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울 시간이 어딨니 행복하기도 바쁜데
“요즘 왜 이렇게 예민해. 그거 하나 해주기가 그렇게 어려워?”
“하지 말라는데 왜 자꾸 하는 거야? 몇 번이고 말했잖아. 싫다고.”
우리도 사람인지라 싸울 때가 있다. 요 근래 냉랭한 기운이 감돌았던 때가 있었는데, 삼월의 장난 때문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웃으며 받아줬을 텐데 그날따라 왜 그렇게 집요하게 느껴졌는지, 버럭 짜증을 내버렸고 삼월도 기분이 상해 목소리를 내리 깔고 정색을 하기에 이르렀다. 근 3년을 함께 살면서 단 한 번도 싸우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우린 서로 다른 지역에서 다른 삶을 살다 우연찮게 만난 타인에 불과하고 각자가 이해할 수 없는, 각자의 고집스러운 부분을 지니고 있다. 우리의 갈등은 이성을 기반으로 한 타협과 융화 과정의 일부였다. 사소한 다툼이 계기가 되어 오해를 풀고 관계를 돈독히 할 수 있는 중요한 시발점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 사이에는 규칙이 하나 있다. 싸웠을 경우 하루가 지나기 전에 해소할 것. 사실 이 규칙은 삼월의 제안이었는데, 초반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삼월은 갈등 상황에 직면했을 때 신속하고 직설적으로 풀어야 하는 사람이었고, 나는 충분한 시간을 가지며 생각과 감정을 정리한 뒤 대화를 해야만 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타인과의 갈등을 견디지 못한다. 그럴 때마다 왠지 모르게 심장이 두근두근 뛰어서 펑! 하고 터져 버릴 것만 같았다. 더군다나 과거의 나는 나 자신이 나쁜 사람이 되는 걸 극도로 싫어했다. 요즘 사람들은 이런 걸 흔히 ‘착한 아이 콤플렉스’라고 하더라. 그렇다. 나는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모두에게 사랑을 받고 인정받고 싶었다. 어릴 때는 내성적인 성격 탓에 내 생각조차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해 끙끙 앓던 때가 많았고 타인의 감정을 먼저 생각하다 대뜸 호구가 되는 일도 허다했다. 이러한 성격은 취직을 하고 사회성이 발달과 함께 물 흐르듯, 그러나 격동적으로 변화했다. 사회란 게, 참 더럽다. 참고 모르는 척해야 할 때가 부지기수지만, 내 한계를 시험하듯 참을 수 없는 상황에 덜렁 내던져지기도 한다. 나는 내 의견을 말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 뱉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상황을 마주함으로써 의사 표현 능력을 얻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어차피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좋게 볼 사람은 좋게 보고, 나쁘게 볼 사람은 어떠한 노력을 해도 나쁘게 본다. 그러니까 마음 편하게 내 할 말 다 하고 살아야 한다. 때로는 마음 편한 빌런이 되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지금의 내가 되기까지 삼월의 도움도 있었다. 그녀는 눈치가 빠르고 문제점을 정확하게 캐치할 줄 안다. 전투력 만렙의 삼월을 이기기(?) 위해서는 나도 그런 능력을 키워야 했다. 아직도 대화를 하다 보면 묘하게 설득을 당해 말문이 막힐 때도 있지만. 결론적으로, 그녀는 몹시 훌륭한 대련 상대라고 할 수 있으며 현재의 우리는 약간의 시간을 가진 뒤 본격적인 대화 시간을 통해 문제를 해결한다.
동물들은 워낙 감각이 발달해 인간이 분출하는 감정 호르몬 냄새까지 맡을 수 있다는 말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그 아이들은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일상적인 대화를 할 때 우리의 표정과 말, 음성의 고저, 제스처가 기준 내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아이들은 마법같이 알아차린다. 덕분에 솔과 나, 단 둘이 살 때는 아이에게 위로를 많이 받았다. 솔은 내 슬픔의 냄새, 외로움의 냄새까지 기막히게 해독할 줄 아는 대단한 고양이였다. 나와 삼월이 쌍방으로 이뤄내는 내부적 갈등 상황을 해소하는 데 있어 솔의 영향도 크다. 언성이 높아질 때면 둘 사이로 다가와 일부러 얼굴을 비빈다던가, 크게 울어 주위를 분산시키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신경전을 벌이다가도 어쩔 수 없이 기분이 풀려 웃어버리는 경우도 더러 있다. 네 마리 중 솔의 반응이 유독 특별하다. 아이는 다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냄새를 맡을지도 모른다. 불화의 냄새. 억누르지 못해 분출되는 화의 냄새들. 솔은 향기롭지 않은 미세한 공기의 차이를 구분할 줄 안다. 이러한 것들은 인간사에서도 적용이 가능하다. 부모들이 아이들 앞에서 싸워선 안 되는 이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이들은 눈치를 본다. 무겁고 폭력적인 공기의 흐름을 읽어낸다. 불화, 그 상황 속에 아이들을 반복적으로 노출시키는 것은 정서적 학대와 마찬가지다. 이 같은 생각을 하다 보면 그럴 때마다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해 노력하는 솔이 안쓰럽고 아이에게 미안해진다. 고양이들의 정신 연령은 인간으로 치면 2~3세라고 한다. 시간이 갈수록 고양이의 정신 연령이 사람과 비슷한 속도로 자란다는 과학적 증거가 없는 한 우리는 그들을 낳지 않았음에도 부모의 역할을 자처해야 하고, 조심해야 한다. 고양이들의 세계 속 인간은 우리가 전부이기 때문에. 우리는 인간으로서 그들의 세계를 지켜야 한다. 무너져서는 안 된다. 그들의 전부가 허술해져서는 안 된다. 애들 앞에서 싸우지 말자. 앞으로 살 날이 얼마나 남았는지, 정해진 수명이 머리 위로 표시된다면 좋으련만 그럴 수 없기에 우리는 바쁘게 행복해야 한다. 영양가 없는 논쟁과 다툼으로 시간을 허비할 수 없다. 아이들의 세계를 풍요롭게 가꾸기 위해서는 우리의 삶도 안정적으로 유지되어야 한다. 그들은 우리 인생에 유일한 사명이다.
여담.
우리는 다묘 가정이기 때문에 간혹 고양이들 사이의 분란이 발생하기도 한다. 싸우는 거 보면 걔들도 우리와 별반 다를 게 없다. 그중 택과 풀의 싸움이 자주 목격된다. 이 둘은 사람으로 치면 몇 개월 차로 오빠와 동생으로 나뉜 경우라고 할 수 있는데, 그만큼 장난도 자주 친다. 보통 시작을 누가 하는지 알 수 없지만, 언제나 화를 내는 건 풀이고 당황하는 건 택이다. 서로 즐겁게 잡기 놀이를 하다가 택이가 풀을 앞질러 덮칠 때가 있는데, 그럴 때 풀이 별안간 털을 세우고 ‘와악!’ 소리를 지르곤 한다. 우리는 그걸 급발진이라 부른다. 각자 다른 일을 하다가 그 소리를 듣고 일동 시선을 집중하는 모습이 꽤 시트콤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