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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 Sep 02. 2021

운명의 냄새란 뭘까

우리 인생을 망치러 온 구원자2와의 만남

2018년에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게 되면서 부산에 내려왔다. 카페를 시작하게 된 친구의 권유와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은 나의 욕구가 한데 합쳐져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던 것 같다. 그때 친구 동생과 한 집에 살았었는데, 작은 아기 고양이를 임시로 보호하게 되었다. 룸메이트에게 허락을 구하긴 했으나, 그녀는 이제 막 자라나기 시작한 생명체의 혈기를 어려워했었다. 비 오는 날 웅덩이에 빠져 울고 있다 구조된 꼬질꼬질한 아이가 생기를 되찾고 윤기 나는 털을 가질 즈음 급하게 입양처가 구해졌다는 얘기를 듣고 보내게 되었다. 사랑을 많이 줬던 아이였다. 그러나 그 아이가 파양되었다는 소식을, 이어서 그 주변 누군가에게 보내졌다는 소식을 마지막으로 구조자도 나도 그 아이의 전해 듣지 못했다. 인간의 무책임한 심보에 실망했고, 그때 처음으로 얼굴도 모르는 사람을 격렬하게 저주했다. 상황이 곤란한 고양이들의 소식을 소문 했던 건 그 당시 뚜렷하게 정해지지 않은 내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타지에서 불가피하게 느껴야 했던 외로움을, 사랑을 주는 일에 몰두하며 달래고 싶었던 것 같다. 꽤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이의 사진을 보면 콧잔등이 뜨거워진다. 차라리 내가 품었더라면 아이가 한 번 버려지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텐데. 마음 한 켠에 그 아이가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다. 아마 결코 해소되지 않을 잔잔한 후회로.  


그리고 2019년은 내게 있어 중요한 해 중 하나다. 어쩌면 평생을 함께 하고 싶어 질지도 모를 사람 삼월을 만났으며 자연스레 같은 공간을 공유하게 된 해이다. 삼월은 솔에게 단단히 코가 꿰여 매일같이 우리 집을 드나들었고, 그 사이 우리에게는 많은 일이 일어나고 사그라들기를 반복했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그의 코트와 내 패딩이 옷장 한 칸에 나란히 걸려 있더라. 이때부터 어떤 운명이 조각을 맞추어 갔을지도 모른다. 불규칙했으나 이 모든 게 아귀가 맞물려 가는 과정이었을지도.


2019년에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임시 보호를 하고자 마음먹었다. 그런 마음으로 그 해 여름, 도움이 필요한 고양이를 찾기 위해 고양이 카페를 훑어보았다. 그중 발견한 임시 보호처를 구한다는 내용의 게시글 속 아이는 잔뜩 웅크린 채 겁먹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애도 비가 오는 날 수로에서 구조된 고양이였다. 구조자는 집에 대형견을 반려하고 있어 고양이를 데리고 있을 수 없다고 했다. 개가 고양이를 계속 위협한다고. 게다가 전염성 없는 피부병을 지니고 있었다. 삼월과 상의하여 아이를 데려 오기로 약속을 잡았다. 처음 본 아이는 하얀 수건에 몸이 둘둘 말려 있었으며 얌전하고 작았다. 아마 위축된 상태였을 거다. 역시나 그날도 이상했다.


