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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 Sep 13. 2021

싸우지 맙시다

싸울 시간이 어딨니 행복하기도 바쁜데




 “요즘 왜 이렇게 예민해. 그거 하나 해주기가 그렇게 어려워?”

 “하지 말라는데 왜 자꾸 하는 거야? 몇 번이고 말했잖아. 싫다고.”


우리도 사람인지라 싸울 때가 있다.  근래 냉랭한 기운이 감돌았던 때가 있었는데, 삼월의 장난 때문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웃으며 받아줬을 텐데 그날따라  그렇게 집요하게 느껴졌는지, 버럭 짜증을 내버렸고 삼월도 기분이 상해 목소리를 내리 깔고 정색을 하기에 이르렀다.  3년을 함께 살면서   번도 싸우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우린 서로 다른 지역에서 다른 삶을 살다 우연찮게 만난 타인에 불과하고 각자가 이해할  없는, 각자의 고집스러운 부분을 지니고 있다. 우리의 갈등은 이성을 기반으로  타협과 융화 과정의 일부였다. 사소한 다툼이 계기가 되어 오해를 풀고 관계를 돈독히   있는 중요한 시발점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 사이에는 규칙이 하나 있다. 싸웠을 경우 하루가 지나기 전에 해소할 . 사실  규칙은 삼월의 제안이었는데, 초반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삼월은 갈등 상황에 직면했을  신속하고 직설적으로 풀어야 하는 사람이었고, 나는 충분한 시간을 가지며 생각과 감정을 정리한  대화를 해야만 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타인과의 갈등을 견디지 못한다. 그럴 때마다 왠지 모르게 심장이 두근두근 뛰어서 ! 하고 터져 버릴 것만 같았다. 더군다나 과거의 나는  자신이 나쁜 사람이 되는  극도로 싫어했다. 요즘 사람들은 이런  흔히 ‘착한 아이 콤플렉스라고 하더라. 그렇다. 나는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모두에게 사랑을 받고 인정받고 싶었다. 어릴 때는 내성적인 성격 탓에  생각조차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해 끙끙 앓던 때가 많았고 타인의 감정을 먼저 생각하다 대뜸 호구가 되는 일도 허다했다. 이러한 성격은 취직을 하고 사회성이 발달과 함께  흐르듯, 그러나 격동적으로 변화했다. 사회란 ,  더럽다. 참고 모르는 척해야  때가 부지기수지만,  한계를 시험하듯 참을  없는 상황에 덜렁 내던져지기도 한다. 나는  의견을 말하지 않으면  되는 상황, 뱉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상황을 마주함으로써 의사 표현 능력을 얻게 되었다고   있다. 어차피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좋게  사람은 좋게 보고, 나쁘게  사람은 어떠한 노력을 해도 나쁘게 본다. 그러니까 마음 편하게     하고 살아야 한다. 때로는 마음 편한 빌런이 되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지금의 내가 되기까지 삼월의 도움도 있었다. 그녀는 눈치가 빠르고 문제점을 정확하게 캐치할  안다. 전투력 만렙의 삼월을 이기기(?) 위해서는 나도 그런 능력을 키워야 했다. 아직도 대화를 하다 보면 묘하게 설득을 당해 말문이 막힐 때도 있지만. 결론적으로, 그녀는 몹시 훌륭한 대련 상대라고   있으며 현재의 우리는 약간의 시간을 가진  본격적인 대화 시간을 통해 문제를 해결한다.


동물들은 워낙 감각이 발달해 인간이 분출하는 감정 호르몬 냄새까지 맡을 수 있다는 말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그 아이들은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일상적인 대화를 할 때 우리의 표정과 말, 음성의 고저, 제스처가 기준 내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아이들은 마법같이 알아차린다. 덕분에 솔과 나, 단 둘이 살 때는 아이에게 위로를 많이 받았다. 솔은 내 슬픔의 냄새, 외로움의 냄새까지 기막히게 해독할 줄 아는 대단한 고양이였다. 나와 삼월이 쌍방으로 이뤄내는 내부적 갈등 상황을 해소하는 데 있어 솔의 영향도 크다. 언성이 높아질 때면 둘 사이로 다가와 일부러 얼굴을 비빈다던가, 크게 울어 주위를 분산시키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신경전을 벌이다가도 어쩔 수 없이 기분이 풀려 웃어버리는 경우도 더러 있다. 네 마리 중 솔의 반응이 유독 특별하다. 아이는 다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냄새를 맡을지도 모른다. 불화의 냄새. 억누르지 못해 분출되는 화의 냄새들. 솔은 향기롭지 않은 미세한 공기의 차이를 구분할 줄 안다. 이러한 것들은 인간사에서도 적용이 가능하다. 부모들이 아이들 앞에서 싸워선 안 되는 이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이들은 눈치를 본다. 무겁고 폭력적인 공기의 흐름을 읽어낸다. 불화, 그 상황 속에 아이들을 반복적으로 노출시키는 것은 정서적 학대와 마찬가지다. 이 같은 생각을 하다 보면 그럴 때마다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해 노력하는 솔이 안쓰럽고 아이에게 미안해진다. 고양이들의 정신 연령은 인간으로 치면 2~3세라고 한다. 시간이 갈수록 고양이의 정신 연령이 사람과 비슷한 속도로 자란다는 과학적 증거가 없는 한 우리는 그들을 낳지 않았음에도 부모의 역할을 자처해야 하고, 조심해야 한다. 고양이들의 세계 속 인간은 우리가 전부이기 때문에. 우리는 인간으로서 그들의 세계를 지켜야 한다. 무너져서는 안 된다. 그들의 전부가 허술해져서는 안 된다. 애들 앞에서 싸우지 말자. 앞으로 살 날이 얼마나 남았는지, 정해진 수명이 머리 위로 표시된다면 좋으련만 그럴 수 없기에 우리는 바쁘게 행복해야 한다. 영양가 없는 논쟁과 다툼으로 시간을 허비할 수 없다. 아이들의 세계를 풍요롭게 가꾸기 위해서는 우리의 삶도 안정적으로 유지되어야 한다. 그들은 우리 인생에 유일한 사명이다.


여담.

우리는 다묘 가정이기 때문에 간혹 고양이들 사이의 분란이 발생하기도 한다. 싸우는 거 보면 걔들도 우리와 별반 다를 게 없다. 그중 택과 풀의 싸움이 자주 목격된다. 이 둘은 사람으로 치면 몇 개월 차로 오빠와 동생으로 나뉜 경우라고 할 수 있는데, 그만큼 장난도 자주 친다. 보통 시작을 누가 하는지 알 수 없지만, 언제나 화를 내는 건 풀이고 당황하는 건 택이다. 서로 즐겁게 잡기 놀이를 하다가 택이가 풀을 앞질러 덮칠 때가 있는데, 그럴 때 풀이 별안간 털을 세우고 ‘와악!’ 소리를 지르곤 한다. 우리는 그걸 급발진이라 부른다. 각자 다른 일을 하다가 그 소리를 듣고 일동 시선을 집중하는 모습이 꽤 시트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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