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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짝반짝 빛나는 Jul 24. 2023

욕하던 주부가 독서를 하며 생긴 변화

독서가 내게 준 선물들

내 지난한 과거 쓴 첫 번째 브런치북이 있다.

조회수가 많진 않았지만

부족한 글에 꼬박꼬박 라이킷을 눌러주시는 몇몇 작가님 응원 덕분에 완주할 수 있었다.

그때 내 마음은 뒤죽박죽 서랍장 같았다.

이것저것 다 때려 넣은 엉망진창 서랍칸.

그 서랍을 먼지까지 탈탈 털어 쏟아붓고 한 칸씩 정리해 나갔다.

글을 써 본 적 없는 내가 쓰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아서

앞뒤도 맞지 않은 글을 마구 토하듯  쏟아냈더니 살 것 같았다.


그러고 나니

힘들었던 과거를 마주해도 더 이상 괴롭지 않았다.

정말 신비한 경험이었다.

글쓰기 최대 수혜자.

바로 나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2살 4살 아들 둘을 데리고 12시 퇴근하는 남편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이 주된 일과였다.

정신이 돌 것 같이 숨이 막혔고 이게 '육아우울증인가?' 버텨야지 싶다가

'살고 싶지 않다'라는 마음이 바닥을 쳤다.

어떻게든 버티고 이겨내야 하니까,

'나의 젊음을 다 가져가세요. 내 인생을 도려내도 좋으니, 제발 눈 뜨면 50이 되게 해 주세요.'라며

시간이 흐르길 얼마나 간절히 바랐는지 모른다.

남들 다하는 육아가 나에겐 왜 이리 힘든지, 나만 못해내는지...

한숨과 분노와 좌절이,  

난 엄마니까 이겨내야 한다는 그 거룩하고도 부담스러운 짐이 내겐 좀처럼 달갑진 않았다.


그 시절 육아 우울을 덜어줬던 몇 가지 숨구멍이 있었다.

매일 잔 커피 사 먹기

아이들에게 유튜브를 틀어주고 집 근처 커피숍에 재빠르게 다녀왔다. 유일한 외출 시간이었다.

달콤한 바닐라라테를 마시는 시간만큼은 마음이 너그러워졌다.

아이들 유튜브 시청

끊임없는 요구사항이 많은 아이들을 유일하게 앉혀 둘 수 있는 시간,

지치거나 피곤할 때는 어김없이 아이들 손에 폰을 쥐어주고  또한 폰을 쥐고 널브러져 있었다.

드라마

월화, 수목, 주말드라마, 하루하루 내가 견딜 원동력을 부여했다.

하루를 시작하면서 얼른 육퇴하고 오늘밤 드라마를 볼 생각으로 힘을 냈다.

TV에 사람들이 게임하고 웃고 떠들고 먹는 예능프로는 절대 보지 않았다.(상대적 박탈감)

최저가 쇼핑중독

소셜 핫딜과 특가 세일을 찾아다니며 물건을 샀다. 쇼핑은 하고 싶은데 형편에 사치품은 가당치 않으니 생필품을 샀다. 그것도 아주 많이, 앞뒤 베란다에 꽉꽉 쟁여놓을 만큼.

그리고...

아이들이 말 안 듣고 떼쓰고 싸우면 상상으로 머리를 쥐어박았다.

상상으로나마 아이들의 머리를 힘껏 쥐어박고 나면 스트레스가 조금 해소되었다.

그리고,  욕이다.

살면서 욕을 한 번도 해 본 적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욕을 자주 하며 살지는 않았다.

잊고 살았던 그 찰진 욕들이 마구 생각이 났다. 

욕을 뱉어냄으로 답답한 마음의 응어리가 조금은 해소되었다. 

1. 세탁기 종료음이 울리면 빨랫감을 들고 베란다에 나가 문을 닫는다.

(시스템 창이라 방음이 좋았다)

2. 빨랫감 주름을 펼칠 때마다 탁탁 소리에 맞춰 "신~~ 발" 하고 짧고 굵게 외친다.


이렇게 내 육아 스트레스는 몇 가지 탈출구를 찾아 그럭저럭 잘 버텨내고 있었다.



그렇게 대충 버텨내며 살고 있던 어느 날,

집은 엉망이 아이들은 싸우고 떼쓰는 일상이 연속인 나날들.

남편은 잘 때 출근하고 잠들면 퇴근해서 주말 아침에나 볼 수 있었다.

그날은 특히 더 최악인 날로 기억한다.

어질러진 거실 바닥을 치우고 있다가 '신~발'하고 작지만 정확한 발음으로 욕이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화들짝 놀라 아이들을 둘러보았다.

아이들은 놀고 있었는데 내 말을 들었는지 알 수는 없었다.

