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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 Sep 03. 2021

이번이 마지막

넌 어느 별에서 왔니?

그 누가 알았을까. 전 세계적으로 바이러스가 창궐해 우리 모두 실내에 갇히게 될지. 그게 바로 작년 2020년이었다. 회식이 사라져 더 이상 원치 않는 술잔을 맞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말고는 장점 하나 없었다. 재택근무를 하느라 집에만 있다 보니 나태하다 못해 게으름의 한계를 느낀 나와 삼월은 퇴근 후 집 근처 공원을 돌기로 했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신축 오피스텔로서 그 근처에 고층의 금융 센터가 있어 주변으로 상권 형성이 잘 되어 있었다. 산책로도 깔끔하게 관리가 되어 있어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걷기에 알맞은 곳이었다. 한참 삼월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어떤 방향으로 걸음을 옮길 것인지 넓게 펼쳐진 대지를 둘러보고 있던 와중에, 자전거와 전동 킥보드를 세워두는 공간 뒤편에서 우렁차면서도 애처로운 울음소리가 들렸다. 사실, 고양이를 구조하기 위해 간 것이 아니라 어떤 귀여움으로 무장한 놈인지 구경 한 번 하려고 간 거였다. 


건물 근처는 캣맘들이 고양이 밥을 항시 챙겨주는 데다 우리가 가끔 발견하는 고양이들은 몰려다니며 자신들만의 영역을 지키는 형태였고, 설마 낙오된 고양이가 있을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삐용- 삐용- 연약한 음성을 따라갔더니 목재 팔레트 근처에서 작고 검은 아기 고양이가 빽빽 울고 있었다. 너무 작고 마른 생명체를 보자마자 감탄이 아닌 탄식이 나왔다. 짤막한 꼬리에 미간 사이로 하얀 무늬가 올라온. 눈가에는 눈곱인지 뭔지 모를 이물질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던 녀석. 오랜 시간 굶주린 걸까. 잔디밭의 풀을 야금야금 베어 먹는 녀석을 보고 있자니 안쓰러운 감정이 파도처럼 일렁였다. 그 길로 삼월이 곧장 집으로 뛰어가 우리 아이들이 먹는 간식을 챙겨 오기로 했고, 나는 그간 녀석을 지켜보기로 했다. 고양이는 육식 동물이다. 그런 녀석이 캣그라스도 아닌 풀을 뜯어 삼킨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작은 몸이 꿀렁이며 헛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도 뭐가 그리 신난 건지 나무를 캣타워 삼아 타고 올라가기까지. 그런가 하면 약 일 미터 정도 전력질주를 하고 돌아오기까지 하는 걸 보고 불안해 견딜 수가 없었다. 공원 조성이 잘 되어 있는 만큼 저녁이면 크기를 불문하고 산책을 하러 나오는 개들이 많았다. 이러다 대형 견에게 물리기라도 하면 어쩌지 싶은 마음으로 근처를 제 세상처럼 뛰어다니는 녀석을 바라봤다. 혹시 어미가 어딘가에 있는 건 아닐까 싶어 멀찍이 서서 바라보기도 했는데, 그 길을 지나가던 모녀가 고양이 가족 무리의 영역은 거기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다고 넌지시 말을 얹었다. 녀석과 유사한 턱시도 고양이들은 이 구역에 살지 않는다고. 삼월이 챙겨 온 캔을 따 건네주니 허겁지겁 삼키기 바빴던 아기 고양이. 그러더니 또 신나서 풀숲을 뛰어다니다가, 밥을 먹다가를 반복했다. 숟가락만 안 들었지 꼭 애 이유식을 먹이는 기분이었다. 어린 생명 특유의 산만함이 허탈한 웃음을 자아냈다. 녀석은 우리에게 고마움을 느꼈는지 나중에는 우리 다리에 몸을 비비려 했다. 집에는 이미 세 마리의 고양이가 있고, 구조를 해야 할지 정확히 마음을 정하지 못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이리저리 피하고 뒷걸음질을 쳤다. 그러면서 살펴본 녀석의 상태는 최악이었다. 눈물이며 눈곱이 치덕치덕 붙은 걸로 보아 돌봐주는 어미는 없는 것 같았고, 코 주변에 새까만 콧물이 흐르는 걸로 보아 허피스에 걸렸을 거라 예상했다. 구조나 임보도 그만한 사정이 될 때 해야 하는 거다. 무작정 애를 데려갔다가 입양자가 금방 나타나지 않을 때의 상황도 고려를 해야 했으므로 쉽게 결정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쉬이 걸음을 뗄 수도 없었다. 


