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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 Sep 01. 2021

우리의 만남은 알코올을 타고

내 인생을 망치러 온 구원자, 출몰하다

2017년 여름이었다. 그 당시 내가 다니던 직장은 회식을 자주 하는 편이었고, 2차는 꼭 골뱅이 소면을 먹으러 상사 단골 호프집을 가곤 했다. 이미 나는 1차에서 옻닭에 소주를 연거푸 마신지라 기분이 최고조에 이른 상태였다.


 “웬 고양이예요?”

 “글쎄, 일주일 전부터 알짱대다가 밥 몇 번 주니 아예 여기서 살더라구. 이름은 복고여.”


호프집 문 앞에는 웬 고양이가 배를 발랑 까뒤집고 사람들을 반기고 있었다. 하얀 크림이 눈 밑까지 묻은 까만 고양이. 고양이는 도도하다더니. 그날 처음 만났던 아이는 오고 가는 사람들 손에 뺨을 비비며 간식을 얻어먹고 있었다. 사장님께서는 관심을 보이는 내게 아이를 안겨 주셨다. 얌전했다. 이상하다. 고양이는 스킨십을 싫어한다고 했는데. 가뜩이나 알코올에 푸욱 절여져 단세포 생물과도 같았던 나의 머릿속을 온통 물음표가 지배했다. 물음표에 지배 당해 그 애를 안고 집으로 온 걸까.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내내 얌전하고 고요히 내게 안겨있던 아이의 감촉만 떠오를 뿐 잡다한 내 생각들은 기억나지 않는다. 이미 지나가 버린 것들을 회상하기에는 시간이 꽤 흘렀다. 그 늦은 밤, 고양이를 두 마리 반려하는 회사 동료를 통해 급한 대로 사료 여분을 얻고 상자에 신문지를 잘게 찢어 밤을 버텼다. 내 생일을 이틀 앞둔 8월의 어느 날이었다. 나 살기도 바빠 버둥거리던 내게 얼떨결에 책임의 대상이 생겨 버렸다.  


자고 일어나 보니 종이 상자 안은 설사로 가득했다. 사람들이 편의점에서 산 값싼 고양이 간식을 받아먹기 바빴으니 속이 성하지 않았을 거다. 그 당시 무엇 하나 가릴 처지가 아니었으니. 아이는 내 옆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 그렇게 이틀 내리 잠만 잤다. 그 애는. 어디서 태어나고 자랐을까. 고양이와 깊은 대화를 하지 않는 이상 절대 알 수 없는 정보이므로 예상해보자면, 호프집은 대학생들이 많이 거주하는 원룸촌에 위치해 있었다. 아마 누가 데리고 살다가 버리고 이사를 갔을 것이다. 이후에 혹시 몰라 인터넷을 샅샅이 뒤져 가며 고양이 찾는 글을 찾아봤지만 어디에도 아이를 찾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때 살고 있던 자취방 바로 앞 동물병원에 데려갔더니 약 8개월령의 여자 아이라고 했다. 설사약도 받아 왔다. 그 뒤에는 하나, 둘 아이의 물건을 사 들였다. 화장실, 모래, 작은 캣타워, 식기, 장난감, 사료, 간식 등. 욕심껏 고르고 골랐더니 형편에 비해 금액이 꽤 크게 나왔다. 상관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술김에 저지른 무모한 짓임에도 나는 전혀 후회하지 않았다. 차례로 도착하는 아이의 물건을 작은 방 안에 배치하며 몇 번이고 아이에게 말을 걸곤 했다. 여기가 좋을까? 이건 어때? 아이는 대답이 없었다. 차라리 대답을 해줬으면 그런 실수는 저지르지 않았을 텐데. 이날 이후로 나는 반려동물을 입양하고 싶다는 사람들에게 충분한 준비를 강조한다. 생명을 거두는 일은 무조건 신중해야 한다.

주야장천 잠만 자던 꼬맹이


내가 저지른 실수는 벤토 나이트 모래를 사지 않은 거였다. 그땐 오로지 인간인 내 입장에서 생각했다. 두부 모래가 먼지도 덜 나고 변기에 버려도 무방하다기에 화장실도 그에 맞춰 구매를 했는데. 아이는 그날부터 이불에 오줌을 싸기 시작했다. 그나마 양심인지 배려인지 똥은 두부 모래에 싸주더라. 처음에는 원인을 찾을 생각도 하지 않고 아이를 혼냈다. 가르치기 위해 언성을 높인 적도 있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어이가 없다. 애가 무슨 말을 할 줄 안다고 작은 다리를 붙들고 눈싸움을 했는지. 근 이주 동안 하루에 한 번씩 이불 빨래를 했다. 화장실 모래를 벤토로 바꾸면서 더 이상 이불을 매일 빠는 일은 마법처럼 사라졌지만 말이다. 그 사이에도 아이는 하루가 멀다 하고 병원을 왔다 갔다 해야 했다. 어떤 날은 설사, 어떤 날은 피부병, 그리고 얼마 안 있다 중성화 수술까지. 온갖 세균이 득실거리던 길바닥의 흔적들을 떨쳐내기 위해 아이는 열병을 앓았던 걸지도 모른다. 따지고 보면 아이는 내 생애 최고의 생일 선물이었다. 그야말로 내 인생을 망치러 온 구원자. 선물처럼 나타나 지옥을 선사해주곤 하던 아이의 이름은 외자로 지었다. 동물에게 음식 이름을 지어주면 오래 산다고 하던데, 나는 무슨 욕심에서인지 사람과도 같은 이름으로 아이를 부르고 싶었다. 그 당시 재미있게 보던 드라마가 하나 있었다. ‘연애의 발견’이라고. 여자 주인공 이름이 ‘한여름’이었다. 여름? 까만 고양이에게 여름이란 이름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하기 그지없었지만, 그래서 주인공의 친구였던 인물 ‘윤 솔’의 이름을 따 ‘솔’이라 불렀다. 가끔 사람들이 ‘솔방울’의 ‘솔’에서 따왔냐고 묻곤 하는데, 그냥 그렇다고 한다. 어째 그쪽이 더 그럴싸하기도 해서.


아이가 호프집에 눌러 살 때, 불리던 이름은 ‘복고’였다. 복 많은 고양이가 되라는 뜻에서 그리 불렀다고 하셨다. 사장님께서는 아이가 순하고 착해서 말도 잘 들을 거라고 말씀하셨는데. 고양이도 아이와 같다. 예를 들어 내가 조카를 돌본다고 했을 때, 내가 단 몇 시간 바라본 조카는 나이에 비해 의젓하고 착할 수 있지만 하루 종일, 아니 매일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의 입장은 다를 것이다. 이제는 재고 따지는 데에 능통해져 속을 태울 때도 허다하지만 그럼에도 확실한 건 필시 사랑이 많은 생명이라는 것. 사랑이 무궁무진하여 나눠주는 것에도 거리낌이 없는 존재라는 것. 햇수로 5년이 다 되어 가는 시간 동안 나는 솔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 온전히 책임을 지고 전부를 쏟는 법을. 며칠 전 메신저에 호프집 사장님 생신이라고 표시가 떠서, 오랜만에 연락을 드렸다. 지금은 고양이를 네 마리나 데리고 산다고. 덕분에 좋은 인연을 만나 함께 배우고 성장 중이라고. 상생하고 사랑하는 삶으로 거듭나기 위해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쳐가며 그렇게 자라나고 있다고.


사장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아이가 복을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는 저는 답을 들을 길이 없지요. 허나 확실한 건 저에게 이 아이는 복이 틀림없다는 겁니다.


현재의 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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