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숙소를 짊어지고 다녔다. 7kg의 가방의 무게 중 1kg을 차지했던 내 텐트는 매일 쓰이진 않았지만 매일 심신의 안정을 가져다주었다. 히치하이킹을 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변수가 많이 일어난다. 잘못된 방향의 차를 탄다거나, 운전자와의 소통 불통으로 엉뚱한 곳에 내린다던가, 갑작스레 도착한 이 도시에 머물고 싶어 진다거나 등의 이유로 생각지 못한 순간에 생각지 못한 곳에 다다를 때가 있다. 그곳이 깡 시골일 경우 카우치서핑은커녕 호텔도 찾을 수 없다.
나는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곳이면 어디서든 잘 수 있다. 그곳이 누군가의 거실 소파이든, 공항 의자이든, 공원 잔디밭이든, 화장실이든 간에 깊은 수면이 가능하다. 어쩌면 누군가는 이 모든 공간이 안전하지 않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여행의 포인트는 괜찮을 거라는 믿음이다. 어제 만난 사람처럼, 오늘 만난 이 사람도 분명 좋은 사람일 것이라는 믿음이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숙박의 형태는 카우치서핑이었다. 거실소파couch에서 서핑surfing을 한다는 것은 현지인은 자신의 거실 소파와 현지 문화를 내어주고 여행자는 자신의 이야기와 이색 문화를 내어주는 것이다. 상대방의 프로필과 다른 사람들이 남긴 레퍼런스(후기)를 보고 나와 맞는 사람일까 고민하고, 서로에게 메시지를 보내 일정을 조율한다. 여기서 내게 특이점이 있었다면, 나는 그 일정을 아주 급하게 정했다는 것이다. 그날 어디에 도착할지, 어디로 가고 싶어 질지 모르기 때문에 사전에 호스트를 구하지 않았다. 데이터가 없었기 때문에 대부분 도착해서 무료 와이파이가 있는 공원이나 관광명소 옆에 앉아 메시지를 보냈다. 길을 걸어가다가 잡은 와이파이로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기대하지 않았던 아름다운 도시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경우 마음처럼 되지가 않았다.
그래서 다음으로 많이 애용했던 장소는 공항이었다. 공항은 오가는 사람이 많고, 언제나 불이 켜져 있고, 보안요원도 있어서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좀도둑, 소매치기 등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 사람들이 나를 노리기에는 난 가진 것이 ‘정말’ 없었다. 가장 귀중한 것이 여권이었는데 유럽 내에서 차로 이동해서 신분 검사를 하지 않았으므로 런닝셔츠 아래 매어둔 복대를 꺼낼 일이 없었다. 가방마저도 배낭여행자들이 들고 다니는 멋있는 여행용 배낭이 아니라 고등학교 입학 선물로 받았던 커다란 책가방이었다. 안전 말고 공항의 또 다른 장점은 큰 도시로 향하는 차들이 많아 히치하이킹을 하기 용이하다는 것이다. 택시가 자꾸 멈추고 사람들이 신기하다는 눈으로 쳐다보기야 하겠지만, 여행을 끝마치고 오는 사람, 소중한 사람을 멀리에 데려다주는 사람들은 대개 열려있고 다정하다. 이방자를 위해 흔쾌히 차를 멈춰준 사람들 대다수가 그러하긴 하지만 말이다.
파리, 프랑크푸르트와 같은 대도시는 보통 공항이 있다. 중소도시는 공항은 없고 인구 밀집도는 높아 텐트를 칠만한 곳이 마땅치 않다. 그때 내가 신세를 졌던 곳은 24시 맥도날드이다. 구석 소파 자리에 앉아 커다란 프렌치프라이 따위를 시켜놓고, 엉덩이는 최대한 빼고 상체를 기댄 자세로 꾸벅꾸벅 졸았다. 사람들은 새벽 세시, 네시에도 와서 빅맥 세트 등을 시켜먹었다. 야식을 좋아하는 건 만국 공통이라는 걸 느끼며 나도 밤새 그들과 함께 감자튀김을 먹었다.
화장실은 나도 예상하지 못했다. 대만 친구인 H와 함께 여행을 할 때였다. H는 독일의 도르트문트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야 했다. 히치하이킹이 생각보다 너무 잘되어서 하루 일찍 도착했다. 공항 복도의 쾌적한 공간에 슬리핑 매트와 침낭을 펴고 우리만의 공간을 만들고 있었다. “오늘은 어디에 텐트를 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기뻐하고 있을 때 공항 보안관이 다가왔다. “여기는 24시 공항이 아닙니다. 저녁에는 닫습니다.” 망연자실하게 텐트 칠 곳을 찾아다녔다. 꽤나 괜찮은 곳을 찾았다. 그런데 느낌이 좋지 않았다. 매우 좋지 않았다. 우리 둘 다 그런 느낌이 들었다. 여행에서의 육감은 정말 정말 중요하다. 육감을 무시하면 그것이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꼭 뭔 일이 생긴다. 그래서 공항으로 돌아왔다. 외진 곳에 있는, 늦은 시간의 공항은 아무도 없었지만 밝았다. 우리는 이제 막 이곳에 도착한 사람처럼, 그냥 화장실이 쓰고 싶은 사람처럼 조용히 걸었다. 그리고 화장실 문을 걸어 잠갔다. 그곳에서 우리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추억들을 이야기하고, 서로에게 편지를 쓰고, 잠이 오지 않는 아까운 마지막 밤을 두고 한국영화를 봤다.
그런 곳에서 잠을 자도, 사서 고생이라는 생각이 들어도 즐거웠다. 내일은 어떻게 될지 전혀 예측할 수 없으므로 걱정할 수 없었다. 그저 마주했던 좋은 인연들과 순간들을 곱씹으며 감사하고 행복해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 매 순간 푸른 하늘 위의 새하얀 구름, 운전자들이 보내주는 미소, 던져둔 가방을 잽싸게 메고 차로 달려갈 때의 설렘, 운전자가 건네준 달콤한 사탕, 운전자의 진심이 담긴 삶의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었다. 매 순간을 그렇게 사는 것이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아쉽게도 이제 카우치서핑은 정액제로 전환되었다. 결제하지 않고는 전혀 이용할 수 없는 시스템이 되어버렸다. 사실 카우치서핑은 개인정보와 관련한 문제로 그 전에도 말이 많았다. 다행히 Couch카우치를 Surfing서핑할 수 있는 다른 플랫폼들이 있다. ‘BeWelcome비웰컴’과 ‘Trustroots트러스트루츠’ 등을 추천한다. 이들은 후발주자이기 때문에 이용자가 비교적 많지 않아 호스트를 구하기 조금 어렵다. 그래서 여행을 좋아하고 사람을 만나기 좋아하는 나와 당신이 그들 중 한 명이 되기를, 여행자를 맞이하고 또 새로운 이방인을 만나러 갈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