구조 당시

그대로 모르는 척 아이를 두고 와도 됐었다. 우리와 전혀 상관없을뿐더러 자연의 이치에 따라 약한 것들은 결국 땅으로 돌아간다고 치부하면 되는 거였다. 그럼에도 삼월이 제 겉옷을 망설임 없이 벗을 때, 그런 그녀를 내가 단호하게 말리지 못한 것은, 그게 어려워서였다. 배가 고프다고, 살겠다고 있는 힘껏 소리를 지르는 아이를 죽은 셈 치고 돌아설 수가 없어서. 살아있다고 외치는 아이를 죽었다고 말할 수가 없어서. 결과가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 달리 방도가 없었다. 삼월이 맨투맨으로 아이를 감쌌다. 큰 반항 없이, 품에 안기자마자 파고드는 녀석을 다독이며 우리는 운동은커녕 멀리 나가보지도 못하고 집으로 되돌아왔다. 이미 그전에 살던 아파트 화단에서 유기묘를 구조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때도 수월하게 고양이를 안았다.- 수순을 정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아기 고양이는 되도록이면 목욕을 시키면 안 된다고 들어서 따뜻한 물을 적신 수건으로 대강 몸을 문질러 수습을 한 뒤 격리를 진행했다. 사료를 물에 불려 주자 배가 터질 때까지 밀어 넣는 아이를 간신히 말리며, 그렇게 밤을 보냈다. 2020년 9월 말이었다. 


격리할 때

아이의 임시 이름은 망구였다. ‘꼬망구’에서 따온 이름. 병원에 데려갔더니 2개월, 남자아이라고 했다. 허피스가 심하다는 진단. 눈을 자주 닦아주어야 하고 알약과 안약을 처방받고 분무 치료도 부지런히 받아야 한다고. 그 시기만 해도 아이를 데리고 살 생각이 없었다. 함께 지내고 있던 세 마리로도 나는 충분히 벅찼고,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를 합사 과정을 거치고 싶지 않았다. 그저 아이가 얼른 나아서 좋은 가정으로 가기만을 바랐다. 몇 시간을 고심해 입양 신청자가 작성해야 할 질문지를 만들고, SNS며 고양이 카페에 홍보글을 게시했다. 내가 고군분투하는 사이에도 삼월은 얄미울 만큼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나중에 말하길 입양처가 구해지지 않기를 바랐다고 한다. (아무리 그래도 시늉 정도는 해줬어야지.) 아이의 기침이 멎어갈 즈음 합사도 했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쉬웠다. 택이가 주로 아이를 챙겼고, 아이도 택이를 따랐다. 그러다 얼마 되지 않아 링웜 증상이 나타났다. 링웜은 전염성이 있는 피부 질환이다. 기존에 있던 아이들도 한 차례 털이 빠지는 수모를 겪었고,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씩 각기 다른 아이들을 등에 짊어지고 병원을 왔다 갔다 해야만 했다. 아이는 잔병치레를 제외하고 말썽을 피우지 않았다. 말수가 적었고, 얌전했다. 잘 때는 꼭 우리 머리맡에 몸을 길게 늘어뜨리고 잤다. 집에 오면 제일 앞에서 똘똘한 눈으로 우리를 반겼다. 예쁜 구석만 있었다. 예뻤다. 정이 드는 게 무서웠다. 애석하게 입양 홍보를 아무리 해도 오는 연락이 없었다. 사람들은 작고 어린, 기왕이면 예쁘고 건강한 아이들을 원한다. 당연한 말이지만서도, 그게 당연했기에 망구는 입양을 가기 어려웠다. 허피스 후유증으로 갈색 눈물이 계속 흘렀고, 환절기면 재채기도 연신 하는 아이. 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코리안 숏헤어. 어영부영 시간은 지났고 아이의 몸집이 커졌다. 집에 있던 형과 누나들에게 말을 배워 목소리를 비슷하게 흉내내기도 했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서로에게 적응하고 말았다. 불가피했다고 변명해야 할까. 결국 11월 말에 ‘록’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우리는 여전히 망구라 부르고 있지만. 


마지막. 록이가 마지막이어야 한다. 그 뒤로 나는 길을 걸을 때에도 앞만 보고 걷는다. 가로등 밑, 건물 화단이나 골목길은 거들떠도 보지 않는다. 반복하고 싶지 않다. 내가 사랑하는 존재들을 더 이상 늘리고 싶지 않다. 종지에 찾아올 이별을 감내할 자신이 없다. 그렇다고 내가 품을 수 없는 아이조차 모른 체하겠다는 건 아니다. 동물들의 존엄성이 보장되어야 우리 인간들, 특히 약자들이 살기에도 안전한 사회가 완성된다 믿는다. 나도 이 사회에서 어쩔 수 없는 약자이지 않은가. 방식을 찾아 멈추지 않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 동물 학대의 엄중한 처벌을 요구하고 구매보다 입양을 권유해야 한다. 안일하고 허술해질 수 있는 부분은 끊임없이 꼬집고 충고해야 한다. 약한 생명들이 보호받을 수 있는 사회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니까 나는, 어쩌면. 2017년, 솔이를 품에 안고 오던 그 순간부터 그 세계에 발을 들이고 만 것이다. 길에 사는 아이들이, 주인에게 버림받은 아이들이, 보호소 철창에 갇혀 안락사 위기에 처한 아이들이, 어쩌면 내 아이들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세계. 자다가도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그 아이의 안위를 걱정하는 번거로운 세계에.



현재의 구 망구 현 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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