정관념이 깨진 적도 많이 있었다.
대체로 예의바르고 신중함
교사로서 학부모들을 대할 때도 이 동네에서는 대부분 예의바르고 선생님을 존중하고 있구나라고 느꼈는데(비록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틀어지고 나서의 문제나 일부 이상한 학부모들을 제외하면) 친구 엄마로 만나도 마찬가지였다. 서로에 대해 너무 개인적인 질문을 하지 않고, 맞벌이임을 알더라도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는데 굳이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면 묻지 않았다. 1년이 다 마친 시점에서 아직도 아이 학부모들의 가정에 대해 아는 점은 거의 없다.
다들 자신의 일을 하는데 바쁘다고 느꼈는데, 아이는 아이 나름대로 교육을 시키고 본인 커리어를 열심히 해내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직장을 가진 엄마들도 부족함없이 아이를 키우려 고군분투하는 모습과 그러면서도 터놓는 푸념들이 때로는 공감되고 서로 위로가 되었다. 아빠들의 직업에 대해 소개한 적이 없어 모르지만, 대부분 많이 바쁘고 아이들과 휴가 때 외에는 긴 시간을 보내지는 못하는 분들이 있는 듯 했다. 나름의 가족 규칙과 루틴을 가지고 있는 집이 많다.
선행의 속도는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교실에서는 아이들이 다니는 학원이 미치는 파급 효과가 그리 크지 않다. 물론 누구 누구는 수학을 잘하고, 누구는 엄청 두꺼운 영어책을 읽는다던지 그 정도의 말을 가끔하긴 하지만 서로를 비교하거나 누구를 우위에 두는 말과 행동은 거의 하지 않았다. 학부모 상담에서 아이가 경험이 부족해 문제를 푸는 시간이 다른 친구들에 비해 느린 것 같다고 말을 들은 것 이외에는 별다르게 문제되거나 고쳐야할 점을 듣지는 못했다.
선행은 사실 아이들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엄마의 만족감도 큰 몫을 차지하는 것 같다. 혹여나 아이가 뒤쳐져서 힘들까봐 걱정스럽고 우려되는 마음에 시작하는 선행이 점차 격차를 벌리기 위해 빨라지고는 있지만 그 이면에는 엄마의 마음이 존재할 뿐, 아직은 아이들끼리 나는 어디를 배운다는 자신감이나 뿌듯함을 자랑하는 수준은 아닌 듯 했다. 물론 학년이 올라가면 다니는 학원, 반, 진도 등이 자신을 나타내는 한 요인으로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아이와 학부모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서로의 정보를 캐묻지 않는다.
말조심하기
학부모가 되면서 내 스스로 너무 많이 되내였던 말 중에 하나는 말조심하기였다. 물론 대치동에서 학부모가 되지 않았더라도 매사에 말을 조심해야하는 것은 맞지만 여기서는 더 내 자신을 돌아보며 스스로 많이 필터를 하며 말을 뱉었다. 일단, 서로 너무나 다른 환경과 배경을 가지고 있고 가치관도 극단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항상 조심해야한다. 영어 유치원을 가기 편하다는 유아 학교를 고민하고 있는 학부모에게 해줘야할 조언에 나의 가치관을 너무 이입하지 않아야하고, 한글이 싫다는 아이가 고민된다는 엄마에게도 그래도 잘하는 영어가 있으니까 괜찮고 시간이 지나면 다 해결될거라고 조언해야 했다.
때로는 내 생각을 숨기고, 내 경험을 숨기고, 내 가치관을 숨겨야했지만 대체로 나의 일 년은 무척이나 행복했고 보람되고 즐거웠다. 새로운 환경에 아이가 적응하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면서도, 막상 교실을 제 3자의 눈으로 쳐다보는 것도 무척이나 근사한 경험이었다. 때로는 과도한 학부모의 관심과 반응이 의아했는데 막상 엄마가 되고 보니 뭐 하나 마음에 걸리면 잠이 안 올만큼 걱정이 되거나, 남편과 싸움의 도화선이 되기도 했다.
