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온 봉은사. 추울 줄 알았지만 그리 많이 춥지 않았다. 따뜻한 거 같기도 하고 그렇다. 매년 내 생일 가까이, 때마다 오게 되는 공간이다. 괜스레 댕~ 댕~ 하고 울리는 잉어 종소리는 마음을 편하게 한다. 3년 전 살려달라고 말할 곳이 없어 찾았던 봉은사.
글에 대한 열망이 언제부터였을까?
나의 이야기를 남기고 싶은 마음은. 글쓰기의 욕구가 항상 마음 한편에 자리하고 있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나는 그때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20년 전 내가 초등학생 때 기억을 끄집어 내보려고 한다. 아마 그때도 미술학원을 다니고 나는 커서 화가가 될 거야라고 말하고 다녔고, 미술에서는 내가 일등이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림 그리기상은 항상 내가 받았으니깐. 받았어야 했다.
글 뒤이어지어 쓰기, 그림 그리기 이렇게 두 가지를 택했다.
당연히 그림 그리기는 학원에서 연습 한대로 고대로 그렸기에 금상을 받았다.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했다 어린 나이에도. 어랏? 생각지도 못한 글짓기에서 은상을 받게 됐다. 얼마나 놀랐는지. 지금도 그날을 생각하면 충격을 지나 배신감까지 느꼈다. 글짓기는 내가 연습한 게 없는데 은상이라고? 헐... 거짓말
무슨 글이었는지는 가물 가물한데, 단추로 상대방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이야기다. A4 용지보다 큰 B4종이였는데 2장을 거뜬히 넘겨 애들은 다 끝내고 쉴 때까지, 나는 그 글을 이어나갔던 기억이 있다. 재미있었다. 마음을 다해 무엇인가를 이룬 거보다, 생각지도 못한 무엇인가가 나에게 다가오는 게 더 귀중하고 오랫동안 머릿속 그 이상 마음속까지 자리 잡고 있음을 느낀다.
어릴 때부터 나의 아버지는 쉬는 날엔 조용한 절에 우리를 다 데리고 드라이브를 가셨다. 절 하는 방법, 인사하는 방법, 공양하는 방법을 배웠다. 20년이 지난 지금 부처님이 들을 수 있게 큰소리로 외치고 싶지만, 조용히 부처님께 인사하고, 가방 속에서 최근 구매한 만년필과 작은 노트를 꺼낸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적어 본다. 언젠가 시간이 지난 내가 볼 수 있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며 지금은 오로지 만년필 촉과 닿는 종이만을 느낄 수 있게.
누가 돌아가셨나 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하얀색 머리에 곱디고운 분홍색 한복을 입으신 인자한 미소를 지니신 할머니 영정사진이 놓아져 있었다. 제사를 지내고 있는 듯했다. 법당 공간의 절반은 일반인, 공간의 절반은 인자한 할머니의 가족분 들이시겠지.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기도 하는 것도 다 다를 거다. 죽음과 살아있는 사람들의 기도가, 공존하고 있다. 나는 이야기했을 것이다. '할머니 저는 잘 견뎌 보겠습니다 부디 하늘나라에서 지켜봐 주세요. 그리고 조심히 가세요.'라고.
왠지 오늘 스님의 목소리가 보통의 날 보다.
깊고 더 낮은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