“운명의 냄새가 나.”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을 했었다. 분명 데리고 살 생각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농담이었고, 어쩌면 진담이었다. 체다 치즈 같이 노란 털을 가진 꼬마. 얼마 안 가 병원에 데려가 보니 5개월령의 여자 아이였다. 아이가 갖고 있던 피부병은 곰팡이성 피부염이었고 기존의 아이에게 전염될 수 있다고 했다. 아마 그전 구조자가 데려갔던 병원에서 오진이 있었던 듯싶다. 그날 우리 집은 난리가 났다. 전염성 강한 병이 솔이에게 번지지 않게 하기 위해 격리 기간을 유지하고 매일 집안을 소독했다. 까만 포자가 덕지덕지 붙은 꼬마의 털을 두 사람이 달라붙어 떼어내길 반복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수고롭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으레 해야 하는 일인 양, 우리는 바닥을 닦았다. 꼬마는 배와 목덜미, 앞 발에 털이 다 빠져 생 닭 같았다. 가뜩이나 마르고 작은 녀석이 털까지 없으니 초라하기 그지 없었다. 피부병 완치까지 3개월을 예상했으나 아이는 빠르게 호전되어 일주일 만에 아이의 가슴에 하얗고 부드러운 털이 덮이기 시작했다. 보통 입양처를 구하는 일은 구조자가 담당해야 할 일이었으므로 아이의 상태를 전하자 입양 여부를 물어왔다. 사실, 보호 기간이 3개월을 넘어가면 그 애와 헤어져 살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아이는 빠른 시간 내에 병이 나았고, 나는 내 인생에 두 번째 고양이를 들일 자신도 확신도 만들어 내지 못한 상태였다. 작은 아이를 위해 뒷걸음질치고 양보하는 솔을 보는 게 싫었다. 내가 몇 년 간의 사랑으로 가꾸어 놓은 아이가 혼란스러워하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 치사해도 어쩔 수 없었다. 내 마음의 팔 할은 솔에게 기울어져 있었으니까. 그리고 나서는 삼월과 언쟁을 했던 거 같다. 삼월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마음이 물렁물렁한 사람이었다. 고양이 한정이었나? 그 사이 정이 들어 아이를 보내지 못하겠다는 말을 듣고 난감했다. 나는 잠깐의 선의를 베풀고 싶었지 책임을 지고 싶지는 않았다. 결과적으로 내가 졌다. 밤이면 우리 다리에 자그마한 머리통을 기대어 자는 아이의 온기가 참으로 따뜻했다. 아이의 이름도 삼월이 지었다. 서면 어느 치킨집, 창가 테이블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아이의 이름을 정했다. 솔에게 맞추어 외자 이름을 고심했다. 이것저것 던져보다 ‘풀’이란 이름으로 아이를 부르기로 했다. 실질적인 이유는 ‘발음이 귀여워서’이지만 누가 이름의 뜻을 물어보면 대충 ‘푸른 풀밭처럼 싱그러운 아이가 되거라’ 같은 그럴싸한 사유를 대기로 했다.


풀이가 집에 오고 나서 솔은 꾸준히 예민한 상태를 유지했다. 저보다 몸집이 작아 양보를 하고 모른 척 지나가고는 했지만 간혹 가다 넘치는 어린 에너지를 감당하기에 성가셨던 듯하다. 솔과 나, 그 누구도 각자의 삶에 누군가가 들어와 자리 잡는 것을 경계했다. 그게 설령 사람이든, 고양이든 간에. 어쩌면 내가 솔보다 더 경계했을지도 모른다. 곁에 누군가를 두기 전에는 항상 디나이얼 기간을 거친다. 부정하고 거부하고, 마지 못해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솔은 다르다. 인정하면 온전히 제 가족으로 대한다. 벽이란 건 애초에 없었던 것처럼 사랑한다. 그런 나와 솔이가 풀이와 삼월이를 받아들였다. 우습고 귀여운 일이지만 그때 삼월이 처음 솔에게 상처를 받아 울기도 했다. 저에게 쏟아지던 사랑을 체감하고 만족하던 고양이는 한순간 나타난 경쟁자 때문에 심기가 불편했다. 그 중 만만한 삼월에게 곧이곧대로 제 감정을 표출했고, 인간은 상심했다. 솔에게 처음 받아보는 푸대접이었던 것이다. 적잖이 놀랐던 초보 집사는 결국 눈물을 보이고 말았고, 나는 그 상황이 웃겼다. 고양이와 살면서 눈 하나 깜짝하지 말아야 할 순간들이 온다. 시답잖은 짐승의 면모를 무시하고 우리의 목적을 달성해야 할 때. 그럼에도 시간이 약이라 확신한다. 지금의 삼월이 솔의 하악질을 모르는 척하며 아이의 발톱을 깎는 지경까지 왔으니 말이다. 지금의 우리는 가깝고도 멀게, 동떨어진 것 같지만 밀접하게 살아가는 중이다. 어떤 인연들은 예견이 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고소한 치즈 냄새를 풍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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