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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 Oct 01. 2021

우리를 거쳐 간 고양이

아침 햇살 같은 기억의 일부


때는 바야흐로 2020년 1월 29일. 나와 삼월이 아침 일찍 건강검진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하늘이 맑았지만 날씨가 풀리지 않아 제법 쌀쌀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마취를 해야 하는 대장, 위 내시경을 한꺼번에 받고 왔던 지라 얼른 집에 들어가 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당시 살던 아파트 주변에는 종종 길에 사는 고양이들이 보였던 탓에 그날도 귀여운 그림자 하나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무심코 화단으로 시선을 돌렸던 게 화근이었다. 빽빽하게 우거진 꽃나무 사이로 심상치 않은 얼굴 하나가 웅크리고 숨어 있었다. 나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었다. 지난주에도 품종묘 두 마리가 그 자리에 쪼그리고 있던 걸 봤던 터라 그중 하나이려니 했는데 초면이었다. 편의점에서 다급하게 고양이 용 캔을 사 와 그 앞에 놓아주니 경계하는 태세도 없이 생명체가 나무 사이로 고개를 내밀었다. 복슬복슬한 털은 깨끗하고 부드러워 보였다. 길 생활의 처량함이라곤 전혀 묻어있지 않은 얼굴로 우리가 건넨 캔 하나를 말끔히 비우는 고양이가 안쓰러워 그 길로 집에 들어가 아이들이 먹는 사료를 한 봉지 덜어 다시 그 자리로 내려왔다. 먹기 좋게 봉지 일부를 찢어 그 앞에 두고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현관문을 열자 우리의 고양이 세 마리가 꼬리를 한껏 세우고 우리를 반겼다. 기분이 이상했다.  


아침이 발견 당시


그렇게 피로한 몸을 뉘이고도 그 아이의 출처가 궁금해지는 것이었다. 길에서 흔히 보이는 코숏이라고 하기에는 골격이 더 컸고 무늬가 독특했다. 버려진 걸까. 집을 나온 걸까. 시간이 흐른 뒤에도 그 자리에 고양이가 있을 시, 데려와 임시 보호를 하기로 삼월과 결론을 내렸다. 밤이 되어서야 우리는 점퍼를 꿰어 입고 건물 앞으로 나가보았다. 우선 낮에 준 사료 봉지는 완전히 뜯어져 동이 나 있었다. 어둠 속에서 눈을 가늘게 뜨고 사이를 살폈다. 그 자리에 없기를 바랐다. 하지만 우리의 바람이 무색하게도 가까이서 작은 울음소리가 들렸다.


 “아가야!”


어디서 왔는지도 모를 고양이는 내가 부르자 묻고 따지지도 않고 대뜸 안겨왔다. 보통  영역이 아닌 곳에 있는 고양이들은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는데  애는 내가 손을 뻗자 그대로 익숙하게 품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한두  안겨본 솜씨가 아니었다. 수월하게 고양이를 포획 아닌 포획을  점퍼 안에 고양이를 꽁꽁 숨기고 집으로 돌아왔다. 뼈대가 굵어 강아지를 안은  같았는데, 막상 만져보니 척추 뼈가 느껴질 만큼 말라 있었다. 누군가 버렸든, 잃어버렸든  주인을 찾을 때까지는 집에 머물러야 했으므로 합사의  단계부터 시작해야 했다. 우선 아이들을 넓은 거실로 보내고  애는 방에 두기로   따뜻한 물에 몸을 씻기기로 결정하고  만남에 목욕까지 시켰다.  사람은  젖을 각오로 고양이를 안고 함께 물을 맞아야 했는데 어쩌다 보니 내가  역할을 하게 됐다. 고양이는 온순한 성격에 목소리도 크지 않았다. 발톱 손질이 되어 있고 워낙 멀끔한 걸로 보아 전날까지만 해도 집에서 사람의 손에 길러진 아이 같았다. 아이는 임시적으로 ‘아침이라 불렀다. 우리가 살고 있던 건물이자 아이가 발견된 아파트 이름에서 따온 호칭이었다. 늦은 , 아침이는 하악질   없이 마치 우리 집이  집인  숨지도 않고 화장실로 어슬렁 걸어가 일도 보고 밥도 먹었다. 경계심이라곤 하나 없이 비비고 안기는  즐겼다. 희한한 놈이라고 생각했다. 덤덤한 건지 통달한 건지 모를 만큼 적응력이 빨라 당황스러운  우리였다. 다음 , 질병 유무를 체크하기 위해 병원에 갔더니 수컷에 나이는 1살로 추정된다고 했다. 원장님께 자초지종을 설명했더니 외출을 나왔을 확률은 희박하다고 하셨다. 집과 밖을 오가는 고양이들은 20~40 정도 지나면 제가 지내는 곳으로 돌아간다고 하더라. 그렇게 되면 녀석은 유기와 분실,   하나였다. 그날부터 전단지를 만들고 인터넷 카페에 주인 찾는 게시글을 올렸다. 포인핸드에 고양이를 찾는 글이 있나 샅샅이 뒤졌다. 예상과 달리 어디에서도 우리 고양이인  같다며 연락을  오는 사람도, 찾는 사람도 없었다.


