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글을 쓴 후부터 단 한순간도 우울하지 않았나요?
ㅡ그렇진 않아요.
늘 똑같이 빙글빙글 제자리에서 돌고 있어요.
내가 바뀐 것뿐이니 현실이 드라마틱하게 바뀌지는 않죠.
내 마음먹기가 달라지고 내 행동이 바뀌었죠.
똑같은 하루지만 그 하루를 대하는 내 태도가 바뀐 거죠.
여느 주부가 그렇듯 저의 하루도 분주합니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장도 보고 집안일도 하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하교를 해요.
아직은 2호가 1학년이라 데리러 가야 할 때도 있고 간식도 챙겨주고 놀아 줘야 하고
저도 다시 일을 시작하게 되었거든요.
아이들 챙기고 일하고 책 읽고 글 쓰고 돌아서면 곧 저녁 준비할 시간이 되고 육퇴가 아주 간절합니다.
그럼 언제 책을 읽고 글을 쓴다는 거죠?
정말 시간이 많으신 건지,
주부의 일을 손 놓으신 것은 아니지요?
ㅡ책은 틈틈이 본다고 해도 글은 틈틈이 쓰는 게 안되더라고요.
그리고 전 올빼미 스타일입니다.
밤새 쓴 글을 다음날 읽다 보면, 졸리던 눈이 확 깨서 튀어나올 것 같아요.
새벽 감성으로 쓴 글이 참 민망해서요.
그렇게 저 세상으로 날린 글이 한두 개가 아니랍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런 글이라도 어서 아이들 재워놓고 쓰고 싶은데,
애들 잠깐 재우고 깬다는 게 그만 까무룩 잠들어 밝아오는 아침을 맞이할 때엔 얼마나 속상하고 화나고 허무한지 몰라요.
하지만 신기한 경험을 하기도 해요.
글만 생각하며 잠이 들었더니 글을 쓰고 있어요.
꿈에서 말이죠. 문장과 문단이 선명하게 찍혀 단어 하나까지 다 보이는데, 저것만 베껴 옮겨 놓으면 대박칠 것 같단 말이에요. 마치 로또 번호 베껴 쓰듯이요.
꿈속에서는 열두 번도 더 깨서 노트에 옮겨 적었더랬죠.
그러곤 아침에 잠이 깼는데 이럴 수가! 단 한 단어도,
아니 한 음절조차도 기억나지 않는 거예요.
이런 맙소사!
가족행사 아이들 케어 그 밖에 다양한 변수로 내 일과는 늘 뒷전이에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지금의 내 생활은 나 아닌 누군가에게는 한갓 여유로운 취미 생활로 보일 뿐이거든요.
'얼마나 시간이 많고 여유로웠음 저렇게 책을 읽고 글을 쓸 생각을 할까?
저 아줌마는 집안일은 제대로 하고 있을까?'
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있을 거예요. 실제로도 제 주위에 이렇게 제게 물어보더라고요.
제가 외출을 잘하지 않는데,
하루나 이틀에 한 번씩 도서관엘 지나가는 패턴이 있어요.
늘 그 자리를 지나면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곤 하죠.
매일 같은 시간 많은 책을 에코백과 양 날개에 끼고서 씩씩하게 걸어가는 저와 마주치면 눈인사를 하는 그분들은 저를 어떻게 생각을 할지 문득 궁금하긴 하더라고요.
간혹 가까운 지인들조차도 제가 뭘 하겠다고 결심하면 응원의 눈빛보다는 '지금 뭔가를 시작하기엔 너무 늦진 않겠니?' 혹은 '아이들이 아직 어린데, 아이들 키우는 게 돈 버는 거야!'라는 눈빛으로 바라보기도 해요.
'책을 읽고 글을 쓴다는 것' 끝까지 갈 자신 있으신가요?
-늘 오르락내리락하는 마음을 부여잡습니다.
그냥 편하게 지금을 만족하며 살았으면 하는데 나는 왜? '지금의 나를 만족하지 못하는가?'가 늘 의문입니다.
어느 누구 나보고 결심하라고 한 사람도 없는데 정신 차리라고 한 사람도 없는데,
과정도 결과도 보이지 않는 이런 삶을 아등바등 살고 있는 내 모습이 헛수고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왜 안 들겠어요.
아이들 잘 키우고 (사실, 시간이 많다고 해도 아이들을 잘 키우진 못해요. 저와 육아는 안 맞는지 제가 다른 일에 빠져 아이들과 나름 거리 두기 하며 각자의 시간을 보내는 지금이 아이들과 사이가 제일 좋거든요.)
집안일 잘하고(사실 집안일을 참, 못하긴 합니다)
지인들 만나 수다 떨고 저녁 되면 육퇴하고 드라마 보고 핫딜 찾고 쇼핑하고...
(이건 제일 잘했습니다.) 그런 생활도 꿈꿔보긴 했었는데요.
이미 많이 해봤지만, 제게 꼭 맞는 옷은 아니더라고요.(아하하^^)
슬럼프가 올 땐 어떻게 하시나요?
ㅡ늘, 제 마음과 싸웁니다.
저도 한없이 나태해지고 유튜브 보고 싶고 TV도 보고 싶고 쇼핑도 하고 싶고 놀고 싶을 때가 많... 아요... 하하
그래서 늘 결심해요.
마음을 굳게 먹고 아침을 열어요.
엄마로, 아내로, 주부로 살아내야 할 하루는 온전한 내 것이 못되기에 여러 가지 변수가 생겨요.
그래도 꾸역꾸역 내 꿈의 한 조각을 마주하고 잠이 듭니다.
아침이 되면 또 결심하는 거죠.
저는 그래서 작심삼일이 아니라 늘, '작심일일'을 해요.
'오늘도 너의 꿈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어.
넌 이미 잘하고 있어 오늘도 힘내'
이렇게 나를 마주하며 토닥여 줍니다.
그래도 또 여차저차 허무한 하루가 가기도 해요.
아이들이 아프거나 집에 일이 생기 거나 손님이 오거나...
그런 날 있잖아요. 하루를 내가 보낸 게 아니라, 어영부영 하루가 날 삼킨 날요.
그럴 땐 아무도 날 찾지 않는 어느 시골 좋은 마을에 혼자서 딱 한 달만 책 읽고 글 쓰고 지내다 오고 싶다.
훌쩍 속세를 떠나 한 달만 어디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아, 이런 책 읽고 글쓰기의 기쁨을 결혼 전, 혹은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에 실컷 즐겼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요.
그럼 난 멋진 소설가가 되어있을까?
독서 전문가가 되어있을까?
멋진 커리어우먼이 되어서 강단에 서 있는 모습을 상상하기도 해요.
하지만 알아요.
지금의 나라서,
내가 이 일을 원한다는 것을 말이죠.
그때의 나는 또 다른 유희로, 또 다른 치열함으로 살아가고 있었을 테니까요.
꿈꾸고 소망하는 모든 것들이 그저 한여름 밤에 꿈에 지난다 해도,
누구든 꿈은 꿀 수 있는 거잖아요.
그 꿈을 위해 노력은 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 꿈들이 내가 지금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와 핑계를 만들어 주는 것 같아요.
그래서 늘 꿈꿔요.
내 생각이 마음을 지배하고 내 상상이 현실이 되는 그날을 생각하며 말이죠.
그 꿈의 길을 한 발짝 한 발짝 걷다 보면 그래도 어디쯤은 가고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