'TV 소리가 커서 안 들렸을 거야' 하고 위안을 삼아보았지만,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했고 더 이상 베란다에 나가서 욕을 하지 않았다.

상상만으로도 입 밖으로 나온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로는.


겨우 적응하며 살즈음 또 이사를 왔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곳으로.

예전에 살던 집을 산 가격과 비슷한 가격에 팔고 난 직후에 집값이 폭등해 마음의 병은 더 단단해졌다.

계속되는 무기력과 상실감으로 어찌 하루를 살아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남편 직장 근처로 오긴 했지만, 퇴근은 조금 빨라진 10시 전 후.

아이들이 잠들면 퇴근하는 남편이 보기 싫어 현관문 비번 치는 소리가 들리면 일부러 자는 척할 때도 있었다.





책을 만나다.

그림책을 빌리러 우연히 도서관엘 가게 되었다.

어린이 열람실은 1층, 반열람실은 2층.

2층의 계단을 오르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던 것으로 기억한다.

처음이 어렵다.

그렇다.

두 번은 쉽다.

그때부터 내겐 독서라는 신세계가 펼쳐졌다.


처음 읽은 책은 육아서였는데 과거의 내 엄마 노릇에 대한 죄책감으로 제대로 읽지 못했다.

경제적인 부분에 무지했던 과오를 다시는 범하고 싶지 않아서 경제에 관한 책 아파트, 토지, 경매, 주식... 다양하게 읽으며 내가 취할 수 있는 것들을 선별해 나갔다.

흔들리고 주저앉은 마음을 다 잡는 책들도 읽었다. 김미경의 자존감 수업 외 김미경 강사의 많은 책들,

이지성의 꿈꾸는 다락방 외 이지성 작가의 많은 책들은 내게 꿈을 갖게 해 준 첫 단추들이다.


'나는 더 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

 난 다시 살아날 수 있을 거야.'

계속 되뇌며 꾸준히 조금씩 책을 읽으며 약 100권의 책을 읽을 즈음 삶이 아주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글을 쓰기 시작한때도 이쯤이었던 것 같다.

내 마음을 보살피고 꿈이 생기니 아이들을 돌보는 게 전보다 조금 덜 힘들었다.


앞으로 놓친 것은 어쩔 수 없으니 이제 더 이상 죄책감을 갖진 않는다.

지금은

내가 할 수 있고

하고 싶고

해야 하는 양육의 태도를

하나하나 선별해서 중심을 잡아가고 있다.


내 삶에 감사한 부분들을 찾아보니 지난했던 하루가 이제는 기대가 된다.

나는 삶의 많은 부분을 책으로 바꿨다.

하얀 백지에 검은색 잉크를 물들이듯 내 하루를 조금씩  바꿔가며 습관과 루틴을  잡았고 지금도 현재 진행 형이다.





물론 아이들이 자라서 괜찮아졌을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수월해진 면이 없진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마음이다.

내 긍정적 생각과 부정적 생각은 가족과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부정적 생각으로 사로 잡혀온 시간이 오래이긴 했지만 그것을 긍정으로 바꾸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그냥, 마음을 먹어보는 거다.

집 밖을 나가고 산책을 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

나를 바꾼 것은 이것이 전부였다.

아,

그리고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는 그런 뻔한 이야기를 믿어보는 것.



난, 우연히 만난 책과 글쓰기로 과거와는 다른 삶을 살고 있다.

(비록 다른 사람이 보면 아주 평범한 주부이겠지만!)

앞서 말했던 습관들 중 커피 마시는 것 말고는 계속 유지하는 습관은 없다.

물론 친구를 만나거나 모임이 있을 땐 간혹 커피숍에서 바닐라라테를 마시기도 하지만 혼자 마시는 커피는 집에서 캡슐로 라테를 마신다.(그 시절 매일 마셨던 바닐라 라테로 몸무게가 7킬로 이상 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하루 1시간~1시간 30분 정도 정해진 시간에만 유튜브나 게임을 한다.

그리고 드라마는 내게 여유가 생겼을 때, 보고 싶을 때에 넷플릭스로 단편이나 짧은 시리즈를 본다.

또한 이제는 사람들이 나와 웃고 떠드는 예능도 웃으며 볼 수 있다.

쇼핑은 한 개의 앱만 남겨두고 한 달에 한번 필요한 것들을 몰아서 산다.

이제는 마음속으로도 아이들 머리를 쥐어박거나 욕을 하지 않는다.(한 번씩 욱, 올라올 때는 예외)

 

이 모든 것들은 내가 참아내며 안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저절로 멀어진 습관들이다.

이젠 커피랑도 조만간 헤어져야 할 때가 온 것 같아서 조금 슬프긴 하지만 나는 조금씩 내가 꿈꾸는 삶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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