아이는 한 달을 우리 집에 머물다 입양을 갔다. 다행히 회사에 고양이 한 마리를 반려하고 계시던 실장님께서 입양 의사를 밝혀주셔서 그 집으로 보내게 되었다. 아침이가 우리 집에서 무탈한 시간을 보낼 수 있던 것에는 택의 공이 컸다. 인간은 싫어해도 고양이라면 쌍수 들고 환영을 하는 데다 체력적으로도 어느 정도 레벨이 맞았던지 밤낮으로 뜀박질을 하기 바빴다. 아침이는 덩치만 컸지 나이가 어려 종종 힘 조절을 못할 때가 있었다. 그러다 보니 솔, 풀과는 장난을 치다 깔아뭉개거나 세게 무는 경우가 있어 솔과 풀이 질색을 했더란다. 그럼에도 기죽지 않고 누나들을 놀라게 하며 장난을 치는 통에 맞기도 많이 맞았다. 대견하게도 덩치로 유세 떨지 않고 누나들에게는 고분고분하게 맞아주더라. 아이는 밤이면 우리 침대로 찾아와 그릉그릉, 사랑의 기색을 가감 없이 표현했고 우리도 지지 않기 위해 입을 맞춰 주었다.




입양처에 가던 당일, 우리 집에서 새로운 집으로 가던 택시 안에서도 아이는 무색하리만치 조용했다. 나와 삼월 사이에도 정적이 흘렀다. 여러 걱정과 아쉬움에 기반된 고요였다. 며칠 전만 해도 삼월은 아침이를 우리가 데리고 살면 안 되겠느냐 물었고, 나는 거절했다. 감정과 이성 사이에서 갈팡질팡했지만 나는 내가 최선이라 믿는 선택을 하고야 말았다. 어차피 슬픔은 잠깐일 거라 장담했건만 정이란 게 참으로 무섭기 짝이 없어서 영원한 이별도 아닌데 전날까지도 괜한 울적함에 젖어 아이를 끌어안기 바빴다. 입양처에 도착하자 아이는 어울리지 않게 낯을 가리는 듯 이동장에서 빼꼼 고개만 내밀뿐이었다. 처음 당돌하게 안겨오던 녀석이 앞으로 제가 평생을 머물 집에서는 두리번거리며 한 걸음 내딛길 망설이고 있는 게 안타까웠다. 아이가 좋아하던 장난감과 간식을 남겨두고 우리는 그 집을 나왔다. 미련이 발길을 붙들어 배웅을 받으면서도 쉽사리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결국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마자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돌이킬 수 없었고, 돌이켜서도 안 되는 헤어짐이었다. 집에 가는 길, 우울한 기분을 달래고자 빵집에 들어서며 하릴없는 미련도 모두 털어버렸다. 부풀어 오른 빵을 입에 넣으며 기억을 추억으로 삼켰다. (그 후로도 우리는 약 삼일 정도 청승을 떨었다.)


우리는 절대 구조나 임시보호를 하지 않겠다고 강력히 다짐했다. 아픈 고양이가 있어도 모르는 척하자는 얘기까지 나누었다. 그리고 일 년 뒤, 이 인간들은 집 앞 공원에서 허피스 걸린 검은 아기 고양이를 데려오게 된다는 이야기. 가끔은 우리와 고양이 사이에 붉은 실들이 연결되어 있는 것만 같다. 어떤 묘연이기에 다짐을 무력하게 만들 수 있었을까. 아침이는 현재 ‘사코’란 이름으로 잘 지내고 있다. 최근 전해 들은 소식에 의하면 그 집의 터줏대감이었던 ‘히나’라는 고양이에게 꾹꾹이를 배워 열심히 이불을 주무른다고 한다.



일 년 전 고양이를 버렸던 당신.

당신 덕분에 아이는 더 나은 곳에서 마음껏 사랑받으며 살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먼 훗날 당신이 비로소 늙고 힘이 없어졌을 때, 가족들에게 비참히 버려지길 바라겠습니다.

그때까지 불행하세요.




잘 먹고 잘 살아라 이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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