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오전 9시 17분. "이 약 평생 먹어야 한다고요?"
팔짱 낀 보호자. 그의 시선이 나를 해부한다.
나는 설명한다. 하라고 하니까.
"부작용은 없나요?" "완치는 안 되나요?" "다른 병원에서는..."
나는 대답한다. 그들이 원하니까.
오전 11시. 삭감 통보서. "부당청구 의심 건."
나는 소명한다. 심사평가원이 하라 하니까.
오후 2시. "친절도 평가 4.1점."
나는 더 웃는다. 숫자가 하라 하니까.
오후 4시. "왜 이렇게 대기시간이 긴가요?" "왜 진료시간은 짧나요?"
나는 사과한다. 고개를 숙이라 하니까.
오후 5시. 동료가 말한다. "그만해도 돼. 너무 애쓰지 마."
하지만 나는 더 열심히 한다. 매뉴얼을 외우고, 미소를 연습하고, 더 완벽한 설명을 준비한다.
말려도 한다. 그만해도 된다 해도 한다.
더 지극히, 더 열심히. 제도가 원하는 것보다 더.
우리는 스스로 선택한다고 믿는다.
웃음의 각도를, 설명의 깊이를, 고개 숙임의 정도를.
하지만 그 모든 선택지는 이미 정해져 있다.
환자가, 보험이, 평가가, 사회가 정한 틀 안에서.
우리는 지극히도 능동적으로 수동적이다.
아니, 더 정확히는 제도보다 더 제도적이 되려 한다.
요구받기 전에 먼저 굽히고, 비판받기 전에 먼저 사과하고, 명령받기 전에 먼저 순응한다.
우등생의 습성이 몸에 배어 만점보다 더 높은 점수를 받으려 한다.
저녁 6시. 마지막 환자.
"선생님도 힘드시죠?"
순간, 모든 시선이 역전된다. 보는 자가 보이는 자가 된다.
그 한마디에 목이 멘다.
수천 개의 시선이 만든 가면에 금이 간다.
시선의 무게
우리를 보는 눈들:
평가하는 눈
의심하는 눈
요구하는 눈
재단하는 눈
그 시선들이 쌓여 우리는 조각된다. 친절한 자판기로. 미소 짓는 설명 기계로. 사과하는 인형으로.
하지만 가끔, 아주 가끔. 누군가는 우리를 본다. 의사가 아닌, 인간을.
"의사는 대개 한다. 그렇게 타고났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