우리 아이 말만 듣지 않기
늘 학년을 시작하며 학부모에게 해온 말이지만, 막상 학부모가 되어 아이가 어떤 친구에 대해 이야기하면 자꾸만 그것만이 진실인 것처럼 들렸다. 예를 들어 한 아이가 자기에게 안 좋은 말을 자꾸 한다고 하는데 분명 그 전에 무슨 일이 있었을 것이지만 막상 그 상황에서는 '왜 그 아이는 우리 애한테 그러지?'라고 단정짓는 것이다. 그래서 그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고 보면, 우리 아이도 그런 말을 하게 만드는 행동을 한 적도 있었고 다른 친구들에게도 그런 행동을 하는 성격을 가진 아이이기도 했다.
사람은 걱정을 달고 살지만, 내 걱정에 내 아이 걱정까지 더해지니 가끔은 그 긴장감에 심장이 쿵쿵거리고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것만 같았다. 지나고 보면 별일 아닌데, 정말이지 자기가 경험해보지 않은 일들이 갑작스레 찾아오면 그렇게도 마음추스리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대치동도 각양각색의 아이들, 다양한 성격과 개성을 가진 아이들이 많다. 요즘 폐교되거나 학급 수가 줄어드는 곳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전학생이 몰려들고 한 반에 20명을 넘어 30명, 많게는 40명까지 다되어가는 학급의 상황에 비추어볼 때 정말이지 많은 종류의 학생들을 만날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그 중에는 폭력적인 아이도 있고, 싸가지없는 아이도 있고, 개념없는 아이도 있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문제학생들은 여기에서도 당연히 존재한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대부분 부모에게 어떤 측면에서 잡혀 있어서, 어긋나는 최대폭이 그리 크지 않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학부모가 아이에게 관심이 많고, 일거수일투족(심지어 아이의 교과 상황까지 모두 파악)을 알고 있기 때문에 아이가 빠져나가 친구들과 일탈을 즐길 시간도 여유도 그리 많지 않다. 그러니 여기서 문제가 되었다는 사건들을 뽑아 보면, 다른 동네에서는 그리 문제될 행동이 아닌 경우도 있다. 아이들이 저마다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을 찾아서인지, 아빠나 엄마가 무서워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대다수의 아이들은 자기가 해야할 일을 하고 친구들과 즐겁게 보낸다. 자기 그릇에 맞지 않는 교육이나 억압을 받아 자꾸만 눈에 띄게 삐뚤어지는 몇몇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시간을 정말 알차게 쓰고, 빼곡한 스케쥴들을 소화해낸다.
학원 가방을 메고 스스로 학원을 가고, 공부할 것을 찾는 아이들을 보고 누군가 '대견하다'고 칭할 때, 그 말이 조금은 낯설고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아이가 어린 내 눈에 그 학생들은 왠지 짠하고 불쌍해보였었고, 재미 하나 없는 인생을 사는 것 같아 안스러운 마음이 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막상 아이가 크고 보니, 사춘기의 풍파와 친구들과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갈등에도 불구하고 바르게 잘 크는 아이들이 '대견하다'는 말이 맞는 표현같다.
어디든 막상 다 가보면 사람 사는 곳이라는 어른들의 말씀이 맞았다. 지레 겁먹고 '대치동의 학교'를 다니면 우리 아이가 너무 힘들고, 비교당하고, 자신감이 떨어질 것이라는 걱정은 막상 와서 시간을 보내고 나면 그리 많이 생각나지 않는다. 정보도 넘치고 경우의 수도 많은 동네이다 보니, 저렇게 키우기도 하고 이렇게 키우기도 하는구나 정도 스쳐지나는 많은 이야기 중 하나일 뿐이라 콕 찝어 남과 비교할 일도 그리 많지 않다.
그러니 내돈내산은 아니고, 실제 대치동 공립하교의 찐후기 별점을 매겨보자면 나는 별 다섯개를 선사하고 싶다. 언제나 새로운 경험은 가치있는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