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우치서핑(여행자 숙박&문화 공유 어플)으로 만난 C는 내 유일한, 위험했던 히치하이킹 에피소드를 듣고 이렇게 충고했다. C는 내가 들고 다니는 과도를 보곤 피식 웃었다. 그건 다루기 어려운 데다가, 뺏기기도 좋은 무기라고. 그러면서 추천한 호신무기가 라이터랑 휴지뭉치였다. 이것들이 내 대표 호신 무기가 된 이후 더 많은 걱정과 비웃음을 들어야 했다. 여성 홀로 히치하이킹을 하는 것을 걱정하는 사람들로부터 말이다.
나는 사실 남의 상처도 잘 못 보는 사람이다. 영화에서 나오는 잔인한 장면들도 특수분장사를 칭송하며 너무 몰입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래서 그 위험했던 순간에도 누군가를 아프게 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그냥 ‘공격하겠다’가 아닌 ‘공격해야만 한다’며 몇 번이나 다짐했었다. 나는 내가 공격하고도 패닉에 빠져 칼을 뺏길 위인이다. 그전에 제지당할 것 같기도 하다.
그에 반해 휴지와 라이터는 누군가를 공격하지 않으면서, 아주 빠르게 상대방을 패닉에 빠지게 할 수 있다. 상대방을 완전히 전투 불능 상태로 만든다. 다만 이 방법은 운전자를 말 그대로 ‘빡’ 돌게 하기 때문에 미친 듯이 도망쳐야 한다. 가방도 포기해야 한다. 따라서 이 방법은 최후의 상황, 즉 운전자가 나를 이상한 곳으로 데려가려고 하는 경우, 내려달라고 했는데 멈추지 않을 경우 사용할 수 있다. 그건 바로 ‘휴지뭉치에 불을 붙여 뒷좌석에 던져버리는 것’이다.
다행히 2달 정도의 여행 동안 그 휴지뭉치는 급하게 콧물을 닦을 때만 사용했다. 여성 홀로 히치하이킹을 하는 것은 매우 안전한 방식의 여행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매 순간 조심스럽지만, 그렇기에 매일 좋은 사람들을 만난다. “못된 사람이 널 데려갈까 봐 걱정돼서 태워주고 싶었어.” 나의 안전을 걱정하고 나의 행복을 빌어주었던 사람들의 하루들이 이어져 3000km가 넘는 여정을 할 수 있었다.
일상으로 돌아와 복학을 하고, 일을 했고, 존경하는 상사가 생겼고, 그 상사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오늘 처음 만난 운전자와 매일 만나는 상사, 그 둘 중 누가 정말로 위험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도 히치하이킹을 꿈꾼다. 세상에는 좋은 이방인들이 많다고 믿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